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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Apr 01. 2019

우리는 왜 평균에 열광하는가

책 <평균의 종말>(토드 로즈)를 읽고

아무에게도 맞지 않는 평균의 함정


 1940년대 말, 미 공군에서는 무려 17명의 조종사가 추락하는 최악의 순간이 있었다. 그 사고들은 전투기 결함이나 조종사 과실과 같은 표면적인 이유가 아닌 다른 곳에 원인이 있었다. 바로 조종석 규격이었다. 처음 조종석을 설계했을 때 엔지니어들은 조종사 수백 명의 신체 치수를 잰 뒤 평균을 산출하여 토대로 조종석 규격을 표준화했다. 이후 필요한 규격도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 시기에는 평균 체형별 사람들의 특성을 분류하려는 시도, 이른바 전형화(typing)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이제 막 미 공군 신입으로 들어온 23세 과학자 대니얼스 중위는 조종사 4,063명의 신체 치수를 측정하면서 축적된 자료를 토대로 키, 가슴둘레, 팔 길이 등 조종석 설계상 가장 연관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10개 항목의 치수에 대한 평균값을 냈다. 대니얼스가 결괏값을 산출하기 전 동료들은 조종사들 대부분의 신체 치수가 평균값에 수렴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막상 대조해보니 10개 항목에서 평균치에 해당하는 사람은 0명이었다.  


"누구에게나 적합하도록 설계되었을 조종석이 실제로는 아무에게도 맞지 않았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바지를 샀다. 며칠 뒤 도착한 택배에서 꺼낸 바지를 입어본다. 허리나 허벅지는 얼추 맞는 것 같은데 바지 기장이 길다. 아무래도 세탁소에 가서 수선을 맡겨야겠다. 그래도 이건 양반이다. 허리나 허벅지 사이즈가 맞지 않으면 아예 입지 못하거나 펑퍼짐한 핏이 나온다. 매장에 가서 입어보기 귀찮아서 인터넷으로 시킨 건데 사이즈가 맞지 않아 더 귀찮은 일이 생겼다. 이번 바지는 기장이 문제였지만, 어떤 바지는 허리 부분이 넉넉히 남거나 허벅지가 들어가지 않았다. 내 신체 치수와 비슷한 사이즈라고 해서 구입했는데 한 번에 맞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책 <평균의 종말>을 읽기 전까지는 이런 상황에서 "내 신체 사이즈가 평균에 맞지 않나.."라고 생각했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비슷한 개월 수의 아이들과는 다른 행동을 보이면 "설마.."라는 생각에 크게 걱정하고, 병원에 가서도 의사 선생님의 괜찮다는 진단에도 여전히 혹시 모를 불안함을 느낀다. 이후에도 아이가 말을 늦게 한다거나 학교에 들어가서도 수학이나 영어에 취약해 열등반에 들어간다거나, 회사에 들어가서도 대한민국 직장인의 평균 연봉을 받지 못하면 우리는 늘 괴로워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데, 어째 우리 모두가 걸어야 할 길은 단 하나뿐인 느낌이다. 


 비슷한 집단이 공통적으로 걷는 경로에서의 이탈은 곧 "뭔가 잘못됐다"는 신호로 다가온다. 우리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 있든 남들과 똑같은 길을 걸으면서 평균이라는 잣대로 현재 내 위치를 가늠한다. 그리고 뒤처지면 우울하고, 앞서 나가면 잘하고 있다는 생각에 안도감을 느낀다.


우리 모두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되려고 기를 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우리 모두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되되 더 뛰어나려고 기를 쓴다.
책 『평균의 종말』, 토드 로즈


우리가 하나의 올바른 '경로'라는 것을 의식하게 된 데는 프레더릭 윈즐로 테일러(Frederick Winslow Taylor)의 공이 컸다. 그는 위계적 조직 내에서의 표준적 경로에 대한 개념에 토대를 닦아놓았다. 누구나 회사에 들어가면 말단 사원으로 시작해서 대리, 과장, 부장을 거쳐 임원까지 된다는 식의 경로였다. 회사뿐인가. 여전히 학교에서는 고정 수업 시간, 등교일, 학기 시스템을 수십 년째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초·중·고등 교육을 12년간 받은 뒤 대학에서 4학년을 보낸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최소한 평균 언저리에서 머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우리는 왜 평균에 열광하는가


 돈으로 환산되는, 즉 자본화하기 쉬운 평균의 재능은 사회적인 규범에 맞춰져 있다. 그 외 재능은 아무리 탁월할지라도 정상적인 경로로 인식하지 않아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래서 누구나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사회라는 시스템 아래에서는 대부분 쓸모없는 재능이 된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사회 관점상 쓸모없는) 특별한 재능을 자본화할 것인가, 자본화하기 쉬운 평균의 재능을 활용할 것인가. 전자는 모두가 평균의 게임을 벌이고 있을 때 홀로 벗어난다. 특별한 재능을 자본화하는 일은 내 가치를 스스로 만드는 일이라 무척 고독하다. 반면 후자는 시스템에 속해 그들이 원하는 재능을 남들과 함께 꾸준히 갈고닦으면 된다. 대부분 후자에 익숙할 수밖에 없다. 학교 다닐 때부터 시스템이 만들어놓은 길을 걸으면서 '평균'이라는 줄 세우기를 통해 남들보다 앞서 나갈 때 느끼는 우월감과 뒤처질 때 느끼는 열등감도 겪어봤다. 그래서 인생의 어느 시점에 있든 남들보다 앞서 나가지는 못하더라도, 뒤처지지 말자는 생각으로 평균주의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직업적 성공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급여를 평균 급여와 비교해야 한다. 학업 성과를 판단하기 위해 자신의 GPA를 평균 GPA와 비교해야 한다. 결혼이 늦은 편인지 이른 편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자신이 결혼한 나이를 평균 결혼 연령과 비교해야 한다. 하지만 일단 평균주의식 사고에서 자유로워지면 이전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것이 차츰 직관적인 일이 됐다가, 더 지나면 당연한 일로 굳어질 것이다.

책 『평균의 종말』, 토드 로즈


평균이라고 부르는 길은 매혹적인 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길에 열광하고 걷고 싶어 하지만 그곳엔 평균에 맞춘 '나'가 있을 뿐 내가 바라는 '나'는 없다. 책 <평균의 종말>에서는 우리가 올바른 길에 서 있는지를 판단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길이 우리의 개개인성과 얼마나 잘 맞는지 판단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무도 걷지 않는 평균밖에 있는 비탈길이 나와 잘 맞는 길일 수도 있다. 어딘가에 있지만 아직 찾지 못한 지름길이 내가 걸어야 할 길일 수도 있다. 그 길을 걷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내게 맞는 방향이 정해지면 그때 열심히 달리면 된다. 




 #씽큐베이션 #더불어배우다 #대교 #평균의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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