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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슬로 선유산책 Mar 16. 2021

움트다

단어를 입에 넣고 굴려보자 - 05

일하는 시간을 적응하려고 하다 보니 그동안 꾸준히 했던 것들을 놓치고 있었다. 글을 쓰는 일도 그렇고, 영상을 편집하던 일도 그렇다. 책을 읽는 시간은 줄었고 요즘엔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는다. 그나마 기타 치는 하루를 유지하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것마저 놓았다면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을 것 같다.


그래서 그런 심리를 대변하는 단어들만이 머릿속을 헤집었고, 또 그런 글만 저장해 두고 있었다. 다음에 쓰려고 했던 단어는 바로 ‘소멸’이었다. 그 단어로부터 올라오는 허무함과 두려움에 사로잡혀있던 것이다. 글을 고민하는 내내, 사라져 버린 순간과 소멸을 견주어보며 이리저리 흔들리며 지냈다.


마음이 피어오른 것은 한순간이었다. 세상에 여린 초록잎이 나온 것이다. 어느 곳에는 목련과 매화가 몽실몽실 터져있었다. 주변을 보는 시간을 잠깐 놓쳤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날 ‘소멸’ 말고 다른 단어를 쓰기로, 이 작은 새싹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무에 돋아 오른 작은 새싹. 이런 모습을 무어라 했더라? 아! 움트다. 새싹이 움트고 있었다. 내가 보는 모습과 이 단어를 떠올리니 마음에도 에너지가 일렁였다. 자주 무너지는 나에게 움트다는 말은 새로이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움트다는 단어는 웅크려있다가 펼쳐지는 느낌이 든다. 이 작은 행위에서 단단함이 느껴진다. 봄의 시작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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