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인데 아직 면허도 없어요?!

운전면허 취득 도전기.

by 본본쓰

고객과의 첫 전화통화 이후에는 바쁜 나날들이 이어졌다. 우당탕탕했던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고객과의 업무전화는 실전에 투입 가능하다는 걸 의미했고, 비교적 비중이 적은 업무부터 대응하게 되었다. 또한, 그런 업무를 해내기 위해 공정에 대한 지식을 점차 쌓아가는 중이었고, 이는 협력사 라인투어나 교육 출장, 그리고 신입사원 세미나 등으로 이어졌다. 3개월 차 신입사원의 직장생활은 때론 파도가 몰아치기도 하고, 때론 너무나 평화롭고 잠잠한 바다와도 같았다. 그랬던 신입사원 시절에 너무나 또렷하게 기억나는 사건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운전면허 도전기'다.




때는 바야흐로 2018년 10월 초순. 우리 회사에서 생산한 제품에서 계속 품질 이슈가 발생하자, 심기가 불편해진 고객사는 결국, 직접 오디트를 와서 제조현장을 둘러보며 품질 이슈를 확인하겠다고 알려왔다. 그때 당시 사수였던 O선배는 휴가를 간 상황이었고, 고객사 담당자가 내방하는 첫날은 마케팅팀과 나, 그리고 파트리더인 J책임님이 대응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고객사 담당자 픽업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O선배가 고객사 담당자 픽업까지 다 했을 텐데, 부재중인 상황이었으니 애매해진 것. 그러던 중,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QA팀 H사원입니다."

"아, H씨. 저 마케팅 K선임인데요. 사무실에 없어요?"

"아, 네네. 선임님. 지금 잠깐 밖에 나와 있어서요."

"내일 F사 오는 거 얘기 들었죠?"

"아, 네. 들었죠. J책임님도 알고 계세요."

"딴 게 아니고, 내일 담당자 역 도착하면 픽업 나가야 하는데 혹시 품질팀에서 나가나 싶어서…."

"원래는 O사원이 담당했는데, 지금 휴가라서요."

"아, 그래요? 품질팀에서 대응 안되나?"


이 말인즉슨 우리 쪽에서 고객 픽업 대응을 하라는 뜻이었는데, 나는 그 말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결정하고 말고를 떠나서, 그때의 나는 운전면허가 없었기 때문! 그렇다고 J책임님께 가서 '책임님, 저 면허 없는데 내일 고객사 픽업 어떡하죠?'라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순간 당황함과 동시에,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내뱉었다.


"아… 저 면허가 없어서…."

"엥? 면허가 없다고요? H씨, 올해 몇 살이에요?"

"스물일곱인데요."

"와하하. 아니, 스물일곱인데 아직 면허도 없어요?!"


비웃음과 동시에 나를 깔보는 듯한 그런 말투에 기분이 확 상해버렸다. 그러나 내가 발끈한다고 해서 없는 운전면허증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운전 못하는 건 팩트이니 그냥 조곤조곤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 네. 하하. 아직 면허도 안 따고 뭐했나 싶네요. 하하."

"아, 그럼 됐어요. 그냥 내일 저희 팀에서 나갈게요. J책임님한테도 얘기해놔요."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는 속으로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아니, 스물일곱에 면허 없는 게 그렇게 잘못인가?', '면허 없는 걸로 사람을 이래 무안하게 만드나?'.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고객사 픽업도 업무라면 업무이고, 그렇다면 운전면허는 당연히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차피 해야 하는 운전이라면, 이제 시작하면 되는 거고. 그리고 마침 이번 고객사 내방은 마케팅팀에서 픽업 대응해준다니 나로서는 땡큐였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며칠 뒤, 시내에 위치한 한 운전면허학원을 정하고는 바로 교육 등록을 하러 갔다. 주변에서 모두들 '남자는 1종이지, 1종은 개나 소나 다 딴다'라는 말에 (아니, 도대체 왜 남자는 1종 보통이지?) 그냥 1종 보통 과정을 등록했고, 필기교육부터 장내기능/도로주행 교육, 시험 응시료까지 모두 포함된 교육비는 총 635,900원.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놀라긴 했지만 비용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학원에서 교육이 진행되는 월화수목금 중에서 교육받을 수 있는 시간은 따로 정해져 있었는데, 비교적 늦게 퇴근했던 내게는 맞는 시간이 없었던 것. 결국 팀장님과 책임님께 말씀드리고, 운전면허 교육받는 날은 칼퇴근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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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한 운전면허 도전기. 그러나 운전 역시 모든 게 처음이었던 내게 쉬운 것 하나 없었다. 특히나 수동기어를 조종해야 하는 1종 보통은 어려움 그 자체였다.


"자, 봐봐요! 지금 변속 부분에서 계속 안되잖아요. 가속하다가 표지판 보이면! 클러치 밟고! 따닥 변속! 오케이?"

"네네… 한 바퀴 돌고 다시 해볼게요."


가속 구간 통과 후 기어 변속에 자꾸 실패해서 교육 내내 강사분께 지적을 받았다. 영상도 많이 찾아보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도 해봤지만 좀처럼 되질 않았다. 과정에 등록된 교육시간은 4시간. 4시간이라는 시간은 운전이 처음이었던 내게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고, 계속된 실수에 자신감은 더더욱 떨어져 가고 있었다.

교육이 끝나고 마침내 장내기능 시험 응시 당일. 보통 장내기능시험은 평일 오후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날은 특별히 오후 반차를 쓰고 일찍 퇴근한 뒤, 운전면허시험장으로 향했다. 대기실에는 많은 응시자들이 모여있었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한 시간 정도 기다렸을까. 안내방송으로 내 응시번호가 불렸다.


"10번, H 응시생. 응시장 앞으로 나와주세요."


'반차도 쓰고 왔으니, 한방에 붙자!' 떨리는 마음으로 시동 걸고 출발. 연습 때와 같이 출발은 순조로웠다. 오르막 구간을 지나 커브 구간. 이어 교차로 구간도 지난 뒤, 주차 구간까지 왔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주차선이 잘 보이질 않았고, 불안한 마음은 결과로 그대로 이어졌다.


"삐빅! 실격입니다."

'아, 망했네….'


걱정했던 기어 변속 구간이 아닌 T자 주차 구간에서 실격된 것. 시험이야 다시 보면 되는 것이지만 아끼고 아껴온 반차가 아까웠고, 무엇보다도 '개나 소나 다 딴다'는 1종 보통을, 그것도 장내기능시험에서 떨어진 것이 속된 말로 쪽팔렸다.


"아, 니 붙었나?"

"주차하다가 실격됐어요."

"떨어졌다고?! 어서 떨어졌는데?"

"아… 주차하다가 실격됐어요."

"크크크크. 일단 집 가서 쉬라. 아니면 그냥 다시 회사 올래?"

"아, 아뇨. 그냥 반차 쓸게요."


생각보다 너무 이른 탈락에 책임님은 다시 회사로 돌아올 거냐고 물어보셨지만, 별로 돌아가고픈 마음은 없었다. 이미 팀장님과 책임님을 비롯하여 모든 팀원들이 내 운전면허 취득 도전을 알고 있었고, 충격적인 탈락 소식은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기 때문.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출근 후에는 하루 종일 내 이야기로 사무실이 시끌시끌했다.




그날 하루에 그쳤으면 다행이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 후 두 번째 기능시험에서도 또 떨어지고 말았다. 10월 초에 시작된 운전면허 취득 도전기는 어느덧 달을 넘겼고, 흘러가는 시간과 줄어가는 연차수를 보며 마음은 더욱 조급해져만 갔다. 운전면허가 뭐라고….


"저… 팀장님. 오늘 또 운전면허시험이 있어서요. 반차 좀…"

"써라. 근데 이번에 또 떨어지면 그냥 운전 안 하는 게 낫지 않나?"

"이번엔 붙겠죠."

"이번에 또 떨어지면 사내 BBS(공지게시판)에다 올릴 거다."

"잘 보고 오겠습니다."


가까스로 3번째 도전 만에 1종 보통 장내기능시험에 합격하게 되었다. 문제는 도로주행시험이 아직 남았다는 것이었는데, 이후 같은 1종 보통으로 연습하고 시험까지 치렀지만 역시나 한 번에 합격하지는 못했다. 남들 다 하는 운전인데, 나는 왜 그토록 어려운지. 고민 끝에 굳이 1종 보통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여 2종 보통으로 종별을 격하시켰고, 그 결과 너무나도 쉽게 2종 보통 도로주행 시험에 합격했다. 거의 5개월 만에 나도 운전면허증을 취득한 것이다. 그때의 그 감격과 속시원함이란!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2종 보통으로 응시할 걸.

SE-039f6320-a519-48d7-a798-721944b55a40.jpg?type=w773 이렇게 보통1종에서 2종으로 종별을 변경했었다.


2018년 10월 초에 들었던 K선임의 핀잔, '스물일곱인데 아직도 면허가 없어요?' 그로부터 시작된 운전면허 취득 도전기는 해를 훌쩍 넘긴 3월 말 봄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3번의 장내기능시험과 2번의 도로주행시험, 들어간 돈만 해도 거의 70만 원…. 그래도 그 덕에 바쁘고 바빴던 신입사원 시절을 더 정신 없이 보낼 수 있었고, 그 시간들을 보내며 나는 내적으로 조금 더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운전도 별 거 아닌데, 너무 어렵게만 생각한 게 아닌가 싶다. 지금도 운전면허증만 보면, 그때의 그 일들이 생각나서 혼자 피식 웃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