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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본쓰 Nov 15. 2020

거절에 대처하는 법.

싫어요? 그럼 어쩔 수 없죠.

통계청에서 주관하는 인구주택총조사의 조사원으로 11월 1일부터 활동하고 있다. 11월 18일까지 진행되는 조사도 어느덧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고, 진척률도 꽤나 많이 달성한 상황이다. 처음에 조사를 시작할 때는 가구마다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조사 참여를 설득할 것인지를 많이 고민하고 걱정했지만, 막상 시작하고 나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조사가 쉬웠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약 2주 간 조사원으로 활동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을 꼽으라면, 당연히 거절. 


"띵동"

"네, 누구세요?"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나왔습니다."

"누구시라구요?"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나왔습니다."


집안에 계시는 경우 문을 열어주실 때가 대부분이지만, 아예 문을 안 열어주시고 문전박대 당하는 경우도 꽤나 있는 편이다. 물론 문을 열어주신다 하더라도 조사에 응해주시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아, 안녕하세요.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조사원 OOO입니다. 5년에 한 번 전국적으로 인구주택총조사를 실시하는데, 이번에 표본조사 대상으로 선정되셔서 찾아뵀어요."

"아, 뭐 대답하면 되는데요?"

"지금 거주하고 계신 가구원 분들의 성함, 생년월일, 학력 수준, 경제활동, 이런 부분들을 여쭤보거든요."

"아, 너무 개인적인 질문 같은데, 안 할게요."

"아, 조금 어려우실까요? 국민들의 학력 수준, 경제 수준 이런 걸 바탕으로 정책 수립에 반영할 목적에서 진행하는 거구요. 민감한 질문은 답변 안 하셔도 되는데…"

"아, 죄송해요. 저희는 안 할게요."


이렇게나마 이야기를 들어주시려고 하시는 분들이 차라리 다행이다. 잘 말씀드리고 설득해서 응답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강한 불응 의사, 문전박대이다. 


"계세요? 인구주택총조사 나왔습니다."

"어디요?"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나왔습니다."

"아, 그런 거 안 해요. 찾아오지 마세요!"


사실 얼굴도 마주 보지 않은 상태에서의 문전박대이지만, 그 날카로운 목소리만으로도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조사원도 사실상 감정노동자인 셈이다. 심한 경우에는 욕설을 내뱉고 손찌검을 하려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하지만, 한 번의 방문으로는 불응 처리가 불가능하다. 최소 3번을 방문해서 최대한 조사 참여로 이끌어야 하는 게 조사원들의 임무니까. 다른 날, 다른 시간대로 찾아뵈어도 물론 반응은 똑같다.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나왔습니다."

"누구세요."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나왔습니다. 저번에 한번 방문…"

"아니, 찾아오지 말라니까? 그런 거 안 한다고요!"


사실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 나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개인정보 유출이라든지, 사생활 노출이라든지 이런 부분들이 신경 쓰이니 말이다. 게다가 각종 언론 매체에서도 공공기관 또는 많은 기업들이 개인정보를 부주의하게 다루어 문제가 된다는 뉴스를 접한 경우가 많았기에 더더욱. 그러나, 입장이 바뀐 상황에서 나는 국가에 고용된 조사원이다. 보수를 받고 인구주택총조사라는 임무를 최대한 열심히 수행해야 하는 고용인. 


자,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거절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방법이 없다. 싫어요? 그러면 어쩔 수 없죠. 강력하게 불응 의사를 밝힌 가구에 몇 번이나 찾아가 본들 똑같은 반응일 것이고, 더더욱 공격적이고 부정적으로 나를 대할 수밖에 없으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메모지를 붙여놓고 오지만, 이들은 이미 '나는 답하지 않겠소'라는 굳은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다. 절대 내 휴대폰으로 연락이 오지도 않고, 인터넷이나 전화 조사에도 참여하지 않을 것. 어쩔 수 없이, 돌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직 돌아야 할 가구들이 훨씬 많으니까. 남은 이들의 참여를 바라야지 뭐.




처음에 조사원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할까 말까를 잠시 고민했었다. 불특정 다수의 가구를 방문해서, 꽤 많은 질문들에 답변을 받아야 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 눈에 훤 했으니까. 특히나 거절이 두려운 내가 모든 가구를 성공적으로 조사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앞섰다. 그러나, 한번 해보고 싶었다. 어떤 사람들이 살아가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런 것들이 궁금했기 때문에. 

아직 끝난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는 좋은 경험이 되었던 것 같다. 몇 날 며칠 부재중인 가구에 몇 번이고 찾아가서 조사 완료를 했을 때의 희열과 성취감, 매일 조금이라도 오르는 조사 진행률을 보는 재미, 불응 의사를 밝히는 분들께 조사 목적을 잘 설명드리고 끝끝내 설득시켰을 때의 감사함. 이 모든 것들을 생각해보자면, 2주 간의 조사원 활동은 힘들기도 했지만 경험해볼 만한 일인 것 같다. 무엇보다도 거절을 두려워하던 내가 거절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았으니, 이보다 더 값진 소득이 있을까. 


다시 조사 가방을 챙기고 나가야 할 시간이다. 남은 가구들도 성공적으로 완료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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