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파리 (19)

by bonbon

옷을 갈아입고 나온 휘퍼블리크 역 근처. 이른 저녁인데도 북적인다. 삼삼오오 카페에 레스토랑에 자리 잡고 앉아 먹고 마시고 떠들고. 파리 어스름한 저녁을 배경으로 생기 어린 부산함이라니. 저 사이로 미끄러지듯 끼어들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혼자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이럴 땐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텐데. 혼자 하는 여행은 이럴 때 아쉽다.

한참을 서성이다 들어간 곳은 Le Barav. 선택한 이유는... 이곳이 가장 부산했다. 눈에 띄는 붉은색 외관도 한눈에 들어왔고. 레스토랑이라기보단 와인바 같았다. 한쪽엔 와인샵이 있어서 와인을 고르면 테이블에 앉아 마시는 시스템.

요 녀석도 한 몫했다. 위풍당당하게 손님을 맞이하던 이 아이. 손님 중에 누군가 데려온 댕댕이인 듯했는데, 지나가는 행인들을 무심하게 둘러보며 두 발로 우뚝 서 있는 모양새가 "이리 와 나 좀 봐봐"라는 것 같았다.

Cave에 들어서자마자 내지른 탄성. 와인이 왜 이렇게 많아? 매그넘뿐 아니라 더블 매그넘까지. 한창을 구경한 끝에 고른 와인은 보르도 올빈 Chateau de Carles 07이다. 보르도 와인 중에 카베르네 쇼비뇽 베이스보단 메를로 베이스를 좋아하는 편이고 좌안보단 우안을 좋아하는 편이다. 나중에 찾아보니 Fronsac 와인이었다.

보르도 와인의 진가는 올빈에 있지. 서울에서보다 프랑스에서 와인 마실 때 신나는 이유는 오래된 빈티지 와인들이 많다는 점. 오래 묵힌 와인에서 느낄 수 있는 풍미와 긴 시간을 거치며 부드러워진 텍스쳐, 한번 느끼면 계속 찾게 된다. 가격도 매우 착해서 바로 집어서 테이블로 갔던.

배가 고프진 않아서 매쉬 포테이토만 주문했다. 사진에서 보듯 엄청난 칼로리가 느껴지는 꾸덕함. 치즈 범벅인 매쉬 포테이토는 너무 쫀득해서 뱃속에 달라붙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죄책감이 느껴질 정도로 맛있어서 결국 접시를 다 비웠다는.

혼자 와인을 1/3 정도 비웠나, 와인도 더 이상 들어가지 않고. 문득 이 많은 사람들 속에 나 혼자만 혼자구나, 생각이 든 순간 일어섰다. 이런 곳은 여럿이 와서 즐겨야 하나 봐. 뻔한 말이지만 군중 속의 고독에 제대로 한 방 맞았다. 파리에 와서 가장 외로웠던 순간이라고 기억된다.

밖으로 나와 길을 걸으니 아까까지만 해도 드문드문 빈자리가 있었던 레스토랑이 모두 파리지앵들로 꽉 찼다.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진한 향수와 담배 냄새. 프랑스 억양 속에 섞인 웃음소리들. 남겨진 와인이 담긴 병을 들고 터덜터덜 비앤비로 향했다. 떠들썩한 소리에서 멀어질수록 파리의 마지막 밤이라는 게 더 강하게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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