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앤비로 돌아가는 길에 발길을 멈추게 하는 공간이 보였다. 마레를 오가던 중 '나중에 꼭 한번 들러야지.' 했던 곳. 마침 목도 말랐는데, 딱 한 잔만 마실 겸 입장했다. 들어가 자리를 문의하니, 매니저가 브레이크 타임이라고 난색을 표한다.
"아, 그렇군요..."
이런,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결국 못 가는 건가, 하는 찰나 푸드 주문이 아니라면 그냥 앉아서 마셔도 된단다.
"Merci!"
이렇게 고마울 데가. 아마도 매니저가 나의 눈동자에서 실망과 안타까움을 읽었던 게 아닐까. 냉큼 자리에 앉아 화이트 와인 한 잔을 주문한다. 금세 따라주고 매니저는 자기 볼 일을 보러 갔다. 넋 놓고 앉아 시원한 와인을 홀짝이며 창 밖을 구경한다. 마레의 중심가 쪽이 아니어서 조용하고, 오후에서 저녁으로 이어지는 애매한 시간이어서인지 오가는 사람도 적다. 참 멍 때리기 좋은 곳이네.
여행지에서 멍 때리는 걸 좋아한다. 한때 시간을 쪼개가며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곳을 방문하려 애썼다. 그땐 그만큼 보람 있다고 생각했었지. 하지만 되돌아보면 그런 여행에선 크게 기억에 남았던 것이 없었던 듯하다. 내 여행 취향은 좀 더 느긋하고 게으른 편에 속한다는 걸 조금 나중에 깨달았다. 웬만하면 두 다리로 천천히 걸어 다니며 주변을 보고, 지치면 근처 카페나 바에 가서 노닥거리다 이동하는 여행을 좋아한다. 그렇기에 도시 간 이동을 자주 하는 것보단 한 도시, 혹은 한 동네에서만 머물다 돌아오게 된다. 여행 취향이 다른 사람에겐 참으로 답답한 스타일일 수도 있다.
화이트 와인 한 잔을 가뿐하게 비우고 일어섰다. 매니저가 자리에 없어 조금 더 보태 현금을 테이블에 두고 나왔다. 그렇게 길을 걷다 갑자기 달려가 사진을 찍게 만든 그림. 이런 게 파리의 주차라니. 앞차 엉덩이와 뒤차 코가 맞붙어 입맞춤을 하고 있다. 차체 옆에 거칠게 난 흠집은 아무렇지도 않은가 보다. 파리 길거리를 걷다 보면 이런 모습을 심심찮게 발견하곤 했다. 아, 이탈리아에서 더 자주 목격하긴 했다. 앞뒤 차를 쾅쾅 부딪혀 가며 차를 빼는 터프한 남부 이탈리안이 퍼뜩 떠오른다. 차에 조금이라도 흠집 날까 두려워 조심하는 우리나라 운전자들과는 참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