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 소리를 뚜렷이 내며 잇따라 걸어가는 소리. 또는 그 모양.
혼자 느닷없이 떠나는 일이 잦아졌다. 그것이 국내라면 더욱이 그렇다. 주로 목표는 전시를 보는 것 그리고 ‘로컬’이라는 이름이 붙는 동네를 구경하는 일이다. 오히려 목표가 작기 때문에 국내여행은 마음만 먹으면 움직여볼 수 있다. 꼬마겁쟁이에겐 딱 좋은 루트일 수도 있다. 나는 면허도 없기에 대중교통과 두 다리를 열심히 활용해야하는 뚜벅이 여행자이기도 하니까.
작년 12월 말에는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시립미술관도 좋아하고, 부산이 보다 더 따듯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떠나기 몇 주 전에는 춘천에 갔었다. 눈이 내렸고 여전히 나는 나를 정리하지 못했는데, 바다를 본다고 뭔가 달라질까. 부산으로 가는 KTX는 꿉꿉했고, 어지러웠다. 코로나 감염 비율이 높아졌다는 뉴스가 창에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1년을 아니 어쩌면 3년을 꼬박 기다리던 것을 앞두었는데, 코로나에 걸려버리면 어떻게하지? 나는 괜시리 마스크를 고쳐쓰며 구석에 웅크렸다.
걱정이 마음을 좀먹었는지, 여행이 즐겁지 않았다. 제주도에서 비바람을 헤치며 걸어도 재밌던 나였는데 말이다. 기차가 유난히도 피곤해서 그런가? 아무리 기온이 높다고 해도 바닷바람은 쌀쌀했다. 코트를 입고 나온 것을 후회했고, 전시는 아쉬웠고, 스카이캡슐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비건여행을 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동선과 시간도 추가적으로 낭비했다. 힘들다는 생각만 가득찼다.
뭘 위해 여기까지 온 거지?
잠을 설치다가 일출이나 보자 싶어서 근처 해변으로 향했다. 해뜨기 직전의 하늘이 가장 붉게 타오르는 구나. 일찍 도착했나 싶었는데, 오히려 더 좋은 풍경을 만날 수가 있었다. 모래위에 덩그러니 서있었는데, 사진장비를 설치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늘어났다. 나도 목에 미러리스 카메라가 걸려있지만 정말 잘 모른다. 너무 험하게 써서 렌즈도 좀 고장난 듯하다. 이제 나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저 렌즈에 담기는 것들을 궁금해한다. 천천히 아침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보였다. 강아지를 데리고 온 사람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카메라를 보다말고 강아지 사진을 찍었다. 이런 타이밍엔 역시나 스마트폰으로. 해는 빠르게 떠올랐다. 하늘은 그저 환해지고, 바다는 윤슬로 일렁였다. 발이 얼어서 감각이 없어질 정도로 머물렀고, 버스 안에서는 온통 잔상이 남았다.
숙소에 돌아와 잠깐 자고 일어났다. 책방은 정성이 가득했고, 카페를 즐길 수 있었고, 공원에는 고양이가 자유로웠으며 나도 비로소 나를 찾을 수 있었다. 여행 초반에 ‘뚜벅뚜벅’이라는 단어를 찾았었다. 단어의 설명은 내가 걷는 길이 뚜렷하고 또 잇따른다는 말로 들렸고, 그것은 너무나도 분명한 자국이라 당차고 멋진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을 길로 표현하고, 길은 걷는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니까 말이다. 비장하게 나섰던 하루가 지친 날들이더라도 무의미하지 않구나 싶었다. 이토록 선명한 발자국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