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편하게 사는 법을 택했다.
물질만 있다면 모든 것들이 딜리버리 되는 세상에서 나는 도리어 불편하게 사는 법을 택했다.
2024년을 살고 있는 우리는 손가락 터치 몇 번 만으로 쉽게 편리함을 얻을 수 있게 됐다.
잠들기 전 장바구니에 담아 둔 식재료를 주문하면 다음날 새벽에 도착해 있고, 내가 직접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누군가의 경험을 구독하여 간접경험을 늘릴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야말로 나의 노력은 최소로 들이면서, 효율은 극대화할 수 있는 편의성이 넘쳐나는 시대이다.
어떤 이는 이러한 문명의 혜택을 통해 최적의 삶을 누리고 있을 테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 반기를 들었다.
식재료도 가급적 우리 주말농장 텃밭에서 나온 것을 이용하면서 추가로 장 보는 것도 우리 동네에는 없어서 이웃 동네까지 시간 내서 가야 하는 한살림 매장에서 본다.
유익한 정보가 가득한 유튜브도 한 달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다. 나의 경험은 가치관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스스로 직접 읽는 종이책 안에서,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 혼자만 즐기는 고요한 시간에서 축적된다.
쉽게 얻는 것은 쉽게 보내줘야 한다.
쉽게 가진 것은 쉽게 사라지곤 한다.
쉽게 받은 것은 때때로 형편없기도 하다.
어렵고 불편한 방법을 택함으로써 나는 극진한 즐거움과 행복을 얻었다.
무엇이 귀한 것이고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 깨달았다.
땅 속에서 어렵사리 고개를 빼꼼 내민 어린 시금치 싹을 보며 생명의 강인함을 배웠으며,
계절의 순리에 따라 텃밭의 작물들이 밀물과 썰물처럼 흥했다가 지는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했다.
현재 이 순간을 오롯이 느끼고 깨어 있기 위해 단련 중이다.
그 어느 것도 당연한 것이 되지 않도록,
그 어느 것도 시시한 것이 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일상의 대부분의 순간들마다 잊어버리고 살다가 이따금 생각나지만 계속 그렇게 돌아오면 된다.
포기하지 않고 불편하게 살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