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퇴사를 결심한 이유, 그리고 계기.
서른이 되기 전 결정해야 했다. 내게 서른이라는 나이는 단순히 나이 앞자리가 바뀌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그려온 어른의 기준은 '서른'이었다. 십대와 이십대를 겪으며 나름대로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 경험들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인생을 본격적으로 그려나갈 수 있는 나이가 서른이라 생각했기에. 그림으로 치면, 밑그림 위에 색을 입힐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이십 대의 끝자락에 가까워질수록, 나 스스로 '서른이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고, 그 불안감과 조바심은 점차 커져만 갔다. 물론, 그 이전이라 해도 인생의 방향을 정하고 성실하게 실천해나갈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인생의 분기점은 바로 서른이었다.
그 나이 '서른'을, 정신없고 숨 막히는 직장에서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주 5일을 기계처럼 일하고, 주말에도 끊임없이 업무전화가 오는 지옥과도 같던 직장. 나는 그런 직장에서 인생에 대한 환멸을 서서히 느끼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 환멸이 서른이라는 나이도 의미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서른이 되기 전, 그러니까 스물아홉에는 반드시 결정해야 했다.
올 초까지만 해도 퇴사는 반드시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아무런 고민이나 방향성이 없었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쁘고 많았던 업무량, 그리고 매일 반복되는 '집-회사-집'의 무기력한 루틴은 내게 동기를 부여할 조금의 에너지도 남기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그때는 '좋은 게 좋은 거지'하며 스스로를 위로했고, 내가 그토록 경멸하고 탈출하고 싶었던 그 직장생활과 타협하려 했다. 그랬던 나를 번쩍 뜨이게 한 것은 회식 자리에서의 고객사 업무 통화에서였다.
코로나바이러스가 한창이던 4월 중순, 그간 고생한 팀원들에게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자던 팀장님은 댁으로 우리 팀원들 모두를 초대했고 하하호호 분위기 좋은 회식이 이어졌다. 그 날 전화를 받지 않았으면 퇴사를 하지 않았을까.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간, 이전과 같이 업무회의를 주관하고 스스로를 갑 중의 갑이라 생각하는 중화권 고객사들과 전화로 싸우고 있었을까. 선홍빛 삼겹살이 올라가고 치이익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대만 고객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만 고객사와 업무 할 때 쓰는 메신저는 다른 앱과는 진동이나 연결음 자체가 다르기에 담당자로부터 온 전화임을 직감했다. 팀장님과 과장님이 앞에 계신 자리에서 전화 안 받기도 뭐해서, 작은 보일러 방에 들어가 전화를 받았다. 고객사는 퇴근 후에도 나를 제대로 괴롭힐 작정이었나 보다.
"H 씨, 아까 얘기한 업무 관련해서 추가로 요청할 게 있는데"
"아, 해당 제품 벌써 투입 완료해서 추가로 요청하실 내용이 있으시면 내일 오전에 처리해도 괜찮을까요? 죄송하지만, 저도 퇴근했고 현장 작업자도 퇴근해서 지금 업무 대응이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아니, 평소에는 업무 대응 그렇게 느리다가 오늘은 이렇게 빨리하다니요. 최종 고객이 요청한 건이라 지금 바로 처리해야 합니다. 현장 작업자 아무도 없나요?"
"아, 네네. 지금은 힘들 것 같네요."
"다른 엔지니어가 대응해서라도 지금 처리해야 해요."
"저 말고 다른 엔지니어가 해당 내용을 숙지하지 못해서 처리가 어렵습니다. 내일..."
"아니, 지금 해야 한다고요!"
고객이지만 늘 이런 식이었다. 특히 중화권 고객사는 국내 고객사보다 더욱더 강성이었고 자신들이 갑이라는 위치를 교묘히 이용하는 부류였다. 그간 참아온 스트레스와 감정들이 솟구쳐 올라왔고, 결국엔 전화를 끊어버렸다. 늘 예스맨이었던 내가 이런 행동을 한 건 처음이었고 나 스스로도 그런 행동에 놀랐다. 어쨌든, 전화는 강제로 종료가 되었고 놀라고 흥분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심호흡 몇 번을 한 뒤 돌아간 자리, 팀장님의 한 마디에 결국 와르르 무너졌다.
'잘 해결하고 왔나?'
평소였다면 지극히 가볍고 가벼운 그 질문은, 그 순간 날 선 송곳이 되었고 2년 동안 커질 대로 커져버린 감정과 스트레스라는 풍선을 터뜨렸다. 사모님이 해주신 김밥을 입에 욱여넣어 울음을 참아보려 했지만,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다시 보일러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어린아이처럼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나 스스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울음소리가 커졌고, 눈에서는 폭포 같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정말 쏟아져 나왔다. 뒤따라 들어온 동기 J사원과 J과장님이 나를 달래주었지만, 그 울음은 십 여 분이나 이어졌다. 어느 정도 추스르고 처음 꺼낸 말은,
'더 이상은 못하겠어요.'
그랬다. 더 이상 할 수 없는 정도까지 나 스스로를 끌고 왔다. 2년 동안 일하며 매일 같이 이 직무가 나와 안 맞다는 생각을 하고, 안 맞는 옷을 입은 것과 같이 늘 불편했던 느낌을 받아왔다. 그런 모든 생각과 감정들을 '사회초년생이니까, 사원이니까, 돈을 많이 주니까'라고 스스로 합리화하며 타협하며 꾸역꾸역 버텨왔지만 이제는 버틸 수 없는 정도가 된 것이다.
매일이 지옥 같았다.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은 둘째 치고, 내가 이런 위기와 좌절을 스스로 이겨내지 못했다는 것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내 정신과 일상생활까지 갉아먹는 수준까지 심각해진 상황에서 직장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다음 날 오전, 팀장님과 과장님이 계신 자리에서 면담이 이어졌다. 우선은 주말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심리치료를 받기로 했다. 두 분은 내게 일말의 희망을 보신 걸까. 하지만,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것과 같았던 그날, 나는 이미 퇴사를 결심했다. 다만, 앞으로 인생의 방향을 찾는 것이 더 중요했다. 퇴사준비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