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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어멈 Sep 10. 2021

여름날의 추억(방학의 민낯)

봉봉네가 그동안 어떻게 보냈냐면요,




방학을 내심 기다렸다.

갑작스러운 4단계로 원격수업을 하게 되면서 이미 방학이나 다름없었지만,

평소보다 조금은 더 자고 일어날 수 있겠거니 하는

기대하는 마음 때문이었는데.


부지런한 우리 집 녀석들은

6시 50분 기상해서 엄마 일어나라며 불러대는

아주 착한 친구들이었다.


그렇게 부스스하게 일어난 우리는

티비앞에 모여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며 잠시

정신 차리는 시간을 갖고.

나는 부랴부랴 배고프다고 아이들이 보채기 전에 먹을거리를 준비한다.


학교 가는 날은 시간에 쫓기니 아침을 간단히 먹이지만,

방학은 방학이니까 간단히 먹인다.

간단히 먹여야지 하고 마음먹으면 오히려

중간중간 부지런히 간단치 않은 것들을 먹이기도 한다.

제법 갖춰진 음식들로.


아침메뉴로는 주로 시리얼, 빵, 밥+김, 국+밥, 멸치+밥, 주먹밥,

과일, 요구르트 등이었다.


아침을 먹으며 바쁘지 않게 하루를 보내야지 다짐하면서도

머릿속으론 바쁜 하루가 이미 짜인다.

어디라도 나가야, 시간이 빨리 가니.

아무리 더워도 산책 일정은 꼭 넣는다.


식사가 끝나고 뒷정리할 때쯤이면 아이들은

티비를 보며 장난감을 꺼내어 여기저기 펼치기 시작한다.

설거지가 끝날 때쯤 장난감이 덜 어질러져 있으면

그날은 행운이 올지도 모르는 날이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행운일지도.


하는 것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벌써 10시 45분쯤이다.

여기서 더 지체했다가는 너무 늦어 점심시간도 곤란해지고,

해가 너무 뜨거워서 서로 지쳐 싸우다 들어올게 분명해서

부랴부랴 모자, 얼음물, 비눗방울을 챙겨 들고 동네 산책을 나선다.


거의 목적 없이 짧은 산책이지만, 세 번에 한 번은 과일을 사러

집 앞 과일가게까지 가거나 봉봉이의 학교 앞 아이스크림가게까지 가서

아이스크림과 비눗방울 액체 500ml를 쟁여두러 간다.


집 앞엔 바로 놀이터가 있는데도 그건 산책의 마지막 코스이다.

탱글이가 누나 그네 타는 걸 용서치 않기 때문이다.

누나가 그네를 신나게 타려고 하면 마치 세상 잃은 사람처럼 슬프게 소리 지르며 운다.

"누나 내여!! 아아아악 내여!!! 아아아 앙~~~" 누가 보면 큰일이 난 줄 알 정도다.


전에 한번 헬륨가스를 넣은 풍선을 들고 풍선이랑 누나가 날아가는 척 장난친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론 종종 누나가 그네를 타는 순간이면 날아가면 안 된다고 엉엉 운다.

그걸 보곤 꼭 봉봉이는 신난다고 약 올리듯 더 하늘 높이 타며 "탱글아 누나 더 높이 타면 안 돼?" 하니.

내 속은 한여름 불볕더위처럼 그네 앞에서 많이도 타들어 갔다.


그럼에도 놀이터는 지나칠 수는 없는 곳이기에,

산책을 시작하면 꼭 마지막에 들른다.


그렇게 "덥다! 너무 덥다!!"를 연발하며 땡볕더위 시간에 산책을 하고,

놀이터를 잠깐 들르고, 집에 도착하면 신나는 시간이 기다린다.

바로! 베란다 풀장!!!


올해는 '베란다 풀장이 없었으면 어떻게 지냈을까?' 싶을 정도로 알차게 사용했다.

거의 방학 30일 중에 15일은 이용했으니 이번 여름 1등 아이템이었다.

그렇게 2시간 정도 한낮 더위를 피해 논다.

여기서도 둘이서 잘 놀면 그날은 행운의 날, 싸워서 20분 내로 한 명 밖으로 나오면

그날은 슬픈 날.

다행히 날이 더워 그런가 대부분의 날에 둘이 사이좋게 놀아서 행운의 날이 많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점심은 어떻게 하느냐.

두 번의 한 번꼴로 물놀이를 하는 날이면 특식이 제공된다.

거의 풀빌라에서도 떠먹여 주기까지 제공되니, 이만한 룸서비스가 어디 있을까?

아이들이 물놀이하고 나면 씻겨야 하는데 시간이 애매하니 웬만하면

밥을 한 그릇에 담아 물놀이를 하는 동안 떠먹였다.

그러면 시간도 절약되고, 아이들도 놀면서 먹으니 좋고 1석2조였다.

가끔은 '탱글이 식습관 안 좋은데..' 하며 식탁에서 제대로 앉혀먹여? 하는 마음도 떠오르지만

내 정신건강을 위해 산책과 물놀이도 시켰는데 밥이라도 편하게 가자하며 위로했다.


점심메뉴로는 아이들이 잘 먹는 인스턴트 떡갈비, 핫도그, 달걀에 밥, 볶음밥,

햄에 밥, 빵과 과일 등. 이것저것 잘 먹는 메뉴로만 준비한다.

안 그러면 기분 좋게 놀면서 그 안에서 또 먹네 안 먹네 전쟁하며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다.


이렇게 까지 길게 쓰려고 시작한 글이 아닌데,

아직 반도 안 적었다.


적당히 물놀이를 하다 보면 시간은 대략 1시 반에서 2시쯤이 된다.

아이들이 슬슬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면 그로부터 20분 안에 목욕을 시작해야 한다.

탱글이는 머리 감기도 수월하고 빨리 씻어지니 보통은 탱글이를 먼저 씻긴다.

탱글이는 여지없이 머리를 감길 때면 한바탕 싫다고 울고, 그럼에도 여지없이 빠른 속도로

씻겨낸다. 머리만 감고 나면 탱글인 금방 기분이 좋아져서 그 순간만 잘 넘기면 된다.

후다닥 씻겨서 말려서 입히면! 이제 탱글인 낮잠만 자면 되는 그런 시간!


다음으로 작아진 수영복이라도 꼭 입고 들어가겠다고 하는 봉봉이를 욕실로 옮겨

힘겹게 수영복을 벗겨주면, 이젠 초등학생이라고 혼자 씻는다.

마지막에 마무리만 해주면 돼서 그마저도 얼마나 고마웠던지.

작아진 수영복을 벗기면서 나랑 봉봉이가 싸우지 않으면 그다음은 아주 순조롭다.


봉봉이가 씻는 사이 탱글이는 낮잠을 준비한다.

책을 읽어주거나 노래를 틀어주면 그래도 낮잠을 자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사실 방학초기에는 서로 자네 안자네 하면서 그 작은 탱글이랑 투닥거렸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낮잠시간 자체를 너무 싫어하게 되는 거 같아서

어떤 날은 드라이브, 어떤 날은 그냥 놀게 해 두었더니 어느 순간 스스로 자고 싶다고

이야기도 하고 짜증도 덜 내게 되었다.

낮잠을 자야 그 시간에 나도 좀 쉬고 다음 해야 할 일, 혹은 밀린 일들도 할 수 있기에

웬만하면 탱글이의 낮잠은 필수이다.


그 시간 동안 봉봉인 자유시간이다.

24시간 내내 엄마 못지않게 늘 동생과 붙어있어야 하는 봉봉은 그 시간이 아주 자유로워서

이것저것 하고 놀거나, 엄마가 시키는 날엔 숙제들 좀 하거나 간식도 먹고 어떤 날은 엄마랑 놀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티비보면서 쉬고.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었다.


낮동안에 이것저것 집안일을 해야 하는 엄마 대신에 탱글이를 놀아주고 안아주고

심지어 업어주기도 하는 아주 든든한 누나가 됐기에.

그 누나에게도 충분히 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봉봉이도 애기인 게, 탱글이가 잠들면 애기로 변신한다.

"응애응애!!!"는 물론이요, 탱글이가 깨어있는 동안 오롯이 못 차지했던

엄마품을 찾기도 하고, 같이 인형놀이나 티타임을 하자며 조르는데.

사실 엄마도 쉬자고 말 한 순간이 많아서 5번 중에 2번밖에 못 놀아준 것 같다.

글을 쓰며 돌이켜보니 봉봉에게 더 미안하다.


그렇게 오후 시간이 지나간다.

어떤 날은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날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너무 순조로워서 이대로 천천히 멈춰있었으면 싶은 날도 있었다.


해가 길어져서 낮이 한참이지만, 오후 그늘이 집으로 들어올 시간이면

저녁을 뭘 먹을지 고민해야 한다.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 그리고 또 밥. 삼시 세 끼를 계속 챙겨 먹으려니 하루 종일

밥만 한 것 같은 날도 있고. 그런 날이면 현타가 오곤 한다.


어쨌든, 먹어야 사니까.

아침, 점심이 부실했고 저녁이 준비하기에 좀 여유롭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다른 끼니와는 달리 골고루 영양소를 준비해본다.

물론 그것도 거창한 반찬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식이섬유/ 단백질/ 탄수화물/ 과일 등이

골고루 들어가도록 바꿔가며 식사를 준비한다. (좀 자신없이) 준비했던 것 같다.

인스턴트 단백질을 먹이면 그것만 먹이기 미안하니까 야채나 사과 토마토 등을 곁들이고,

직접 만든 단백질을 먹이면 인스턴트로 구매해둔 무초절임 이라던지 사서 먹인 백김치 라던지

힘들 들인 것과 들이지 않은 것을 적절히 섞여 먹이니 미안함도 덜했다.

대신 제철과일은 실컷 먹기. 과일을 좋아하는 네식구라 여름 동안 과일은 참 신나게 먹었다.

그리고 어떤 날은 남은 야채로 햄 넣고 휘리릭 볶아 볶음밥을 만들어 먹이면

이건 복불복이었다. 잘 먹기도 잘 안 먹기도. 그래도 생각보다 수월한 끼니 들이었다.


그렇게 저녁시간이 7시 반 전에 마무리가 되면, 그릇만 정리해두고 이를 닦이고 마무리를 한다.

8시 반쯤은 잠자리에 들어간다. 빠르면 9시, 늦으면 9시 반 10시. 육퇴는 대중이 없다.

일찍 일어나도 빨리 안자는 봉봉. 체력이 좋아져서인지 재우기가 쉽지 않다.


반면 탱글인 밤잠은 수월하다. 눕히고 노래 듣고 손만 잡아주면 스르르.

작은 손이 내 손을 꼭 잡고 있다가 스르르 풀려나가면 그 순간이 너무 귀엽기도

너무 신나기도 하는 오묘한 기분이 든다.  


그렇게 보낸 하루하루가 쌓여 방학 끝, 그리고 2학기도 벌써 시작한 지 2주 차다.

돌이켜보면 이번 방학은 놀이터, 베란다 물놀이, 비눗방울, 밥, 기저귀 안녕. 이제 전부다.


비눗방울에 대한 이야기를 못썼지만, 1등이 베란다 풀장이라면 2등은 단연 비눗방울이다.

방학을 비눗방울 없이 어떻게 보낼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매우 유용했다.

비눗방울 충전액만 12통정도는 샀을 정도이니.



비눗방울만큼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게 또 있을까?

그 덕에 나도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신나게 비눗방울을 해본 것 같다.

다음에 비눗방울 이야기도 한번 써야겠다.

비눗방울 스킬이라던지 종류라던지.


이런저런 소소한 일들도 많았지만, 다행히 큰 일 없이 평온한 여름방학이었다.

건강이 최고였던 방학.


놓치고 있는 게 많은 것 같아 잠 못 이루고 초조했던 순간도,

어떻게 알차게 보내야 하나 설레었던 순간들도 많았던 방학이지만

무사히 탈 없이 보낸 게 어디냐 스스로 위로하며 방학을 알차게 보냈다고

마침표를 찍었다.


공부한 건 없어도, 우리가 같이 소곤대고 복작대고 만들어내는 그 안에서

무언가 배웠을 테고 성장했을 테니까.


시간을 놓아버려야 마음이 편해지는 걸 경험한 방학.

참 많이 기억 날것 같은 2021년 여름방학.


아참 한 가지. 지독한 4단계 속에서 집콕으로 얻은 게 하나 있다면,

봉봉이 와 탱글이가 많이 싸우더니 어느 순간 서로 사랑하게 됐다.

탱글이는 누나가 뭐만 하면 그렇게 역정을 내더니, 누나가 업어주고 안아주고 사랑해주니

그 사랑이 통한 걸까? 누나에게 많이 의지하게 된 것 같다.

예쁜 것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싸우겠지만 안 싸우고 지금처럼

지내길 바래보며.


여름 끝자락과 선선한 가을이 교차하는 계절에 독자님들께 소소한 안부를 전해 본다.




다들 건강하시길, 그리고 또 행복하게 지내고 계시기를 바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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