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잠에 들어서인지, 시차 때문인지 일찍 눈이 떠졌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잠을 더 청해봤지만 눈만 더 말똥말똥해지는 것 같아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커튼을 열고 창밖을 보니 이미 환하다. 여름의 파리는 아침은 빨리 오고 밤은 늦게야 차오른다.
스튜디오 전체 크기에 비해 욕실이 넓어서 샤워하고 준비하기 편하다. 휴지와 수건도 넉넉히 준비돼 있다. 파리에는 화장실에 수건걸이가 있는데, 온열 기능이 있어서 수건을 세탁해 말리기 좋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나 혼자 쓰는 데다가 수건도 넉넉해서 따로 수건을 세탁할 필요는 없었다.
아침은 건너뛰고 준비를 마치자마자 숙소를 나섰다. 공기가 상쾌하다. 아침 일찍 나섰음에도 거리엔 사람들이 꽤 있다. 어느 도시를 가나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아침을 여는 사람들은 꼭 있다. "설마 이 시간에?"를 여지없이 깨뜨려 주는 사람들.
몇몇 블랑제리 외에는 마트도, 카페도 아직 오픈하지 않았다. 특별한 목적지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걷고 앉고를 거듭하다, 구글맵으로 가고 싶었던 카페를 찾아내 방향을 잡았다. 마레지구 거리를 가로질러 Sain-Sebastien Froissart 역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자그맣게 자리 잡은 카페, Ob-La-Di다.
직사각형 구조의 작은 카페로 들어서는 순간, 아늑하다는 느낌이 바로 든다. 카페 안쪽 끝까지 대여섯 발자국밖에 안 되는 아주 자그마한 공간이다. 정면엔 머신을 둔 키친과 테이블이 있다. 테이블 위에는 파운드 케이크와 쿠키류가 있고, 그 옆에는 팁을 넣는 작은 그릇이 있다. 이 테이블에서 손님에게 나가기 전 라테 아트를 마무리하기도 하고, 계산도 한다.
들어서는 입구의 왼쪽엔 머그컵이나 티셔츠 등 굿즈가 디스플레이되어 있고, 그 뒤로 작은 원형 테이블이 세 개 정도 배치돼 있다. 오른쪽엔 벽을 보고 앉을 수 있는 기다란 테이블이 하나, 앉을 수 있는 사람은 서너 명 정도가 다일 듯하다. 개인적으로 규모가 큰 카페보다는 이렇게 아담한 곳이 내 취향이다.
일행이 없는 나는 오른쪽 테이블 끝에 자리 잡았다. 내가 들어왔을 때만 해도 손님이 한 명밖에 없었는데 키보드를 꺼내 잠시 끄적이는 동안 어느새 카페 안이 다 차 버렸다. 슬쩍 보니 테이크아웃 커피를 주문하고 문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도 꽤 된다. 힙 플레이스이었네, 이곳. 실내를 둘러보니 삼삼오오 자리 잡은 일행들 중 포치드 에그, 샐러드 등 브런치 메뉴를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꾸민 듯 안 꾸민 듯 스타일 좋은 파리지앵 두 남자, 여행객인 듯한 남녀 커플, 그리고 동양인 남녀 넷이 테이블에 앉아 있다. 여행객들은 구글링 하느라 정신이 없고, 파리지앵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깊숙한 대화를 하기에 여념 없다. 동양인들은 카페 내부를 둘러보며 화제에 열중한다.
순간, 나는 어떻게 보일까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받고 앉자마자 뭔가를 계속 타이핑하는 홀로 온 동양인 여자. 글쎄, 나름이겠지. 아니면 누구에게도 눈에 띄지 않은 사람일 수도. 이방인이 차고 넘치는 도시, 파리에서 그중 하나가 되어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 이상하게도 나를 편안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