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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어멈 Feb 16. 2021

끔찍한 사랑.

캥거루 수술 이라니.







쑥스럽고, 돌이켜보니 끔찍한 일기.



이사를 한지 일 년이 넘어간 지 오래인데,

아직도 정리를 하는 중이다.

왜 정리는 늘 끝이 없는 걸까?


철마다 바꿔줘야 하는 물품들도 있지만

오랜 시간 쌓여있는 문서들도 정리할 것이 많았다.

쌓여있던 박스들 중에 욥과 어멈이 주고받은

편지들도 많았는데, 그 안에서 다 채우지 않은

일기장을 발견했다.

매일을 기록할 수 있는 핑크색의 작은 노트.


휘리릭 넘겨보니 쓰지 않은 새것 같아서

핑크를 좋아하는 봉봉에게 주었다.

봉봉은 너무 신이 나서 이리저리 둘러보며 좋아했다.


그. 런. 데.!

쑥스러운 일기 몇 개를 발견!!!


“엄마 이건 뭐예요??”


다시 보니 그 일기장은 결혼하고 얼마 안 되어서 구매한 것이었다.

신혼 초에 욥의 해외출장이 잦았던 터라 일 년에 반 정도밖에

함께 있을 시간이 없었던 우리는 늘 아쉬웠다.

그런 마음을 담은 그림을, 다시 보니 끔찍했다.

그땐 귀엽고 재밌다고 생각했는데.


“엄마 이게 무슨 이야기예요??”


봉봉이 이미 일기장을 갖기로 했으니,

그 부분을 잘라낼 수도 없기에 설명은 해줘야겠고.

그렇다고 다시 보니 사랑스럽지만은 않은 저 이야기를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난감했다.


결국엔,

“아~그건 엄마가 아기 캥거루처럼

아빠 주머니에 들어가면 같이 출장에 따라갈 수 있을 거 같다는

상상을 그린 거야~.”

라고 설명했지만 참 쑥스럽고 이상했다.


그 그림을 그려놓고,

“이것 봐라 욥? 너무 웃기지~~~”했었는데.

욥을 캥거루로 만들겠다고 주머니 수술을 시키다니.

그리고 거기에 또 태연하게 타다니!!

야매 수술에 대한 그림을 그리다니!!

내가 그린 그림이지만 좀 심했다.

미안해 욥.


그땐 그게 너무 사랑스러운 장면이었는데.

그림으로 이렇게 미안해질 수 있다니.


이런 미안한 마음이 계속 드는 이유가 뭘까? 하고 생각을 해보니

이유가 있었다.

그때는 어멈 인생에 수술을 해보기 전이라

웃음용으로 감히 수술 장면을 그릴 수 있었는데,

막상 봉봉과 탱글을 낳으며 진짜 제왕절개 수술을 하고 보니

웃으며 그릴 내용은 아니다 싶었다.

(아, 물론 저 그림의 수술은 주머니를 붙이는

상상의 수술입니다. 아닌 거 같기도 하지만요.)


아무튼 사랑이 지나쳐서 끔찍해졌다.

그래도 참 풋풋했던 우리.

그 외에도 몇 개의 일기가 발견되었지만,

나머지는 다행히 평범했다.


쑥스럽지만, 우리만의 이야기를 아이에게 설명해야 하는

곤란하면서도 말랑한 기분이 드는 상황.


그나저나 이제는 어멈뿐 아니라

캥거루 주머니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둘이나 늘어버려서

주머니 사이즈를 더 늘려야 할 것 같은데, 큰일이다.


우린 욥의 아기 캥거루들.

물론, 어멈까지 묻어가기엔 정말 너무너무 쑥스럽지만 그래도!

마무리도 끔-찍하게! 사랑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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