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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어멈 Mar 03. 2021

화재경보!

급박했던 엘사봉봉네..



‘불을 꺼버릴 테다!’ 엘사 봉봉




꼭 무엇인가 부족하다 싶을 때, 상황이 발생한다.

그날은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정도 전의 일이었고,     마침 욥이 한동안 출장을 가지 않다가

딱! 하루 출장을 갔던 날의 이야기이다.


아빠의 출장을 마중하는 세리머니를 위해                아침부터 졸린 눈을 비비고

모두가 평소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을 일찍 맞이하니 상쾌한 기분도 들었지만

어딘가 피로감이 몰려오며 탱글이의 낮잠시간만    기다리고 있던 그 오후.


온전히 욥 없이 하루를 보내게 된 건 오랜만이라    신경이 좀 쓰였고, 아이들도 그런 엄마 마음을        아는지 싸우지도 않고 시간을 잘 보내서

'아.. 참 오늘 순조롭다.'라고 속으로 생각했던 것이 실수였을까?


생전 처음 겪는 그날의 일이 벌어졌다.


탱글이를 재우기 위해 어멈과 탱글이 먼저 방으로 들어갔고, 봉봉은 거실에서 혼자 자유시간을 누리다 심심해져서 엄마를 깨워보려던 중 같이 잠들었다.


그렇게 10분쯤 지났을까?



"위이이이이이이잉--------------위이이이이이이잉----------------!!!

화재경보입니다. 입주민께서는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위이이이이이이잉--------------위이이이이이이잉----------------!!!

화재경보입니다. 입주민께서는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다.

침대에서 거의 뛰면서 일어났다고 해야 할까?

마치 용수철처럼 몸이 튀어 오르는 경험은               처음이었는데, 우리 셋이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는데 0.1초가 걸리지 않았다.


심장이 두근두근두근, 순간 머리가 어질 했다.


"봉봉아!!! 옷 갈아입어 얼른!!!!!!”


봉봉은 사실.. 그 날 엄청 치렁치렁한 엘사 옷을 입고 있었다.

하필 그런 날. 엘사 옷, 그것도 치맛단이 엄청 긴 드레스를 말이다.


입고 벗는데 아무리 빨라도 3-4분은 걸리는           그 드레스를 벗고 외출복으로 갈아입는데

20초 정도도 안 걸렸으니

그 순간 봉봉은 슈퍼맨 같았다.


급히 거실로 나가보니 생각보다 분위기가 조용했다.

연기는 없는 걸로 봐서 밑에서 아직 번지거나 하진 않은 것 같으니 빨리 나가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외투를 거실에 어질어 놓은 게 감사했던 건 처음이다. 빨리 정리하지 않으면 외투들이 산처럼 쌓여 있기 마련인데 그날은 그 순간이 감사했다.

아이들 외투를 슈퍼맨 속도로 입히며 관리소에 전화를 걸었다.


관리소에서는 흐린 날 가끔 있는 일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을 해주셨지만,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았던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채비를 시작했다.


"봉봉아 빨리 가서 쉬해! 나가면 쉬할 데 없어.

탱글이 빨리 엄마한테 와! 양말!! 마스크!!!!!"


그 와중에 심장은 터져나갈 듯이 쿵쾅거리고

다리는 맥이 빠지듯 후들거려왔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내가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들은 더 불안할 것이라는 마음에 정신을 다잡았다.

‘자 괜찮아. 지금 나가면 돼. 빨리 나가자. 오류 일 수 있다고 했잖아.'


아이들도 긴장했는지 엄마 말에 잘 따라줘서 순식간에 준비를 마쳤고, 우리는 집을 나섰다.


"이상하다. 너무 조용한데??"


창밖을 내려다보니 사람들이 전혀 동요하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만 그런 건가. 우리 집에만 잘못 울렸나.

그래도 빨리 내려가야 하지 않을까?"


옆집은 어떤 상황인지 여쭤보려고 벨을 누르고 기다리고 있는데 인기척이 없으셨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위급 상황엔 계단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지침대로 내려가려는 찰나

관리소에서 올라오셨다.


아저씨 말씀으론, 흐린 날에 오작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래층에서 화재감지가 되어서

위아래 층에 화재경보가 함께 울렸다고 하셨고,

확인 중이긴 하지만 화재였으면 지금쯤 더 문제가 심각해졌을 거라고.

안심해도 좋다고 하셔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계단으로 내려가려던 우리는, 특별한 징후가 없으니 엘리베이터를 타도 좋다는

관리사무소 아저씨의 말씀에 황급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봉봉네는 고층이지만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한 번도 시간이 길다 느끼진 않았는데,

그날은 엄청 길게 느껴졌다. 1층에 도착하자 안도감이 들 정도였다.

얼른 현관을 빠져나와 밖을 나와보니, 세상에.

다들 너무 평온하다.


일단은 밖에 아이들과 무사히 빠져나왔다는데 안도감이 들었지만,

한편으로 너무 평온한 바깥의 모습에 좀 허무하기도 했다.


'내가 너무 호들갑을 떨었나?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아파트를 연신 뒤돌아 보며 산책로 쪽으로 걸어 나가는데 다리가 너무 후들거렸다.

놀란 기색이 가득했던 봉봉도 “엄마 우리 집 괜찮아요? 불나는 거 아니죠?"

하면서 계속 묻고 아파트를 뒤돌아 봤다.


정신을 차리고 욥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 상황을 전해야지 하는 순간,

"띠리리리리리 띠리리리리리-- 여보세요??"

하는데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거다.


"여보..ㅠㅠ (..........)우리 집에 화재경보...

(......................) 울려서 애들하고

나하고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

지금 밖에 다행히 나왔어."

라는 말을 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내가 울면 아이들이 놀라 함께 울까 봐 최대한 참았는데, 눈물이 자동으로 흘러나와 막을 수가 없어

뒤돌아 눈물을 훔쳤다. 하필 이런 순간에 욥이 없는 게 속상하기도 하고.

별일 아니어도 오늘 밤은 어찌 보내나 싶고.


그렇게 아이들과 집 앞에 있는 산책로로 향했다.

조금이라도 집에서 멀어져야 마음이 안정될 것 같아 걷기 시작했는데,

그제야 정신이 들어 옆에서 의젓하게 탱글이랑 엄마 챙겨가며 첫째 노릇 톡톡히 해준 봉봉을 칭찬해줬다.


"봉봉아, 오늘 봉봉이 진짜 침착하게 잘했어. 분명 우리 집에 불이 난 건 아니겠지만,

이렇게 진짜 불이 났을 때 오늘처럼 침착하게 빨리 준비해서 나오면 되는 거야. 오늘 정말 든든했어."


그랬더니 놀란 가슴을 계속 만져보라면서도,

얼마나 씩씩했었는지 자꾸만 이야기해달라는 통에 20번 이상은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던 것 같다.


서로의 심장을 만져보는데 두꺼운 겨울옷 밖으로도 쿵쿵거림이 남아있는 게 느껴졌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엄마랑 누나가 장난치는 것 같지는 않아서 그랬는지

자그마한 탱글이 심장도 유난히 빨리, 쿵쿵 뛰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난리통에 챙겨 나온 가방 속을 보니 당황스러웠다.

아침에 욥을 마중하러 나갈 때 가져가려고 챙겨놓은 가벼운 에코백엔

기저귀, 물티슈, 핸드폰 충전기, 손소독제, 웬 서류, 공인인증서, 

이쭈 몇 개와 쌀과자 네 봉지가 초라하게 들어있었다.


가방 속에 내 물건은 핸드폰 충전기뿐.


급한 와중에 핸드폰 충전기를 빼면 내 안위를 위한 물건은 없다는 게 뭔가

허무하기도 하고 웃음이 났다.


'엄마는 엄마네. 나도 참.'


그러면서 정말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뭐가 필요할지 고민해봤는데,

당장 애들 씻길 거(소독제), 기저귀, 간단한 먹을 거 외엔 생각나는 게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뿐.

이렇게 또 하나의 사건이 마무리됐다.


두어 시간이 흐른 후 돌아온 집엔, 다행히 별일이 없었다.

하지만 화재 발생 경보로 급히 우리가 떠난 자리는 그 급박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내팽개쳐진 엘사 드레스, 탱글이 바지, 내 양말 등등.



그 날 화재경보로 놀란 것도 있지만 더욱 놀란 것은,  봉봉이의 탈의 속도다.

거의 127 drs/s (초당 봉봉 드레스 환복 스피드)     정도로 출생이래 최대속도였다.


평소엔 옷 입고 벗는 일에 "얼른 입어 봉봉아!"를 입에 달고 있어야 하며 보통은 7-11 drs/s 정도의 속도인데 그날은 엘사 옷을 벗고 본인 옷을 갈아입는데 20초가 채 안 걸렸으니 말이다.

봉봉이 너, 더 빨리 할 수 있는 거였어??


그래도 어쨌든, 화재가 아니어서 너무 다행이고

봉봉이 듬직했고 탱글인 순조롭게 따라와 준 것 모든 것이 다행이었다.


그날은 쉽게 잠이 오지도 않았지만, 밤에 잠들기 전에 방문 근처에 옷가지와 가방을 미리 꾸려뒀다.

언제든 바로 뛰어나갈 수 있도록. 휴.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그런 날이었다.




응급상황 시 필요한 가방을 하나 미리 준비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아 몇 가지 생각해보았다. 

무엇이 필요할까?


<아이들과 위급상황 발생 시 챙겨나갈 물건 list>

(어멈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휴대용 물티슈, 면손수건, 작은 생수, 기저귀,

작은 렌턴, 간단한 간식거리, 마스크,

지갑, 휴대폰, 인증서, 충전기.


손소독제는 적으려다 알코올 성분이라 화재위험이 있을 것 같아서 제외.


뭐가 필요할까 생각하며 적어보는데,

글쎄 참 어렵다.

당황스럽던 그날도 느꼈지만

응급상황에는 무사히 나가는 것만 생각나니까.

전화기, 지갑 정도만 챙겨서 나갈 것 같다.

가제 손수건 정도만 챙겨놓을까.


아무튼 다시는 응급 상황이 안 생기길 바라며.



심란한 엘사. 봉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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