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벗기고 근심없이 그림을 보다.
휴직을 했다.
누구를 키우기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한 휴직을 했다.
오롯이 나를 돌보고, 이따금 다른 이도 돌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생겼다.
날이 갈수록 각박해지는 무한경쟁의 느낌이 우리 회사 내에서 유독 심한 것 같았다.
나를 Burn해서 일을 성공시킬만큼 욕심은 없지만,
나도 모르는새 슬금슬금 타들어가고 있었던 것 같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한 것처럼,
작은 냄비 속 개구리는 스믈스믈 데워지고 끓여지고 있는 물에 익혀지고 있었다.
개구리 살갗이 터지고 진물이 나고 아파버려 다행이다.
지금 그러지 않았다면 아마 뒤늦게 장기 어딘가가 고장이 나고 크게 문제가 생겼으리라.
몸이든 마음이든 야금야금 아파져, 틀림없이 중병 신세를 졌으리라.
첫날 아침 사실 나는 어디로 가야하나, 어느 장소로 가야하나 잠시 마음이 어지러웠다.
매일 익숙하게 정해진 장소로만 가던 관성 때문에
갑작스레 생긴 자유에 당황스러웠다.
그러다 이내 나는 묵은 때를 벗기기 위해 목욕탕에 갔다.
진짜로 묵은 때를 벗겼다.
아침 10시에 목욕탕에 오는 사람들 풍경을 즐겼다.
물에 담그고 노상 목욕하러 오는 사람들의 친목을 구경했다.
티비로 이재명 대통령이 현충원 참배하러 가는 길을 지켜봤다.
팔이 닿지 않는 견갑골을 닿게 하기 위해 때밀이 수건을 부던히 들이밀었다.
때부터 밀고 시작한 첫날의 시작은 만족스러웠다.
500그람의 질량을 버렸고
내 걱정 지분의 1/2 이상을 차지하던 것을 묻어두었다.
때를 벗기고 미술 강연을 들으러 갔다.
평일 대낮에 근심 없이 이럴 수도 있구나.
그 자체로 마음이 고무됐다.
주제는 인상주의를 탄생시킨 화가, 클로드 모네 이야기다.
그중에서 나에게 인상 깊었던 것은 클로드 모네의 두번째 스승이라 할 만큼 큰 영향을 준 윌리엄 터너와 관련한 이야기였다.
영국이 낳은 위대한 화가, 윌리엄 터너가 67세에 그린 "눈보라"라는 그림이다.
심한 눈보라가 치는 한겨울 배에 탑승해 4시간동안 돛대에 자발적으로 묶인 채 눈을 부릅뜨고 눈보라와 마주한 작품이다.
그전에도 잘그렸지만 이 그림은 그전까지 없었던 그림이다.
작가가 자신의 고귀한 예술혼과 순수한 열정으로 자연과 정면으로 마주했기 때문이다.
20대도 30대도 아닌 60대의 나이에, 이미 최고의 화가로 부와 명성을 얻은 나이에 시도했다는 점이 놀랍다.
거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순수한 마음을 어디에 실을까 잠시 고민해본다.
늙어도 늙지 않는 방법,
그것은 끝까지 순수하면 된다.
있는 그대로 본다.
휴직 첫날, 꽤나 괜찮은 일정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