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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Jun 11. 2019

나는 여행한다. 의자에서 의자로

지하철에 타자마자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지금은 앉아있지만 곧 내릴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을 찾는다. 물론 과거를 돌이켜봤을 때 금방 내릴 것 같은 사람을 맞춘 적은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매주마다 5천 원씩 로또를 구입하는 게 이런 기분일까. 그래도 매일 아침마다 혹시 모를 기대감을 품는다. 오늘은 운이 좋았다. 내 앞에 앉아 있던 아저씨는 말끔하게 정장을 입었고 부장님쯤 돼 보였다.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아 금방 내렸다. (모르는 사이지만 감사합니다.) 내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그때부터 나는 책을 꺼내 여행을 시작한다. 책은 물론 스마트폰 리디북스 서랍에서 꺼냈다.


나는 매일마다 의자에서 의자로 여행한다.


오늘은 운이 좋아 첫 번째 여행지가 지하철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날에는 가장 오랜 시간 머물게 될 사무실 의자부터 여행이 시작된다. 몇 시간 동안 앉아 있다 보면 모니터와 내 목은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가까워지려고 한다. 몸이 목디스크 걸릴 것 같은 불편함을 감지할 때쯤 의자 등받이에 등을 철썩하고 다시 붙인다.


나는 매일마다 의자에서 의자로 몇 번의 여행을 떠날까? 일상을 돌아본다. 알찬 여행의 일상에서는 지하철에서부터 회사, 그리고 카페,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집까지 기본 4개국(?)을 다녀온다. 조금만 더 시간을 쪼개면 모임 의자라던가, 다른 카페 의자 등 인접 국가 몇 개 더 다녀올 수 있다. 이런 날은 흡족한 하루다. 각기 다른 의자에 앉는다는 건 다채로운 하루가 펼쳐지고 있다는 증거니까.


24시간이라는 무척 넉넉한 시간 동안 1개국 탐방 밖에 하지 못할 때도 있다. 이 날은 슬프다. 우리의 일상은 자유 여행처럼 보이지만 사실 패키지여행이다. 1개국 이상은 꼭 다녀와야 하고 갈 곳은 정해져 있다. 내가 정하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정해진 대로 다닌다. 꼭 다녀와야 하는 도착지는 사무실 의자다. 국가에서는 이 의자에서 8시간 여행만 권장하고 있지만, 어떤 날에는 18시간이 되기도 한다.


여행을 다녀온 사람에게 어떤 나라가 좋았어?라는 질문에 저마다 이야기하는 나라가 다르듯 우리가 일상에서 좋아하는 의자의 취향도 제각각 다르다. 나는 스타벅스 입구의 옆쪽에 있는 바 체어를 유독 좋아한다. 주변 사람들은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높고 등받이가 불편하다고 바 테이블의 좌석을 꺼려하지만 모르는 소리! 너무 편하지도, 그렇다고 불편하지도 않은 적절한 의자라 작업 중에 무너지기 쉬운 자세의 텐션을 잡아준다. (물론 개인적인 견해일 수도 있습니다)


실내에만 있으면 시간의 변화는 오직 시계로만 확인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곳에서 바깥 풍경은 곧 시계가 된다. 어두컴컴해진 하늘을 보며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났지?"라고 생각하며 유독 다른 날보다 집중력이 좋았던 오늘 하루에 뿌듯함을 느끼고, 잠시 고개를 올려 석양이 지는 순간을 맞이할 때는 하던 일을 멈춘다. 내일도 퇴근 후에 그곳으로 여행을 준비 중이다.


나는 내일도 의자에서 의자로 여행한다.  




Photo by Andres Jass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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