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용마 Feb 05. 2017

자기 분석 보고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의 첫 단추.

3년 전에 '자기 분석 보고서'라는 제목으로 티스토리에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이 글을 쓸 때의 나는 언제 넘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외나무 다리 위에 아슬아슬하게 놓인 취업 준비생이었다. 대학생활을 누구보다 착실히 했고 남들보다 좋은 학점을 받고 장학금도 한 번도 놓치지 않았기에 학교에서 했던 것처럼 열심히만 하면 사회에서도 충분히 내가 원하는 것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땐 어렸고 어리석었다.


막연하게 남들처럼 스펙만 좇아가다가 어느 순간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 주위를 둘러보면 그런 나를 보면서 괜찮냐고 물어 봐주는 사람은 많았지만 결국 다시 일어서고 맞는 방향으로 가야하는 건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할 몫이었다. 그때 이 글을 쓰지 않으면 영영 나 자신을 못 찾을 거 같아 며칠에 걸쳐 힘들게 작성했었다.


시간이 약이라도 했던가, 그 때 그렇게 위태하던 취업 준비생은 어느덧 사회초년생이 되어 제 페이스를 찾아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자 그렇다면 3년 전의 취업준비생과 지금의 직장인. 같으면서 다른 나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현재의 나는 파란 색이다.

3년 전의 나는 빨간 색이다.


이 아래에서부터 파란 색으로 하이라이트를 한 글 이외에는 3년 전에 티스토리(링크)에 쓴 글이다.



오늘부터 자기 분석을 해보려고 한다.  (이 오늘이 꼭 오늘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몇 주간의 오늘에 의해 이루어졌다) 위 사전에 정의된 것처럼 자기분석이란 자기의 행동과 결과, 심리 따위를 스스로 분석하는 일이다. 갑자기 이걸 왜 하느냐? 사실 '나'는 나 자신과 25년간을 같이 지내왔지만 아직도 모르는 게 많고 자신에게 궁금한 점이 많다.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을 타자처럼 객관화하여 바라보고, 쓰디쓴 비판을 하겠는가. 국무위원이 되기 위해 청문회에 뛰어들지 않는 한 그런 일을 실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본다. (그렇다고 장관 후보자들이 자신을 객관화해서 바라본다는 건 아니다.)

사람은 남들과 거리를 두는 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 거리가 너무 가깝다면 자기애가 강한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칠 것이고, 너무 멀다면 자존감이 낮아 남들에게 퍼주기만 한 순둥이가 돼버릴 테니까. 5개 정도는 약간은 부정적인 면, 또 5개는 약간은 긍정적인 면으로 분석돼야 균형이 맞을 것 같다. 너무 부정적이거나 심하게 긍정적인 이야기는 현실과 거리가 먼 이상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으니 언급을 자제한다. 그럼 나 자신에 대해 분석해보자. 제목은 보고서라고 했지만 두서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작성될 것이다.



1. 모든 면에서 보수적이며 내향적이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 자신이 진취적이고 목표지향적인 사람인 줄 알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목표지향적이긴 하나 생각한 것처럼 진취적이진 않다. 지극히 보수적이다. 어떤 변화에 있어서 굉장히 민감하고 그 변화에 쉽게 수긍하는 편이 아니다. 주로 현상 유지를 좋아하는 편이다. 어떤 상황이 급격히 변화될 기미가 보이면 신경질적이다. 불만이 쏟아진다. 그 변화의 폭에 따라 감정의 골도 함께 깊어간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건 나에게 썩 즐거운 일이 아니다. 특히 내가 먼저 다가가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누군가 먼저 다가오더라도 내가 먼저 닫아버리는 경우도 많고 금방 소멸되기도 한다. 특히 이런 현상은 연락하는 모습에서도 나타난다. 친한 친구더라도 전화통화를 먼저 하는 편이 아니다. 분명 좋은 모습은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어서 고치려고 노력은 하지만 쉽지 않다. 메시지는 먼저 보내기도 하고 오랜 시간 주고받기도 하는 편이나 통화 같은 경우는 쉽게 하지 않을뿐더러 먼저 거는 건 어떤 목적이 있어서 거는 경우가 다반사다.


여전히 진취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3년 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다. 그리고 사회 생활을 시작한 덕분일까. 변화에 어느정도 수긍하는 사람이 됐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특히 내가 먼저 다가가는 건 여전히 어렵지만 지금은 확실히 즐겁다.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통화하는 것도 좋아하진 않지만 필요할 땐 먼저 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아직도 통화하기 전에 수 많은 생각이 든다.    


 이런 모습들은 주로 에너지 소모와 관련이 있다. 대인관계는 내게 있어 엄청난 에너지 소모를 초래한다. 아마 보통 사람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요소인 것 같다. 머리로는 5,6년 전 나 자신이 진취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늘 새로운 것을 갈구하지만 몸이 받쳐주지 않는다. 단순히 운동이나 체력적인 면에 있어서의 '에너지'가 아닌 삶을 지속하는 데 있어서의 '에너지'의 문제다. 가끔은 그 에너지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많은 제약을 두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굳이 에너지의 범위를 넓힐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에너지의 폭은 좁지만, 그만큼 깊이 있는 에너지를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람들을 만나는 에너지가 예전에 비해 많이 늘었다. 아직도 사람들로 붐비는 강남을 다녀와서 집에 도착하면 지쳐버리기 일쑤지만 예전처럼 엄청난 에너지 소모를 하진 않는다. 이제는 혼자 있을 때도 에너지를 얻고, 사람들과 어울릴 때도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여전히 혼자 있을 때 더 많은 에너지를 얻는다.) 개인적으로 지금의 에너지 비율이 만족스럽다.


내향적인 사람은 에너지를 남에게 얻을 수 없다. 오로지 혼자 있을 때만 쌓을 수 있다. 다수와 함께 있으면 그들은 남에게 에너지를 빼앗겨 버린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내향적인 성격에 대해서 심하게 부정적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색안경 같은 게 있다. 외국에서는 외향적인 사람보다 내향적인 사람이 많은 분야에 있어서 인정을 받는데 우리나라는 오히려 자신의 커리어를 갉아먹는 존재로 인식된다.   


이제는 오히려 내향적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2. 의존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려면 세상을 바라볼 때 내가 싫어하는 부분을 찾아가면 된다. 의존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게 나에겐 그런 부분인데 내가 남에게 의존하는 것뿐만 아니라 남이 나에게 기대려고 하는 시도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싫어한다. 아직 뚜렷한 원인은 찾지 못했지만 그런 이유를 내 모습에서 살펴보면 내가 어떤 일이나 관계를 진행하고 있을 때 내 힘에서 벗어나버리면 누군가에게 극도로 의존해버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바람직하지 않은 감정들이 남에게 투사되어 싫다는 동사 앞에 '극도로'라는 부사가 붙었다. 20대가 된 이후에 유독 의존적인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썩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을 만큼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음에도 내가 그렇게 싫어했었다. 다행히 그 사람과 몇 년을 같이 관계를 지속하다 보니 나중에서야 그 사람만을 평가해서 싫어하는 게 아닌 내 모습이 투사되어 가중된 감정을 부여했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그 이후로는 전처럼 심각하게 싫어하진 않았다.


지난 몇 년간 내가 썼던 이 '자기 분석 보고서'가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특히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려면 세상을 바라볼 때 내가 싫어하는 부분을 찾아가면 된다는 것. 좋아하는 것에는 이유가 없지만 싫어하는 데에는 사소한 이유라도 반드시 존재한다. 보통은 설명하기 싫어서, 또는 생각만으로 지쳐서 '그냥'으로 퉁치고 넘어가려고 하지만 끈질기게 물고 넘어지다보면 이유가 분명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결국 내면에 내가 직면하기 싫은 모습 중의 하나일 가능성이 높았다.   


3. 속을 모르는 사람.


흔히 친구들이 말한다. 넌 속을 모르겠다고. 맞다. 나를 남에게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 이유야 뭐 다양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내향적인 성격을 띄우고 있어서 그런 탓이 있고 그 외에도 글에는 적을 수 없는 개인적인 사정들이 있다.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속을 모르는 나'를 만들어버린 게 아닌가 싶다. 흔히 친구들 중에서 얼마나 상대방에게 자신의 비밀을 많이 풀어놓느냐. 그 척도에 따라 친한정도를 평가하는 친구들이 있는데(이런 친구들이 생각보다 많다.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런 친구들과는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다.  


다른 항목들은 지금 읽어보면 확실히 괴리가 있다. 3년이나 지났으니까. 하지만 이 항목만큼은 그대로다. 여전히 남에게 내 속마음을 드러내는 건 쉽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방법을 잘 모르겠다. 예전에는 이 부분 때문에 '나는 왜 이런 사람일까'하고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이제는 '뭐 그런사람인가보네' 하고 그러려니 넘어간다. 확실히 유연해지긴 했지만 다른 방향으로 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4. 부정 속에서 긍정을 찾는다.


긍정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고 한 없이 부정적인 사람도 아니다. 굳이 어느 쪽에 가깝냐고 하면 부정일 게다. 세상에 대해 의심이 많고 자기중심적인 경향이 있어서 더욱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매사 부정적이진 않다. 어떤 일을 진행할 때 약간 힘들다면 쉽게 놓아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오히려 '약간'이 아닌 '매우' 힘들다면 상황이 바뀐다. 절대 안 놓는다. 그게 팀플레이든 개인플레이든 전적으로 내가 짊어지고 진행한다. (이런 면이 가끔 나 자신을 힘들게 하기도 한다.) 주로 그런 경우는 결과가 좋다. 하지만 여기서 그 결과로 이끌어낸 '긍정'은 아쉽게도 자연스레 발생한 감정이 아닌 인위적으로 문제 해결을 하기 위한 감정이라는 것. 그게 문제라면 문제다. 하지만 어쨌든 그런 식이다.


요즘에는 부정 속에서 긍정을 찾지 못한다. 대신 평소에 긍정적인 면이 많이 부각되고 있다. 예전에는 없던 여유도 생겼고 3년 전에 비하면 부정적인 면도 많이 제거되었다. 너무 부정적인 것도, 너무 긍정적인 것도 내 성격상 맞지 않는다. 부정적이기도 하고, 긍정적이기도 하고 둘다 각자만의 매력이 있다. 그 둘 간의 아슬아슬한 사다리 타기가 내 성격상 가장 잘 맞고 매력적으로 느낀다.




5. 사색을 즐긴다.


일생이 사색 투성이다. 골똘히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고 생각에 생각을 연결하는 것을 즐겨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을 놓치기 싫은 탓인지 '기록'이란 취미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부분이 주변 사람들에게는 매사가 진지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맞다. 나도 그렇게 느낀다. 생각이 많아 계획이 많고 그런 것들이 복잡함을 만들어낸다. 이런 흔치 않은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면 정말 쉴 새 없이 떠들기도 하지만 아직 내 주변을 지나간 사람들에 있어서 그런 사람들의 비율은 지극히 드물다. (뭐 나뿐만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찾는다는 게 물론 힘들겠지만)  


윤홍균 정신과 전문의가 쓴 '자존감 수업'이라는 책을 읽어보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쓸모 없는 것까지 연결을 잘 시켜서 없는 걱정까지 만들어 낸다고 한다. 3년 전의 내 모습이 딱 그거였다. 생각에 생각을 무는 것. 그때는 그게 온전히 사색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전부가 사색이라고 볼 순 없을 것 같다. 여전히 '기록'이라는 취미에 매력을 느끼고, 복잡한 성격을 버리지 못하지만 예전처럼 생각에 생각을 물지는 않는다. 이제는 생각에 그치기보다 생각했던 것을 실천하기 위해 이것저것 적용해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3년 전에는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바스락'이라는 모임을 운영하면서 비슷한 사람들과 모여 바인더와 독서를 주제로 매주 모임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주변에 온통 나와 비슷한 사람들 뿐이다. 예전에는 생각에 생각을 연결하여 내 주변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 드물다는 성급한 결론을 냈다면, 지금은 오히려 그 의문의 생각을 실천으로 옮겨 내 주변에 나와 비슷한 사람으로 채웠다. 이보다 큰 변화는 어딨을까?

 

6. 매사에 진지하다.


일단 나 자신이나 상대방이 진지한 것을 무척 좋아한다. 그 이유는 내가 매사에 진지하니까. 쓸데없이 진지할 때도 있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면 되는데 꼭 진지하게 생각해서 일을 복잡하게 몰고 가는 경우도 많다. 뿐만 아니라 진지하다 보니 노는 데 있어서도 약간 보수적인 경향이 있다. 머리로는 놀 땐 놀고, 할 땐 하자는 융통적인 마인드를 지니고 있으나 막상 상황이 닥치면 그렇게 못한다. 무엇이든 간에 '효율성'이란 게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나 자신을 진지하게 만드는 이유다. 놀더라도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거나, 충분히 가치 있는 행동이거나, 내 심신을 달래줄 행위 거나. 그래야 한다. 이런 모습들이 가끔은 남들이 느끼는 것처럼 답답할 때도 있다. 그래서 막 놀아보기도 하고 단순하게 생각하기도 해봤지만 그런 모습들이 더 답답하다. 그래도 약간은 느슨해질 필요가 있다. 맨날 진지 빨지 말고 말이다.


여전히 진지하다. 오죽하면 지금 쓰는 브런치도, 즐겨쓰는 티스토리 글만 봐도 웃음기가 쏙 빠졌다. 가끔은 이런저런 이모티콘을 쓰면서 글을 쓰기도 했지만 내 성격상 맞지 않고 이게 편하다. 3년 전과 비교했을 때 거의 변화가 없고 가장 고치고 싶은 습관 중에 하나다.  이 성격이 갖는 나름의 장점이 있지만 그보다도 '효율성'이라는 테두리에 갇혀 해보지 못한 일들이 너무 많다. 가끔은 효율적이지 않아도 인생에 있어서는 충분히 효율적인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은 해보고 나서 효율적이라 칭할 수 있는 건데, 처음부터 효율성이 높다 낮다로 판단해버리면 애초에 경험해보지 못하는 것들이다. 당장 변화는 어렵겠지만 여전히 느슨해질 필요가 있다!


7. 목적의식이 있으면 계획이 뚜렷하다.


단순히 무언가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아니라, 그것을 달성하면 무언가 내게 물질적/정신적으로 얻어지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계획 자체가 뚜렷하다. 예를 들면 토익이다. 만약 단순히 취업/졸업 등의 이유로 토익을 공부했다면 단기간에 점수를 올리지 못했을 거다. (그 당시에 취업, 졸업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좀 멀리 있어서 느끼지 못했을 뿐)  하지만 그와 달리 성적장학금을 받는 데 있어서 무척이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성적이 약간 미끄러지더라도 토익 하나 해놓으면 보험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고득점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커트라인 정도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점수였다. 그런 목적의식 자체가 내게 커다란 동기부여를 가져다준다. 하지만 문제가 단기적이어야 한다는 것. 장기적으로 가면 지속적인 동기부여 자체가 되질 않는다.  그 단기간을 장기간으로 늘리는 것이 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데 있어서 앞으로 해야 할 (인생의) 과제라면 과제다.


이 부분은 타고난 거 같다. 물론 그만큼 남들보다 더 움직이고, 더 알아보는 성격 탓에 더 얻어가는 것도 있다. 물질/정신적으로 욕심이 많기 때문에 계획도 뚜렷하고 그것을 도와주는 도구, 바인더와 디지털 도구들도 적극 활용하는 편이다. 예전에는 단기적인 동기부여만 나를 변화시켰다면 지금은 그때보다 좀 더 큰 숲을 볼 수 있게 되었다. 3년 전에는 열정이 금방 쉽게 지쳤다면, 지금은 지치는 기간이 좀 더 늘어났다. 그리고 회복 탄력성도 좋아졌다.


8. 이상과 현실의 갭이 크다.


살아오면서 내가 현실에서 겪는 일들을 내 이상에만 머물러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쉽게 말해 자기합리화가 개입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는 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물론 각자의 주관적인 의견에 따라 보는 방향이 다를 수도 있지만 생각 이상으로 그 갭이 크다면 현실 속에서도 이상적으로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나 또한 현실을 추구하지만 쓸데없이 이상적인 면이 많다. 책이나 음악, 영화 같은 문화 콘텐츠에서는 낭만만을 추구하거나 때로는 일상에서 필요 이상의 판타지를 꿈꾸기도 한다.

    

직장 생활을 한 덕분일까, 갭이 상당히 줄었다. 좋은 이야기는 아니다. 현실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하니까. 사람은 꿈 속에서 살아야 눈빛이 살아난다. 현실적인 사람일수록 걱정이 많고 생각이 복잡하다. 물론 이상적인 사람보다 현실적인 사람이 잘 살겠지만, 잘 사는 것과 행복하게 사는 것은 다르다.


예전에는 갭이 커서 고민이었다면 지금은 그 갭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히려 직장다니면서 예전에 비해 책이나 영화 보는 횟수가 굉장히 많이 늘었다. 작년 한 해에만 책은 50권, 영화는 20번 정도 봤다. 여행도 그 격차를 확실히 키워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9.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첫인상의 잔상이 강하다.


우리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그동안 살아온 환경 속에서 축적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람을 평가한다. 스스로 남들보다 헤아릴 수 있는 감정의 폭이 깊다고 생각하니 남들에 대해서 관찰이나 분석을 통해 스스로 확신하는 경우가 있다. 오래 만난 친구일수록 그 분석은 대개 정확한 편이다. 다만 그 확신에서 오는 자만심을 경계해야 하는데 우월감을 느끼다 보니 다른 것들을 많이 놓치곤 한다. 나 자신이 그들보다 뛰어나거나 대단한 것도 아닌데 그들의 생각을 못 믿고 내 생각에 확신을 갖고 불가침 한 영역에 대해 통제하려 드는 것. 그런 부분에 있어서 상대방은 안 좋은 감정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늘 과정에서 경계를 해야 하는데 일이 터지고 난 후에야 자각하기 마련이다. 나이가 비슷하거나 많다면 그나마 덜한데 어린 사람들과 앞으로 일하다 보면 이런 감정들이 더욱더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 같은 길을 걷고 있다면 때로는 그냥 믿어줄 필요가 있는데 신뢰를 보내지 못하고 계속 통제하려는 성향이 있다. 그 성향을 잘 파악하고 있으면서 고치기 어렵다.  그나마 다행인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예전과는 다르게 첫 인상도 변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은 것이다.



10. 그래도 변화를 꿈꾼다.


익숙해진 것, 틀, 정해진 루틴.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나를 편하게 하려면 그것들에 멈춰있으면 된다. 늘 익숙한 것을 하면 되고, 틀 안에서 정해진 루틴에 의해서 움직이면 된다. 하지만 매번 변화를 지향하고 있다. 이게 내가 가지고 있는 큰 장점이기도 하다. 물론 기존의 관성에 의해 끊임없는 저항을 느끼곤 하지만 그것에 매번 부딪히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사람들 만나는 것들 싫어하는데도 만나려고 노력하고, 이렇게 내 단점을 적은 내용들을 블로그에 공개하는 이유도 조금씩 고쳐나가기 위함이다. (사실 그냥 나 혼자만 보고 말 거면 비공개로 했을 것 같다.) 9번 항목까지는 작년, 또는 재작년까지 작성했던 내용인데 신기하게 지금과도 차이가 많다. 그만큼 내가 변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의식하면 조금씩 변하기 마련이다. 무의식 속에 있는 익숙한 것들에 대해서 매번 낯설게 만드는 연습이 필요하다.  


신기하지 않나? 3년 전에 이 글을 쓸 때는 이런 별난 성격이 나 혼자만 해당하는 줄 알았는데, 댓글에 검색해서 우연히 들어왔는데 성격이 너무 비슷해서 소름돋았다는 분들이 많았다. 나만 보는 일기장이나 비공개 글로 이 글을 작성했다면 여전히 혼자 별난 성격이었을 것이다.


또한 사람들 만나는 것을 싫어하는 내가 지금은 10명이 넘는 모임을 운영하고 있고, 3년 전에 아무리 봐도 '나'라고 생각했던 이 글이 이제는 낯설어질 정도로 많이 변화했다. 아마 몇 년 뒤에는 오늘 업데이트 한 파란색으로 칠했던 글도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나에 대해 좀 더 알아가고 공부할 수록 느끼는 진리가 하나 있다.


부정적인 것들은 혼자 끙끙 앓고 있으면 더 부정적으로 변한다는 것.

긍정적인 것들은 나를 잘 아는 타인들이 나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





(last update : 2017.2.4)

3년 전에도 말했지만, 매번 나 자신에게 고맙다.

수고했다 오늘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