낮 와인을 해서인지 목이 마르다. 아이스라테가 당긴다. 근처 Boots Cafe로 발걸음을 향했다. 한국 여행객들에게는 마레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가 아닐까 한다. 인스타에 자주 등장한 저 푸른 대문. 일본인이 운영한다는데, 역시나 바리스타가 일본인이었다.
카페 앞에 저렇게 옐로, 그린과 같은 귀여운 원색의 스툴이 있어 지나가던 사람들도 앉아서 시간을 보낸다. 딱히 편해 보이진 않았으나 잠깐 쉬어가기에 나쁘지 않다. 다니는 차도 별로 없고 조용한 거리라, 좁은 도로를 마주한 건너편 건물에서 하는 말까지 들릴 것 같다. 사람들은 편하게 앉아서 대화를 나눈다. 평온하다.
아이스라테 역시 꼬숩다. 파리에서 이렇게 얼음을 많이 넣어주는 아이스라테라니. 이 때문에 한국 여행객들이 많이 오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좁은 카페라 오래 앉아 있기엔 눈치가 보여 잠시 목만 축이고 빠져나왔다. 앉아 있는 동안에도 안에서 마시는 사람들보다는 테이크아웃 손님이 더 많은 듯했다. 작지만 알찬 카페, 무엇보다 커피가 맛있었다.
(얼마 전 궁금한 마음에 서울 서촌에 생겼다는 Boots Cafe를 들렀더랬다. 외관부터 분위기까지 비슷했다. 한옥에 파리 감성을 입혀 더 돋보였다. 지금과 같은 코시국에 파리 여행이 그리울 때면 서촌 이곳이 생각날 듯하다.)
하모니는 이번 여행에서 새롭게 알게 된 브랜드다. 마레지구를 걷다가 쇼윈도에 걸린 옷들이 눈길을 끌어 들어갔는데, 샵에 들어가 뒤적여보니 더욱 내 스타일이었다. 심플하면서도 에지가 있는 것이 딱 좋았다. 기본에 충실해서 여기저기 잘 어울려 자꾸만 손이 갈 디자인. 나이가 지긋한 마담이 매니저인 듯했는데, 내가 고른 옷들을 살펴보더니 행거에서 옷들을 계속해서 꺼내 온다. 그녀의 손에 들려온 옷들이 하나같이 예뻐서 모두 품어오지 않을 수 없었다.
정신 놓고 쇼핑을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이제 슬슬 비앤비로 돌아가야겠다. 두 손 무겁게 비앤비로 향하는 길. 숙소 근처에 피자집이 눈에 띈다. 오늘 저녁은 고민하지 말고 저기서 간단하게 할까, 생각이 들자 바로 직진해 버렸다. 루꼴라가 얹힌 머시룸 피자를 픽업해 3층까지 걸어 올라가니 피곤함이 몰려왔다.
피자가 식을까 걱정은 됐지만 땀을 씻어내는 게 먼저라는 생각에 욕실로 향했다.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나와 호스트가 웰콤 기프트로 준 와인을 따르고 피자를 오픈. 생각보다 배가 많이 고팠나 보다. 앉은자리에서 세 조각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한국으로 치면 동네 피자가게인 듯했는데, 기대보다 맛나서 깜짝 놀랐다. 하지만, 저날 이후에 또다시 사 먹은 적은 없었다. 파리엔 맛있는 게 도처에 널렸고, 맛보고 싶은 건 너무 많기 때문.
와인을 한 잔 더 따라 침대에 올라갔다. 배도 부르고 와인도 한 잔 들어가니 포만감에 나른한 고양이가 된 기분.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갑작스레 이 공간에 나 혼자라는 사실이 강하게 다가왔다. 혼자가 되면, 그리고 와인을 손에 들게 되면 참을 수 없는 충동에 사로잡히게 된다. 나중에 반드시 이불킥을 하게 될 것을 알면서도 그냥 저질러 버린다. 그날, 그때가 딱 그랬다.
후회할 줄 알면서 아이폰을 열었다. 여전히 카카오톡 친구 리스트에 등록돼 있는 그, P를 찾았다. 대화창을 열었다.
'설마, 너 톡을 할 건 아니지?'
마음속에서 외치는 소리를 무시한 채 액정을 몇 번 두드리다 톡을 남겼다.
"잘 지내고 있는 거지?"
이런, 정말 보냈다.
아직 읽히지 않은 문장을 보니 새삼스레 자각이 됐다. 아 도망가야지. 아이폰을 침대에 던져버리고 테이블에 앉아 TV를 틀었다. 하지만 어느새 내 손엔 아이폰이 들려있다. 카톡을 확인하니, 답변이 와 있다.
"ㅋㅋㅋㅋㅋ"
딱 이 녀석 답다. 그의 바람 섞인 웃음소리가 폰 밖으로 새어 나오는 것 같다. 순간 어색함은 저 멀리 날아갔다. 비록 서울을 떠나온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지만 먼 이국 땅에서 확인한 그의 톡은 반가움을 안겨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