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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본쓰 Mar 25. 2021

글쓰기와 책쓰기가 쉽다면서요?

(4) 첫 글부터 어렵던데요???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먼저 글쓰기와 책쓰기에 관한 책들을 찾아보았다. 인터넷으로 검색도 해보고 서점으로 곧장 달려가 매대에 진열되어있는 책을 둘러보기도 하고. 그중 몇 권은 구매 봉투에 담기는 선택을 받았다. 책을 둘러보면서 이렇게나 많은 책이 글쓰기와 책쓰기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또 이런 부류의 책들로부터 공통점을 하나 발견했는데, 바로 예비 독자들의 구매욕을 상당히 자극한다는 것이었다. 책의 표지와 제목만 보고도 당장 사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책쓰기, 무작정 시작하라!', '세상에서 가장 쉬운 글쓰기' 등과 같은 문구는,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작가지망생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내가 직접 부딪치며 경험한 것은 그와 정반대였다. 글을 쓰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힘든 일이 없었다. 책을 쓴 작가들에게 당장이라도 찾아가 되묻고 싶었다. '글쓰기와 책쓰기가 쉽다면서요? 첫 글부터 어렵던데요?'


 당장 첫 글의 첫 문장을 쓰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어떤 문장으로 이 글의, 이 책의 포문을 열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문장을 썼다 지웠다를 몇 차례나 반복하고, '나는 역시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하며 좌절하기를 수십 번. 결국 책장에 꽂아둔 책을 교과서 삼아 그들이 알려주는 방법대로 써보기로 했다. 누군가는 첫 문장만으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으니 신중하게 쓰라고 말했고, 누군가는 첫 문장이든 뭐든 일단 쓰고 싶은 글을 쓰고 나중에 몇 차례에 걸쳐 읽어 보며 수정하라고 말했다. 몇 가지 방법을 그대로 따라 해 봤지만, 글을 쓰기 위해 열어둔 브런치 화면은 몇 시간 후에도 여전히 백지였다. 한 꼭지는 고사하고 단 한 문장도 쓰지 못한 채 노트북을 덮어야 했다.


 '뭐가 문제일까? 이건 아니다 싶은데…'. 침대에 누워 고민하기를 한참. 그냥 다 때려치우고 내 방법대로 해보자라는 생각을 했다. 유명하고 실력 있는 작가가 알려주는 방법이 내게 소용이 없었다면, 그냥 내 방법으로 해봐야지. 모든 게 처음인 나는, 결국 스스로 부딪쳐보고 나만의 방법을 찾아야 했던 것이다.

 접근법을 달리해보았다. 첫 문장도 첫 문장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약 200페이지에 달하는―일반적인 에세이 단행본이 200페이지임을 감안해서―이야기를 어떻게 써 내려갈지였다. 당장의 눈앞의 첫 문장을 잘 쓰는 것보다는, 책의 이야기를 끝마치는 것이 목표였으니까. 먼저, 책을 쓰는 목적과 이야기가 전개될 전체적인 흐름을 고민했다. 책을 배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이 배의 선장이었고, 이 배가 나아갈 방향과 목적지를 정하는 것은 선장인 나의 몫이었으니. A4 용지를 한 장과 검은색 네임펜을 꺼내어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책 쓰는 이유, 책의 주제, 이야기의 전개. 이 정도였다.


 책을 쓰고 싶은 이유는 너무나 명확했다. 퇴사를 고민하고 있을 때 그 누구에게도 퇴사하고 싶다는 마음을 털어놓지 못했고, 설령 털어놓는다 한들 마음에 크게 와 닿는 또는 내 결정에 영향을 미칠 만한 조언은 없었다. 그 시절 나를 위로해준 건 오직 책뿐이었다. 진심이 담기고 글쓴이의 경험이 고스란히 담긴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퇴사를 먼저 경험했고, 지친 마음을 위로받았으며 용기를 얻었다. 위로와 용기가 그렇게 모이고 모여 실제 퇴사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이제는 자유의 몸이 된 내가, 그때의 나처럼 힘들어하고 우울해하는 이들에게 '괜찮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것이 책을 쓰려는 이유였다.  

 책 쓰는 이유를 쓰고 나니, 책의 주제와 이야기 전개 방향을 생각하는 건 너무나도 쉬웠다. 책의 주제? 나중에 정한 책 제목처럼 '퇴사가 실패는 아니다'라는 주제를 담고 싶었다. 내가 그 당시 퇴사를 주저한 이유는 퇴사가 인생의 실패라고 생각했고 내가 그런 실패자로 낙인찍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나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분명 있을 거라고 전제하며 주제를 설정했다.

 이야기 전개 방향은 '기-승-전-결'이라는 네 글자를 큼지막하게 써놓고 하나하나 채워나갔다. 나중에 목차를 정리하기에도 좋고, 발단-위기-절정-결말의 구조로 쓰는 게 이야기 전개에 좋을 것 같아서였다. 이 기승전결 구조도 비슷한 에피소드끼리 묶어서 쓸지, 시간 순서대로 쓸지, 아니면 일단 써놓고 나중에 정리해볼지를 놓고 고민하다가 그냥 시간 순서대로 쓰기로 결정했다. 크게 적어놓은 네 글자 옆에 파란색 볼펜으로 어떤 이야기를 쓸지 작게 써보았다. '기'에는 입사와 신입사원 이야기를, '승'에는 회사 적응기와 퇴사 고민의 시작을, '전'에는 퇴사에 대한 깊은 고민과 퇴사 선언을, 그리고 마지막 '결'에는 퇴사일 결정과 퇴사 준비를 썼다.


 이렇게 전체적인 아웃라인을 정리하고 나니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세부 목차를 정하진 않았지만 큰 흐름에서 각 에피소드를 언제 써야 할지가 보였고, 첫 글도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왔다. 에피소드 하나를 정해놓고 여는 글을 먼저 써보자! 그렇게 첫 문장,  "H씨, 갈 곳은 정했어요?"를 쓰면서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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