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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Feb 21. 2019

행복에 관한 자신의 이론을
점검할 것

책 『굿 라이프』, 『행복의 기원』을 읽고

출근길 지하철, 단절과 몰입


출근하기 위해 지하철을 탄다. 자리라도 있으면 앉아서 잠을 청하고 싶지만 그런 일은 거의 없다. 내리는 사람보다 타는 사람이 더 많은 출근길 지하철. 대부분의 사람들은 퍼스널 스페이스* 조차 보장되지 않는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며, 두 귀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듣거나 스마트폰으로 뉴스나 가십거리를 보며 주변과 단절을 선택한다.


* 퍼스널 스페이스 : 개인이 쾌적하게 있기에 필요한 점유 공간


지하철을 타면 꼭 책을 읽고 있는 사람부터 찾는다. 책을 거의 읽지 않았던 지난 시절에는 하지 않았을 행동이다. 이 칸에서 몇 명이나 읽고 있는지,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괜스레 궁금하다. 책을 읽고 있는 그들의 눈빛에는 몰입이 서려있다. 단절을 선택한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재밌는 걸 보고 있더라도 지금 이 순간을 해방시켜줄 목적지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리지만, 몰입하고 있는 사람들은 현재 집중하고 있는 '행동' 외에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앉아서 꿀잠 자는 것도 몰입의 한 예가 될 수 있겠다.


'몰입(flow)'이라는 개념을 처음 창안한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 (Mihaly Csikszentmihalyi)는 2004년 TED 강연에서 몰입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몰입은 일단 강렬해지기 시작하면, 무아지경으로 인도한다는 데 초점이 있습니다. 매 순간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즉각적으로 피드백을 받습니다. 해야 할 일이 비록 어렵더라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시간관념은 사라지며, 자기 자신을 잊어버립니다. 더 큰 무언가의 일부가 된 것처럼 느끼게 되죠. 이런 조건들이 형성되면, 하고 있는 일이 그 자체로 해야 할 가치가 있게 됩니다.


고통스러운 몰입도 일종의 투자다.


시험 몇 시간을 앞두고 (진작 공부할 걸 후회하면서) 벼락치기하는 학생. 마감을 앞두고 (업의 위협을 느끼며) 원고를 쓰는 작가. 정시에 퇴근하기 위해 (식음을 불사하고)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 직장인까지 우리 일상에는 고통스러운 몰입도 존재한다. 고통을 가져다주는 몰입은 불행에 가까워 보이지만 '긍정 심리학의 창시자'라고 일컫는 마틴 셀리그먼 교수는 '고통스러운 몰입도 일종의 투자다'라고 말하며 몰입을 5가지 행복의 조건 중 하나로 꼽는다. (참고 기사)


과목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벼락치기는 시험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마감이 없는 작가는 게으른 한량일 뿐이다. 회사에서 그토록 원하던 업무 효율은 연말에 지급하는 '보너스'가 아닌 당장 오늘 정시 퇴근할 있는 힘에서 나온다. 고통스러운 몰입은 결국 어떤 식으로든 행복에 기여한다.


어린 시절에는 누가 깨우지 않아도 일요일 아침 TV에서 방영하는 만화를 보기 위해 일찍 일어나 엄마가 차려준 식사를 부랴부랴 먹고, 만화가 시작하기 전부터 내용을 놓칠세라 그 앞에서 기다렸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맞이하는 일요일 아침은 피로를 회복하는 시간에 가까웠다. 같은 아침이지만 몰입의 대상이 있는지에 따라 하루를 시작하는 자세부터 엇갈린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몰입은 마음이 그곳으로 온통 쏠려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행복도 고통도 일시적이다. 일시적이라는 말은 언제든 발생하고 금방 다시 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행복(51%)이 고통(49%) 보다 많으면 그 날은 행복한 거고 반대가 되면 불행한 거다. 매일마다 다르고 시시각각 변하기도 쉽다. 타인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우리는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왜곡되어 있다. 51%를 가지고 행복한 사람을 보고 80% 이상일 것이라고 착각한다. 타인의 행복을 과대평가하는 까닭은 보이지 않는 고통보다 보이는 행복이 더 많기 때문이다. 반대로 내 행복을 과소평가하는 이유도 모든 고통이 보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행복'과 '고통'을 구성하는 요소는 복합적이고 때론 우연처럼 다가온다. 로또 1등은 당첨돼야 행복하다는 사람도 있고, 오늘 저녁에 좋아하는 사람들과 곱창에 소주 한잔이 행복이라고 일컫는 사람도 있다. 행복을 대하는 기준이 낮으면 행복에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험 성적처럼 남들보다 높은 잣대로 판단하면 행복에 반비례하는 고통의 기준이 낮아져 고통에 더 노출될 수밖에 없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닌 빈도다
Happiness is the frequency, not the intensity of positive affect
- 에드 디너


1,00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00개의 취향 공식이 있듯이 행복 공식도 사람마다 다르다. 책 『행복의 기원』에서 서은국 교수는 '에드 디너'가 한 말을 인용해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는 둘 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자주 일어나는 것도 좋지만 때론 불확실한 큰 행복도 지나가는 길에 우리 삶에 우연히 찾아와야만 오랜 시간 견뎌야 하는 고통도 견딜 수 있다.  


경험 카트에 많은 사람과 물건을 담아라


대형마트에서 장을 볼 때 다른 사람의 카트에는 어떤 물건이 담겨 있는지 관찰하는 버릇이 있다. 카트에 한 가득 물건을 담은 사람, 장바구니로 충분할 것 같은데 굳이 카트를 끌고 다니는 사람, 비싼 물건들만 가득 담긴 사람. 각자 카트에 담은 물건을 흘깃 쳐다보며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오늘 저녁에 고기에 와인 먹나 보네'

'오. 저거 맛있어 보인다. 나도 하나 살까'

'몇 주치 먹을 거 사놓는구나'

'이 정도면 편의점이나 동네 마트 가서 사도 될 거 같은데'


마감 할인이 붙은 초밥만 사서 바로 나와야겠다고 계획했지만, 다른 사람의 카트를 보며 장을 보고 나면 어느새 다른 물건들도 함께 손에 들려있다. 대형마트처럼 인생에서도 항상 다른 사람의 경험 카트를 의식하며 행복하게 사는지. 내가 참고할 행복의 재료는 없는지 기웃거린다. 있어 보이는 것들은 내 카트에 일단 담아놓으며 언젠가 꼭 활용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그 재료는 때론 존재 조차 잊어버려서 유통기한이 지나 버리기도 하고, 가끔은 내 입맛에 맞는 근사한 요리가 된다.


행복에 관한 자신의 이론이 각자의 행복을 만들어간다. 따라서 원하는 만큼의 행복을 누리고 있지 못하다면 자신의 기질이나 환경이 문제일 수도 있지만, 행복에 대한 자신의 이론이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책 『굿라이프』, 최인철


어린 시절, 행복을 선사하던 만화는 지금은 행복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여전히 행복했던 기억으로 경험 카트의 보이지 않는 구석에 담겨 있다. 행복에 관한 자신의 이론에 정답은 없다. 지금 상황에 맞는 해답만 있을 뿐이다. 1+1=2처럼 정답이 정해있다면 평생을 철썩 같이 믿고 살아도 되겠지만, 지금 생각하는 행복의 이론도 해답일 뿐이다. 언제 다시 오답이 될지 모른다.  


책 『굿라이프』에서는 좋은 삶을 살기 위한 조건으로 '굿 라이프 10계명'을 제안한다.


3가지 신호

좋은 기분(Good Feeling)

좋은 평가(Good evaluation)

좋은 의미(Good Meaning)


7가지 좋은 것들

좋은 사람(Good People)

좋은 돈(Good Money)

좋은 일(Good Work)

좋은 시간(Good Time)

좋은 건강(Good Health)

좋은 자기(Good Self)

좋은 프레임(Good Frame)


최인철 교수가 제안한 '굿 라이프 10계명'을 통해 지금 생각하는 행복의 이론이 과거에 머물러있지 않은지, 지금 순간에 원하는 만큼 행복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행복할 수 있는 많은 조건을 가졌음에도, 왠지 한국인의 행복 날개는 접혀 있는 듯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우리는 부러워할 만한 경제 수준의 나라에,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친구들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쾌적한 나라에 산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면 좋겠다. 각자 자기 인생의 ‘갑’이 되어 살아보는 것에 좀 더 익숙해지는 것이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보다 내 눈에 보이는 세상에 더 가치를 두는 것이다.
책 『행복의 기원』, 서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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