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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어멈 Nov 04. 2021

두 발 자전거와 봉봉

뭐니 뭐니 해도 자전거 탈 때 드레스코드는 핑크죠!



봉봉이는 처음 봉봉이라는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 이래로 참 많이 컸다.

처음의 봉봉이는 솜사탕처럼 날아갈까 싶기도 할 정도로 보드랍고 작았는데,

어느새 지금의 봉봉이는 제법 묵직하게 그리고 꼿꼿하게 자기 자리를 잡고 있다.


글을 오랜만에 쓰는 데다, 기왕이면 감동적인 이야기를 써야지 하곤

최근 들어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을 '작가의 서랍'에서 꺼내왔는데.


글을 쓰려고 사전에 올려놓은 사진을 보고 있자니, 세상에.

참 핑크 핑크다. 저 정도로 핑크였나 싶긴 한데, 저 날 만큼은 참 핑크였다.

봉봉의 핑크사랑. 사진 속 핑크는 너무 예쁜 솜사탕을 잔뜩 모아놓은 느낌이다.


세 살 즈음부터 시작된 봉봉의 핑크사랑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데,

때로는 핫핑크, 또 어떤 때는 인디핑크, 좋아하는 핑크도 참 각양각색이다.

엄마인 나는 핑크를 경기하듯 싫어했는데, 3-4년이 지난 지금은

봉봉이 보다 더 먼저 핑크를 찾아보거나 핑크 계열로 온통 봉봉이의 물건들을

사모으고 있었다. 저 사진이 바로 결과물이었으니.


여전히 핑크공주인 봉봉은 요새 자전거 타기에 여념이 없다.

(사실은 이게 메인 주제이고 뒤에 가면 분명 감동적일 텐데, 엉뚱하게 흘러서 자신이 없다.)

올해 어린이날에 선물 받은 자전거인데, 최근까지도 헐렁하게 매달린 보조바퀴 두 개를 더한

네발자전거 상태였다.


주변 친구들 중에 아직 보조바퀴를 달고 타는 친구도 있지만,

이젠 제법 두 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친구들이 늘어서 봉봉이가 마음이 좀 조급해지던 어느 날.


햇살이 따뜻하게 느껴지던 오후에 호기롭게 자전거를 끌고 나섰다.

그날따라 봉봉은 보조바퀴를 불편하게 느꼈고,

이때다 싶어 보조바퀴를 떼고 타보는 게 어떻냐고 조심스레 권했다.


일단 동네 동생의 작은 두 발 자전거를 한번 타보고 결심을 하겠다더니,

동생의 작은 두 발 자전거는 사실 봉봉의 자전거와 사이즈가 같은 것이었다.

동생이 타니까 어련히 작은 자전거일 거라고 생각했던 봉봉은,

조금 당황한 뒤 다시 자기 자전거로 돌아와 보조바퀴를 떼었다.


할 수 있다며, 오늘은 해볼 거라며.

대신 엄마가 꼭 잡고 있어줘야 한다고 거듭 확인을 받은 뒤, 이런저런 방법들로 연습을

시작했다.


때마침 그 동네 동생이 나와서 같이 자전거를 두발로 타기 시작하자,

봉봉이는 조금 다급해 보였지만 이내 제 페이스를 찾는 듯 보였다.

하지만 동네 동생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훈수를 옆에서 두기 시작했고,

결국 듣고 있던 봉봉은 (웃으며 말하긴 했지만) 제발 저리좀 가달라며 동생의 훈수를 거절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작!


"자 이렇게 해보는 거야~!"

"그렇지 다시 해보자~!"

"엄마 그냥 보조바퀴 달까요?"

"그냥 해볼래요!"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던 중!!!!!


"어~~ 어!!! 어!!!!!!!!!!!!!!!!!!!!!!!!!!!!!!!! 탔다!!!!!!!!!!!!!!!!!!!!!!!!!!!!!!!!!!!!ㅠㅠ"

정말 짧은 순간이었고, 다리 굴림 횟수로 봐서는 5회 정도 되었는데,

탔다!!!!!!!


한 1-2초 정도의 순간이었는데,

마치 봉봉이 처음 태어났을 때 그 얼굴을 처음 보고 눈물이 났던 날처럼

갑자기 눈물이 나려는 거다. 주변에 봉봉이의 친구 엄마도 있었는데.

이게 이렇게까지 감동적인 건가? 스스로도 의구심이 들었지만,

정말로 그 순간에 자전거를 두발로 혼자 굴리고 간 봉봉에겐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이게 뭐 그럴 일이라고. 여기서 마무리해야 할 느낌인데)


묘한 기분이었다.

나중에 봉봉이를 시집보낼 때의 느낌이 혹시 이런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유치원 입학식 날도 이런 기분이었고,

봉봉이가 처음 걸었을 느꼈던 느낌 같기도 하고.

그래도 가장 뭔가 강한 느낌을 가진 순간이었다.

아직도 머릿속엔 그 장면이 생생하다.

그렇게 그녀는 성공했다.


몇 번을 넘어지고 성공해낸 봉봉이가 너무 기특했지만,

그날 그렇게 열정적으로 자전거를 탄 뒤 봉봉이는 지독한 감기에 걸려

학교도 일주일이나 못 가고 집에서 요양을 해야 했다.

봉봉이가 두 발 자전거를 타게 된 대가가 너무 컸던 거다.

적당한 선에서 봉봉을 말릴걸.


그로부터 아직도 못 타고 있다.

아예 타겠다는 이야기도 꺼내지 않는 걸 보니, 어쩌면 그날 호기롭게 탔으나

조금 겁이 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참 씩씩했던 봉봉.

자전거를 타고 슝~달려가던 그녀의 뒷모습.

평생 그 1-2초를 잊지 못할 것 같다.


핑크공주 봉봉~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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