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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어멈 Feb 13. 2022

[공지] **** 어린이집 공지사항이 작성되었습니다.

엄마의 자가검사 키트 요령



집콕 4일 차.

명절이 있는 주 일주일을 온전히 방학처럼 보내고

다시 등원한 월요일.

아이들이 유독 늦게까지 잠을 못 이뤄서

함께 늦게까지 눈뜬채로 누워있던 밤이었다.


갑자기 핸드폰이 “드르르르”.


< [공지] **** 어린이집 공지사항이 작성되었습니다. >


늦은 시간에 온 알림인 데다 평소엔 거의 없던

일이라 확인하기 전부터 두려움이 앞섰다.

빠르게 확인해 본 글에는, 탱글이의 어린이집에서 확진된 친구가 있다는 이야기.


확산세가 예사롭지 않더니, 정말 가까이 온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 동안은 다행히 한 번도 확진 소식이 없어서

감사할 일이다 싶었는데.. 이젠 어쩔 수 없어졌다.


확진 친구는 자가검진키트로 양성이었고,

탱글이와 같은 반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 확진된 친구의 동생이 탱글이와 같은 반이었는데, 일단은 자가키트로 음성.

탱글이 포함 우리도 갑자기 신속항원검사를 요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아이들이 거의 잠들고, 이제 나도 슬슬 자야지 하던 상황에 갑작스러운 알림은

그날 밤 내 밤잠을 몽땅 가져갔다.


갑작스레 마음이 급해지며 고민이 시작됐다.

검사를 키트로 해봐야 하나,

선별 진료소를 가야 하나..

선별 진료소 주차가 편한 곳은 넓은 공원인데,

추운데 애들은 몇 시간이나 서있어야 할까?

며칠 사이에 검사 방식도 바뀌었다는데...


심란한 고민들을 하다가 결국 근처

멀지 않은 공원에 있는 선별 진료소로

아침 일찍 아이들을 데리고 나서기로 마음을 먹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하나씩 여분으로 챙기고,

각자 입고 나갈 옷, 모자와 목도리, 장갑,

그리고 핫팩, 추워할지도 모르니 차에 돌아왔을 때 마실 따듯한 물을 봉봉이 와 탱글이 각각.

배고프다고 할지도 모르니 간단히 먹을 간식들.

그렇게 챙기고 보니 짐이 한가득이었다.


처음 알림을 볼 때의 심란함과는 다르게

현관 앞에 짐을 챙겨놓고 보니,

마음이 갑자기 굳건해졌다.


'그래, 그깟 검사.

다 괜찮을 텐데 뭐가 그리 걱정이야.'


그러면서도 아침에 일어나서 어떻게

아이들을 준비시키고 설명할지 고민을 하며

자리에 누웠더니, 꼬박 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맞은 아침.

아이들을 7시에 일찌감치 깨워, 주먹밥을 준비했다.

배가 고프면 더 춥게 느껴질 것인 데다,

언제 밥을 먹을 수 있을지 대기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라 조금이라도 먹여갈 생각으로 분주하게 아침을 먹였다.


아침에 눈만 뜨면 "엄마 배고파요~~." 하는 탱글이도 새벽부터 밥을 먹이는 엄마가 의아하다는 듯,

"엄마 왜 밤인데 밥을 먹어요?" 라며 묻고.

아이들도 영 상황이 어색한 눈치였다.


탱글이는 '코로나'라는 것도 잘 모를 뿐만 아니라, 병원에서 콧물 뺄 때도 기겁하는 아이여서

먼저 말해줄 수 없었다. 대신 봉봉이에겐

이 상황을 설명하고 '봉봉이가 엄마를 많이

도와줘야 한다. 씩씩하게.' 라고 부탁을 해보았는데,

코로나 검사를 해본 친구들 이야기를 떠올리며

걱정가득이었으나 결국 별말 없이

씩씩하게 따라나섰다.


아빠가 일정이 있어 며칠 집을 비운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우리 셋에게 주어진 이 일이 버겁기도 하고

한편 또 하나의 추억이 생기는구나 싶기도 한

복잡한 마음이 가득했다.


그런데 변수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친구에게 잠시 통화를 하는 중에 알게 됐다. 신속항원검사는 선별 진료소에

가더라도 셀프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을!!!!

친구는 그래서 병원으로 다녀왔다는데,

당장 근처에 검사해주는 병원은 없고 난감했다.

셀프로 아이 둘을 데리고 나까지 검사를 하고

온다는 건 도저히 엄두가 안 났다.


이미 선별 진료소로 갈 준비를 다 해놓은 터라,

난감하기도 하고 선별 진료소던 병원이던

업무가 시작하기 전에 가야 대기가 길지 않을것

같다는 마음에 자꾸 초조했다.

고민하던 사이에 시간이 꽤 흘렀고,

멀지 않은 곳에 운전으로 가기 부담스럽지 않은

호흡기 진료 전담병원을 찾아 출발했다.


여기까지가 이야기가 참 길었는데,

그 후엔 너무나 다행히도 그 병원에서 순조롭게

대기 없이 바로 검사를 했고 20분 정도 후에 '음성'결과를 듣고서 예상한 시간보다 훨씬 일찍

집으로 귀가할 수 있었다.


물론, 대기 없이 빠른 검사는 참 감사한 일이었지만.

생각보다 신속항원검사는 pcr과 같은 느낌이었다는 것과, 봉봉이가 검사하면서 눈물이 날정도로 아프다고 하는 바람에 탱글이가 검사실에서 줄행랑치는걸 빛의 속도로 뛰어가 겨우 안고 검사를 했던 것. 그 작은 콧구멍들에 키트를 넣고 아프게 한 것 등. 돌이켜보니 아찔하면서 참 웃기기도 속상하기도 했다.


핫팩, 모자, 장갑, 따듯한 물, 간식 등.

준비해두었던 것들이 괜한 짐만 되었지만, 그래도 빨리 검사 결과를 듣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 감사했다.


그 길로 우리는 한 발자국도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무려 4일간.

혹시 모른다는 마음에 때때로 체온을 재고,

따듯한 물을 자주 마시고,

좀 유난스럽지만 심지어는 쓰레기도 버리러 나가지 않은 채 며칠을 버텼다.


화, 수, 목, 금. 4일 차.

밀접접촉까지는 아니니, 이정도면 짧은 외출은 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최초 검사일로부터 며칠 지난 상황이니 집에서 미리 준비한 자가검사 키트로 검사를 하고

음성이 나오면 드라이브라도 하러 나가기로 했다.


‘검사’라는 말에 당연히 기겁하는 아이들.

대신 검사를 마치고 아침메뉴 빵에 장난감까지 함께 나오는 햄버거 가게를 곧바로 다녀오기로 약속하니,

영 내키지는 않지만 동의해 주었다.


사실 나도 자신이 없었다.

내 코에 넣는 것도 엄두가 안 나는데

저 조그만 콧구멍들에 얇은 면봉 같은 것을

집어넣을 용기가 안 났다.


그때! 갑자기 떠오른 상황.

'아!! 의사 선생님으로 변신해야겠다.

엉뚱한 의사 선생님.'


아이들의 의사놀이 장난감을 꺼내 주섬주섬 식탁에 자리를 마련하고, 청진기를 목에 걸고,

수술도구들을 몇 가지 내려놓는다.

체온계, 귓속을 보는 도구, 주사, 뿅망치 같은 것들.


아이들은 엄마가 병원놀이 해주려나보다 하고

내심 신이난 상태였다.




엄마: “안녕하세요? 네네. 병원입니다. 오늘

신속항원검사하러 오신 분들 여기 줄 서시고요,

먼저 체온부터 재겠습니다."

(그러면서 굉장히 바쁘다는 분위기로 연신

부스럭부스럭 왕진가방을 뒤진다.)


봉봉과 탱글: "엄마 뭐하세요? 왜 그래요?"

(봉봉과 탱글은 연신 키득키득)


엄마: "아, 저는 의사 선생님입니다.

요새 검사자가 많아서 왕진을 나왔어요."

(분명 병원이라고 했는데? 갑자기 왕진을?)


봉봉과 탱글: “왕진이 뭐에요?”


엄마: “의사선생님이 특별히 집으로

진찰하러 오시는 거에요. 그게 접니다.”


엄마: 자, 일단 체온부터 재겠습니다."

"아, 아까 쟀죠? 그럼 귓속을 보겠습니다."

(의사선생님이 어딘가 엉성하지만 아이들은 간지럽고 어이가 없는 듯, 웃음이 가득했다. 다행히도..)


엄마: "아참, 청진을 안 했네요.

배에 청진기를 좀 대보겠습니다."

(고장 난 청진기는 심장이 세 번씩 두근대고,

아이들은 간지러워서 웃고.)




이렇게 정신을 쏙 빼놓으니,

갑자기 자기들끼리 장난감이 쌓여있는 곳으로

후퇴해 주었다.

그 틈을 타 장난감 청진기를 한 채로,

키트를 세 개 준비.


장난감과 뒤섞인 키트들.


일단 용기를 내서 내가 먼저 키트를 해본다.

내 콧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키트 면봉은

생각보다 콧속으로 잘 들어가지 않았다.

(참고로 키트면봉은 신생아용 면봉의 절반정도

두께이며 길이는 두배정도 길다.)

마치 누가 내 손을 붙잡은 듯 느낌상 1.5센티?

그 이상은 콧속으로 들어가지지가 않았다.


콧속 진입만 1센티일 테고

그다음 좁아지는 구간이 있는데,

살짝만 넣어도 재채기가 날듯하고 불편한 느낌에

도무지 용기가 안 났다.

도대체 그럼 선생님은

면봉을 콧속에 어느 정도 넣으셨던 걸까?


이왕 시작한 거 좀 더 용기를 내서

깊이 면봉을 휘젓고, 검사를 일단 마무리했다.

'이렇게 괴로운걸 어떻게 검사를 시키지...'

도저히 집에서 아이에게 할 일은 못되었다.

하지만 일단 준비는 해놓았으니

봉봉이를 설득해서 앉혔다.


봉봉이는 도망갈 듯 엉덩이를 한참이나 멀리 두고 앉았지만, 그래도 많이 컸다고

싫으면서도 생각보다 어려움 없이 "엄마, 선생님이 검사하셨던 만큼 아파요!!” 한마디 하고 말았다.


탱글이의 자가 키트 검사는 다시 생각하기도 싫다.

싫다는 아이를 따라 바닥까지 내려가,

같이 눕다시피 한 채로.. 겨우 콧구멍을 찾았는데.

문제는 아이들 콧구멍이 생각보다 너무 작아서

그 작은 면봉을 넣기도 너무 미안하고 힘들었다.

그리고 들어가지도 않은 거 같은데 면봉을 넣어보니 뭔가 금방 콧속 벽 같은 게 느껴지고. 싫다싫어.


하여튼 너무 곤란하고 면봉을 넣는 내 입장에서도 너무 괴로웠다. 그 와중에 바둥바둥.

자가 키트 검사는 집에서 할게 못되는 것 같다.

두 번 다시 아이들에게 키트검사 하고 싶지 않다.

차라리 내가 세 번 하고 말지.



다행히 또 한 번 음성이어서, 우린 맥***에 가서

아침메뉴를 잔뜩 사들고 와

콧바람도 좀 쏘이고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

그리곤 각자 사탕도 두 개씩 당당하게 먹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날 줄 알았는데.

한시름 놓은 오후에 다음 주에 등원하려면 한 번 더 검사를 해야 한다는 알림이 왔다.

벌써 끔찍하다! 이번엔 또 뭘로 회유해야 하나..


왜 하필 이런 일들은 꼭!

아빠가 자리를 비울 때 일어나는 걸까.

욥의 빈자리가 너무 큰 일주일.

용기 있게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글을 시작할 때 야심 차게 <엄마의 자가검사 키트 요령> 이라며 부 제목까지 붙여놓았지만,

마무리하며 솔직히 하는 말이지만

요령이란 건 없었다.


요령이 있다한들 먹히지도 않고,

그냥 최대한 서로 울고불고하지 않는 선에서

빠른 스피드로 마무리하고 잘 달래주는 것 외에는..ㅠㅠ

요령보다는 용기, 그게 제일 많이 필요했다.


처음 겪는 일들에 대한 두려움도 그렇고,

점점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 정말 많다.

용기가 지혜가 필요한 요즘.


코로나야 좀 떠나 주면 안 되겠니?


불쌍한 우리 아이들,

그리고 모든 분들이

건강하게 이 시기를 지나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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