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정체 그 사이.
두 번째 퇴사 선언은 처음 퇴사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낸 지 겨우 3달 만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와 마찬가지로, 두 번째 퇴사 선언 이후 역시 내 삶과 나를 둘러싼 주변 환경은 바뀐 것이 전혀 없었다. 연이은 나의 퇴사 선언에 피로감을 느낀 것인지, 팀장님과 J책임님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업무에 있어서 고객과의 충돌을 막기 위해 대응 업무 최전선에서 잠시 물러나 있게 했고 그 외에 크고 작은 배려를 해주시기는 했지만, 난 그런 배려 아닌 배려가 더 불편했고 거북했다. 난 그저 '그래, 좋아. 그러면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건데 말이다. 그로부터 한 달 후, 나는 입사 1년을 꽉 채우게 되었다.
직장생활에서의 하루는 정말 빛의 속도와도 같다. 분명 아침 일찍 출근해서 비몽사몽인 채로 메일함을 열어 업무를 시작했는데, 산더미 같이 잔뜩 쌓인 업무들을 하고 있으면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물론 그러고 나서도 한참을 더 일하다가 깜깜한 한밤 중에야 퇴근할 수 있었지만. 하루하루가 이 정도였는데 한 주, 한 달은 얼마나 빨랐겠는가. 모든 일정은 하루 단위가 아닌 한 달 단위로 계획해야 했고, 그렇게 한 달이나 앞서서 계획을 세워 놓아도 어느덧 그 일정들이 코앞에 있곤 했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나의 입사 1년도 그렇게 채워졌던 것 같다.
"헐, 선배. 오늘 저 입사 1년 되는 날이에요!"
"벌써 1년 됐나? 와, 시간 겁나 빠르네. 뭐 맛있는 거라도 사 먹어야 않켔나?"
"맛있는 건 맨날 먹잖아요. 크크크. 그냥 오늘 일찍 퇴근할래요."
"그래, 일찍 가자. 오늘은"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진 않았지만, 입사 1년을 채우는 이날만큼은 뭔가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고 싶었다. 여섯 시쯤 되어 영혼 없는 시체 마냥 회사 정문을 빠져나왔다. 저녁 해가 서서히 지고 있을 무렵. 남들 퇴근하는 시간에 같이 회사 문을 나서는 것도 오랜만이었던 것 같았다. 언제나처럼 회사에서 기숙사까지 O선배의 차를 타고 퇴근했다. 감옥 같은 기숙사에 돌아와서 가방을 방 한 구석에 내던져 놓고는 삐걱대는 침대에 바로 누웠다.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리고 스트레스에 괴롭힘 당하다 집에 돌아오면 몸과 마음은 걸레짝처럼 헤져 있었다.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누워서는, 블로그 어플을 열어 지난 1년을 되돌아보았다.
입사 이래로 매달 13일, 직장생활 한 달씩을 채울 때마다 블로그에 소회를 적어놓곤 했었다. 힘들면 힘든 대로,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그 열두 개의 글을 모으는 데까지 굉장히 힘들고 지친 나날들을 견뎌왔구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대개 우울하거나 힘들어하는 내용들이었다. 직무가 성격과 안 맞아서 힘들어하는 이야기, 부족한 중국어 실력에 계속해서 고민하고 걱정하고 괴로워하는 이야기, 직장에서 타 부서 상사 또는 동료들과 업무적으로 다퉜던 이야기, 업무 중에 크고 작은 실수들을 저질러 멘탈이 깨졌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읽어가다 보니, 두 가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하나는 성장.
숱한 어려움과 시련에도 나는, 시나브로.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오고 있었다. 불과 1년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던 만큼 내면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성장했다는 느낌이 있었다. 직장이라는 사회 속에서 나보다 나이 많고 경험 많은 윗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위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생각해주어야 하는지 스스로 배울 수 있었다. 저런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때도 있었고, 저렇게만 안 해도 어른 대접받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었던 때도 있었다.
사회적 지위에 있어서도 나는 연봉 4천의 어엿한 직장인이자 스물여덟 청년이 되었고, 가족 내에선 그 누구보다 든든한 장남이 되어있었다. 입사 3달 만에 학자금 대출 상환을 마쳤고, 매달 300만 원에 가까운 큰돈이 통장에 쌓이면서 돈을 모으는 즐거움, 그리고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배워 나갔다. 명절이나 기념일엔, 그동안 나를 위해 헌신적으로 희생해온 부모님과 동생에게 작은 선물을 하면서 큰 기쁨을 느끼기도.
업무적으로도 나는 큰 성장을 해왔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입사 직후 신입사원 시절엔, 제조업 필수 용어인 어쎄이(ASSY ; Assembly의 준말)라는 단어를 머리털 나서 처음 들어봤던 나였고, 반도체 회로를 읽는 법도 현미경으로 제품의 초미세한 불량을 찾는 법도 몰랐던 나였는데, 어느덧 이런 업무들에 익숙해져 있었다. 게다가 라벨이라든가 출하 성적서와 같이 전산을 통한 업무는, 나 홀로 전담할 정도로 팀 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기도 했다. 역사학과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문돌이가 이과 핵심인 반도체 쪽에 와서 이렇게 성장할 줄은, 나도 알지 못했었다. 지난 1년 동안 많은 성장을 이루어냈다는 흐뭇한 감정도 잠시. 그러기엔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다른 하나는 정체.
성장이라는 긍정적인 단어로만 지난 1년을 되돌아볼 수는 없었다. 아직 나는 한참 부족한 사람이었다. 직장생활 내내 극도로 소심하고 내향적인 성격 때문에 속으로 마음고생을 참 많이 했었다. 예를 들어, 고객과의 품질 이슈를 처리하기 위해 생산 설비나 제조 공정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했는데, 나는 이런 것들을 다른 동료들에게 묻는 것을 굉장한 민폐라 생각했었다. 다들 정신없이 바빠 보이는 가운데, '이렇게 간단한 걸 물어봐도 될까?', '이것도 모른다고 타박하진 않을까?' 이런 걱정 아닌 걱정들을 늘 안고 살았다. 사실 신입사원 시절 모 책임님께 물어보러 갔다가 되려 혼이 난 기억이 나를 더욱 소극적으로 만들긴 했지만, 어쨌든 그때의 안 좋은 기억 때문인지 나는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정작 중요한 핵심 지식에 있어서는 신입사원의 수준에서 머물러 있었다. 배워야 할 것이 있어도 '이 정도면 됐지,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앞섰고, 이런 부족한 공정 지식 때문에 혹여나 책임님이나 팀장님이 이런 부분에 대해서 물어보진 않을까, 늘 노심초사했었다. 그럼에도 나는 바뀌지 않았다. 1년째 되는 날까지도 나 스스로 정체되어 있다는 생각을 숱하게 많이 했고, 이 때문에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나는 이 두 가지 감정 사이에서 여전히 허우적대고 있었다. 성장과 정체 그 사이. 무한한 성장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현실은 쉽지 않고 예측 불가한 시련과 고난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나 자신이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람이었으면 참 좋았겠지만, 난 태생적으로 그렇질 못한 사람이었다. '정체'에 더 가까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문득 우울해졌고, 이 때문에 블로그에 적어놓은 지난 글들을 마침내 다 읽고 나서의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지난 1년이 어떻고 성장과 정체가 어떻든 간에 나는 지금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에 처해있었고, 이 상황을 타개할 만한 방법은 오직 퇴사 하나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쉽게도 입사 1년이 된 이 날도 우울한 감정만이 가득한 채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