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은 원래 이렇게 바빠요?

야근과 특근의 연속.

by 본본쓰

대만에서 돌아온 뒤 몇 달 간은 매일 야근과 특근의 연속이었다. 품질 이슈는 화수분처럼 쏟아져 나왔고, 그 때문에 루틴하게 해오던 업무는 손에도 대지 못했다. 게다가 회사 전산을 모조리 갈아치우는 작업 때문에 기존에 해오던 작업의 속도는 배로 늘었다. 회사 설립 이후로 한 번도 안 바꾸고 계속 써오던 MES (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 ; 제조 현장에서 작업 내역, 작업자, 수량 파악 등 생산이력 관리를 위해 사용하는 전산 시스템) 프로그램을, 전산팀에서 'MES 고도화 프로젝트'라는 명목 하에 이 무렵 아예 새로 만든 것이다. 말이 업그레이드지 기존에 이용하던 프로그램과는 완전히 달랐고, 이로 인해 업무에 차질이 생긴 수많은 실무자 사이에서는 불만과 조롱 섞인 말들이 오갔다.


"책임님, 이 제품 생산이력 조회 또 안 되는데요?"

"하, 진짜. 아니 뭐만 할라믄 다 안되노. 전산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완저히 따운그레이드다, 따운그레이드. 내 진짜 전산팀 가서 한 소리 하고 올라니까 딱 기다리고 있으래이."


이럴 때마다 박사님이라 불리는 J책임님이 팔 걷고 나섰다. J책임님은 실제로 박사 학위를 갖고 계시기도 했고, 모르는 게 없기도 해서 박사님으로 불렸다. (이니셜만 같을 뿐, 우리 팀 J책임님과는 성이 아예 다른 분이다.) 그러나 J박사님이 가신다 한들, 돌아오는 건 빠른 시간 안에 조치하겠다는 전산팀의 대답.


"내 저기 P팀장한테 갔다 왔는데 오늘 안에는 안된다데. 대신 주말 반납하고라도 처리 다 할 테니까는, 각 팀에서 제일 업무 안 되는 거 리스트-업 해서 메일로 공유해달라드라."

"아, 이거 오늘 안에 무조건 보내야 되는데, 미치겠네…. 와 씨, 귀신 같이 전화 오네. 미친 고객사 놈들."


고객사는 이런 내부 사정에는 관심도 없었고, 배려조차 해주지 않았다. 물론, 내가 고객사였어도 그렇게 얘기했겠지만, 당시 실무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서러운 일이 없었다.


"S, 不好意思。我司更新内部系统,所以目前不能书写那个报告。(S, 죄송한데 저희 회사 내부 전산 업데이트 때문에, 지금 그 보고서를 만들 수가 없어요.)"

"所以呢?我几天前已经说过了吧!那,我怎么告诉终端客户?!(그래서요? 제가 며칠 전에 얘기했었잖아요! 그럼, 저는 최종 고객한테 어떻게 얘기할까요?!)"

“请给我几天…(며칠만 더 주시면…)"

"下班前!不给我报告,你今天不能下班!(퇴근 전까지요! 보고서 안 주면, 오늘 퇴근 못할 줄 알아요!)"


늘 이런 식이었다. 특히나 F사 담당자 S는 이런 부분에 있어서 다른 담당자보다 더 엄격했고, 이런 이유로 내 성격을 살살 긁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당일까지 보내지 않아도 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보고서인데도 S는 늘 그런 식이었다. 아니, 전산 문제로 처리가 안 되는 걸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전전긍긍해하며 고민하고 있을 때 해법은 준 사람은, 늘 사수였던 O선배였다. 옆에서 전화통화 내용을 듣고 있었는지, 통화를 마치자마자 한 마디 해주었다.


"야, 뭐하러 오늘 보내."

"이 새끼가 오늘 안 보내면 퇴근 안 시킨대요."

"지가 왕이네. 됐고, 딴 거 먼저 하고 오늘 그냥 퇴근해."

"엥? 오늘 안 보내면 퇴근하지 말라 했다니까요?"

"못 보내는데 지가 뭐 어쩔 거야. 안 그래? 그냥 내일 출근해서 미안하다 하고, 되는 데까지 해서 보내믄 되지."


입사 1년을 다 채워갈 무렵에도 나는 이런 일머리가 없었나 보다. 특히나 우리 팀은 플렉시블하게 일을 해야 하는 게 스킬이기도 했는데, 나는 그런 부분들이 참 많이 부족했다. 반대로, O선배는 나와 일하는 스타일이 많이 달랐고, 그 때문인지 많은 선배들이나 상사들한테 인정을 받아왔었다. 뭐 어쨌거나, 업무에 있어서는 절대적으로 O선배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이날도 그냥 보고서를 보내지 않고 그냥 퇴근했던 걸로 기억이 난다.

늦은 시간 퇴근할 때면, 집에서 편히 쉬고 있을 사람들이 부러웠다.




해가 길어지고 한여름에 가까워질 때까지도, 업무는 줄지 않았고 팀원 전체가 야근하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2층 사무실은 공정기술팀과 함께 썼는데, 늘 마지막 형광등을 끄고 퇴근하는 건 우리 QA팀이었다. 오죽했으면, 다른 팀 동료들의 아침 인사가 '어제 몇 시 퇴근했어요?'였을 정도. 또, 매일 사소한 일이라도 빼먹지 않고 메모하던 업무 다이어리는 몇 주 동안 통째로 비워져 있었다. 짧은 메모를 할 시간도 없었다. 고객사와의 전화 회의가 있는 날엔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빴다.


"오빠, 지금 전화 돼?"

"아, 미안. 지금 엄청 바빠서 안되고, 3시에 전화할게."

"어, 알았어."


당시 여자친구와의 관계도 상당히 소원해져 있었다. 매일이 전쟁과도 같은 상황에서, 여자친구와의 통화는 잠시 뒷전으로 미루기 일쑤였다. 타인의 시선으로 본다면, 업무시간에 전화통화가 안되면 식사시간이나 퇴근 후에 전화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침에 출근해서 정신없이 일하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늦은 시간 퇴근하면 기숙사로 돌아가 씻고 자는 것도 벅찰 정도였으니.


"여보세요?"

"아니, 아까 전화한다매."

"지금 몇 신데?"

"3시 반."

"아, 벌써? 미안, 미안. 계속 고객사랑 전화하느라고 시계도 못 봤어, 미안."

"됐어. 일주일 동안 전화하지 마. 집에도 오지 마."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했던가. 서리는 내리지 않았지만, 그 후폭풍은 어마어마했다. 정말 일주일 가까운 시간 동안 여자친구는 전화 한 통 받질 않았고, 헤어짐이 다가오는 것 같아 두렵기만 했다. 업무에 치이면서 내 시간은 물론이고, 내 소중한 사람, 내 자아까진 잃고 싶지 않았다. 그 달의 급여명세서에는 350만 원에 가까운 큰돈이 찍혀있었지만, 늘어나는 통장 잔고에도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늘 이랬다.




"행님, 이번 주말에도 출근해야 돼요?"

"왜 뭔 일 있나?"

"아, 여자친구 화나서 좀 달래줘야 할 거 같아서요…"

"내만 출근하지 뭐. 갔다 온나."

"네네. 아 근데 요즘 왜 이렇게 바빠요? 직장인 원래 다 이렇게 바빠요?"

"바쁠 때도 있고 안 바쁠 때도 있고. 요샌 진짜 바쁘네. 출장도 많고, 이슈도 많고, 다 힘들지만 조끔만 힘내자."


생각해보니 아마 우리 팀에서는 O선배가 가장 바쁘고 힘들지 않았을까 싶었다. 각종 출장이란 출장은 다 불려 다녔고, 팀장님과 J책임님의 손이 닿지 않는 업무까지도 처리해야 했으며, 게다가 후임인 나까지 케어해야 했으니. O선배는 늘 바빴다. 특근비와 출장비 명목으로 동료 사원들보다 수 십만 원이 더 많은 월급을 받았지만, 그만큼 바빴고 자리는 늘 비어 있었다. 모두가 바쁘고 힘들었던 걸 알았기에 팀원들 서로가 더욱 의지하게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조금만 더 힘내자'라는 O선배의 격려는 공허한 외침에 가까웠다. 가혹하게도 우리가 바라는 것과는 반대로 업무는 점점 늘어만 갔고 그에 수반한 스트레스도 늘어갈 수밖에 없었다. 제한된 시간 안에서 많은 양의 일을 처리해야 했지만, 절대적인 업무량이 많다 보니 다 쳐내기가 힘들었고 늘 업무가 목에 찼다. 그 무렵부터 스스로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일까?'

20대 후반 인문계 전공자 치고는 꽤 많은 급여를 받았지만 돈을 제대로 쓸 시간조차 없었고, 그렇게 해서 돈을 번다고 해도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잃으면서까지 돈에 가치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매일 같이 고객사의 불만 가득한 성화에 나는 점차 지쳐갔고, 이 일이 나와 맞는지에 대한 의문은 다시금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매일을 꾸역꾸역 버텨가던 중, 마침내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