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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오리 May 24. 2024

친절하게 예고된 죽음

무덤과 구더기


천 명이 넘는 생명이 묻힌 무덤 위에 섰다. 무덤인지도 몰랐다. 땅이 말랑했다. 그냥 이 장소 같았다. 빛 공해가 하나도 없는 어둠 속에서 손전등 불빛을 비추며 땅을 살폈다. 짙은 회색의 물이 축축하게 고여 있었다. 가까이 들여다보니 쌀알 같은 것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구더기였다. 묻은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은 무덤. 그 땅 아래는 국가가 죽여도 된다고 허락한 생명 천 오백 명이 묻혔다.


친절하게 예고된 죽음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타임슬립을 하는 이야기가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 누군가의 죽음을 막기 위해 과거로 반복해 돌아가서 미래를 바꾸는 주인공의 애틋한 사랑. 그건 인간의 서사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죽음은 과거로 아무리 돌아간대도 막을 수 없다. 이건 ‘죽음’이 아니라 폐기처분이므로.


애도하기 위해 지체할 시간도 없었다. 꽃 하나도 내려놓을 수 없는 무덤. 얼마 전 소중하게 묻었던 동동이의 무덤과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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