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말농장을 빌려 농사를 짓는 소작농입니다. 본업이 따로 있지만 애정도는 본업보다도 크니 텃밭을 가꾸며 자아실현을 하는 셈이네요. 텃밭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제 이력 때문일 수도 있고, 남편이 저와 바통터치로 육아휴직을 하게 되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햇수로 3년 차 도시농부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농사는 서툽니다. 농부는 그런 것 같아요. 부모가 자식의 마음을 잘 헤아리기 어렵고 원하는 대로 키우기 어려운 것처럼 농부도 그렇습니다. 변화무쌍한 날씨, 작물들끼리 궁합, 토양의 배수 상태, 잡초의 번성 등으로 인해 농사는 뜻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정도(正道)는 있는 법입니다. 자주 들려서 잡초도 뽑고, 물도 듬뿍 주고, 지지대를 세워주면 대체로 작물들이 원만하게 자랍니다. 마치 건강하고 맛있는 집밥을 만들어 주고, 아이와의 시간에 집중하면 아이가 건강하고 내면이 단단한 사람으로 자라는 것처럼요. 이렇게 육아와 농사 두 영역에서 공통점을 느끼며 저희도 차츰차츰 배우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칸방에서 최선을 다해 살림을 가꾸는 중입니다. 작은 텃밭에 적치커리, 당근, 가지, 로즈메리, 딜, 타임, 바질, 양배추, 브로콜리, 루콜라, 애플민트, 공심채, 적환무, 깻잎 등을 심어 알뜰살뜰 가꾸었어요. 마음을 주기만 하면 무엇이든 공짜로 주는 땅입니다. 가난한 살림으로 시작하여 아끼고 저금해 통장에 차곡차곡 쌓이는 숫자를 보며 행복감을 느낀 우리 부모님처럼, 저희는 땅에서 내어주는 귀한 농산물들을 보며 켜켜이 수확의 기쁨과 행복을 쌓고 있습니다. 한 보따리 루콜라가 나올 때는 매콤 고소한 맛이 매력인 맛있는 샐러드를 만들고, 꼬박꼬박 열리는 여름가지로 글루텐프리 가지라자냐도 만들고요. 텃밭 작물들이 쏟아져 나올 때면 파인 다이닝 셰프가 부럽지가 않아요. 제철 재료, 게다가 집 근처 텃밭에서 갓 따온 식재료이니 싱싱하고 맛있을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귀한 재료를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만들어 먹을까가 매일매일 가장 큰 행복한 고민거리입니다.
초여름까지 마음껏 도시농부의 삶을 누리고 행복을 만끽했는데요. 그러다 한여름이 되며 저희의 자신감과 기세는 맥없이 꺾이게 되었어요. 첫째는 잡초, 둘째는 기후변화 때문입니다. '싹이 보일 때 잘라야 한다'라는 격언처럼 잡초는 싹이 어릴 때 뽑아줘야 하는데요. 직장에 다니는 도시농부는 기하급수적으로 번지는 잡초에 대적할 수 없었습니다. 40도에 육박하는 여름의 무더위 속에서 잡초를 뽑는다는 건 대단한 마음의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으니깐요. 무더운 날씨는 잡초를 잘 자라게 할 뿐만 아니라 텃밭 작물의 작황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8~9월 가장 잘 자란 작물은 무엇이었을까요? 정답은 바로 공심채였습니다. 대적할 만한 적수가 없을 만큼 공심채는 압도적으로 잘 자랐습니다. 저는 기쁘기보다 슬픈 마음이 많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우리나라가 이제 동남아 기후에 가깝게 바뀌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니깐요. 기후 위기, 식량안보라는 말이 더욱 확실히 체감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작은 텃밭을 가꾸는 도시농부의 마음도 이럴진대, 농업을 생업으로 삼는 농부들의 심정은 얼마나 타들어갈지 작게나마 헤아려봅니다.
나를 살리는 식재료는 우리 땅 우리 강산에서 나오고, 철 따라 나오는 산해진미는 많은 이들의 땀방울과 사랑 속에서 자라는데요. 이제는 농부의 경험과 혜안 만으로는 농사를 잘 짓기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따뜻함(warming)을 넘어서 끓고 있는(boiling) 지구의 기후를 농부 혼자 감당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일 같습니다. 농업의 위기는 나와 미래세대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우리 땅에서 나는 이 맛있는 채소, 과일과 곡물들을 계속해서 즐기기 위해서라도, 당면한 현재의 문제를 개인, 지방정부, 국가, 전 세계적 차원에서 다 같이 해결하기 위해 논의하고 행동했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도시농부도 앞장서서 참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