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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Oct 13. 2019

휘둘리지 않는 삶이 되려면

내 삶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요즘 트렌드는 암호화폐, 유튜브에 이어서 쇼핑몰 창업으로 넘어온 것 같네요. (물론 여전히 암호화폐, 유튜브도 온기가 따뜻하지만 예전처럼 손에 데일만큼 뜨겁지는 않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퇴사를 권하던 사람들은 이제는 주 52시간으로 인해 퇴근 후 여유가 생겼으니 틈틈이 쇼핑몰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건 언제나 옳습니다. 먼저 자리 잡는 게 시장에서 유리한 건 사실이니까요. 그렇지만 우리가 관심 가지는 새로운 것, 즉 대부분의 트렌드는 얼마 가지 않아 다른 트렌드로 금세 대체되고 버려집니다.


매년 트렌드라는 왕좌에 오르는 대상만 달라질 뿐 우리의 지갑을 털기 위한 장사치들의 레퍼토리는 비슷합니다. 두 번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조건으로 폭풍 할인되는 강의가 이틀 뒤에 마감되니 신청하지 않으면 지금 당장 손해 볼 것처럼 우리를 재촉합니다. 이제 막 취업을 한 20대 중반 사회초년생에게 재무설계를 해준다며 접근한 뒤, 지금 가입해야 보험료가 가장 저렴하다고 종신보험 가입서를 내미는 보험설계사와 다를 게 없습니다. (물론 보험은 나쁜 게 아닙니다. 보험 설계사 본인의 뱃속을 채우기 위해 고객을 등쳐먹는 보험이 나쁩니다.)


이제 곧 내년을 예측하는 트렌드 키워드가 쏟아질 예정입니다. 서점에도 2020년 트렌드 서적들이 가득 채워지겠네요. 김난도 교수를 필두로 서울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내년 트렌드 키워드를 미리 전망하는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는 이번 달 24일 출간을 앞두고 벌써 예약판매에 들어갔습니다. 그나마 이 시리즈가 다른 트렌드 서적보다 조금 나은 건 본인들이 예측한 트렌드 키워드를 다음 시리즈에서 돌아본다는 데 있습니다. (저는 이번 책에서 2020년 트렌드보다 적중률이 좋았던 2018년에 비해 유독 많이 어긋났던 올해 키워드를 어떻게 돌아볼지가 더 궁금합니다.)


대부분 트렌드 전문가들은 다시 돌아보기는커녕 예측이 어긋나더라도 "지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과거가 중요합니까?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미래가 더 중요합니다"라며 본인의 실수는 꽁꽁 숨기고 또다시 뻔뻔하게 내년을 예측할 겁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것만 다루기 때문에 예측하는 내용은 항상 그럴싸합니다. 어쩌다 한 번 맞추기라도 하면 동네방네 떠들기 바쁩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실력으로 맞췄든, 우연으로 맞췄든 그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낮은 확률이라도 맞췄다는 사실만으로 실력자라고 생각하죠.


책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를 쓴 대니얼 길버트 교수는 인간을 동물 중 유일하게 미래를 예측하는 동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해서 행운을 내 앞으로 가져오거나 미리 불행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미리 예측하려는 전문가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웁니다. 전문가가 전혀 존재하지 않은 분야에서도 말이죠.


운동 전문가는 운동밖에 모르고, 부동산 전문가는 부동산밖에 모릅니다. 그들의 말은 본인 분야에 한정해서는 정답일 확률이 높지만, 다른 분야까지 확장할 경우 오답이 될 확률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본인 주장이 다른 분야에서 오답일 될 확률보다 내 분야에서 정답일 확률이 높다고 강조하기 바쁩니다. 세상은 '내 분야'로만 돌아가지 않는데도 말이죠. 전문가들끼리 얘기할 때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이유도 본인이 몸 담고 있는 분야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그 안에서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전문가라면 자기가 몸담고 있는 분야뿐만 아니라 온갖 일이 벌어지는 바깥세상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나심 탈레브가 사업을 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그의 어머니는 "너의 능력을 믿되, 네가 확신하고 있는 것 혹은 확신한다고 느끼는 것을 비판적으로 봐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그 말 덕분에 성공의 지름길이 되었다고 책 <블랙 스완>을 통해 밝혔습니다.


내가 잘 모르면 전문가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판단을 맡겨야 합니다. 여기서 전문가가 아니라 전문가처럼 보이는 사람이라고 한 것도 내가 그 분야를 잘 모르기 때문에 나는 전문가라고 조차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놓친 기차를 안타까워하는 까닭은 내가 그 기차를 애써 좇아가려 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남들이 생각하는 방식의 성공을 이루지 못한다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전문가처럼 보였던) 남들의 생각을 추종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지 하지 않는다고 해서 기회를 놓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그건 시간이 지나고 보면 '호구'일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 순간에 꼭 사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유는 지금 앞에 서있는 그 사람이 전문가라는 이유만으로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블랙스완 서평에서 한 번 말했던 것처럼 전문가는 오히려 알면 알수록 가을철 다 익은 벼처럼 고개를 숙이기 마련입니다. 남들 앞에서 본인이 많이 안다고 떵떵거리는 사람은 되려 전문가가 아닙니다. 내 의견이 전적으로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책을 읽어야 하거나 뭔가를 더 배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정말 무서운 건 본인 분야만 알고 나머지 분야를 모른다는 사실 조차 모르기 때문입니다. (본인의 분야 조차 시간이 지나면 틀릴 확률이 높습니다.)


위험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문가인지 조차도 모르는) 전문가에게 내 삶을 맡길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 삶의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내 삶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나심 탈레브가 책 <블랙 스완>에서 말한 것 중 유독 제가 인상 깊게 느꼈던 것을 정리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결과를 완화하는 것


나심 탈레브는 어떤 사건의 (알 수 없는) 확률을 계산하는 것보다는 (알아낼 수 있는) 그 결과에 집중함으로써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선택을 앞두고 우리는 매번 할까? 말까?를 고민하는데 선택하기 전에 뭐가 더 좋고 나쁜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알 수 없는 확률을 계산하는 것보다, A와 B (혹은 더 많은 선택지) 중 내가 하나를 골랐을 때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 예상하면 됩니다.


안전벨트를 예로 들어볼까요. 운전석이나 조수석에 앉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전벨트를 매겠지만, 뒷좌석 또는 버스에 탔을 경우 우리는 A와 B 중 고민하게 됩니다.


A. 지금까지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으니 오늘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안전벨트를 매지 않는다.

B. 안전 벨트를 매지 않았는데 만약 사고가 일어나면 크게 다칠 것이다. → 안전벨트를 매고 간다.  


A는 확률을 계산한 사람이고, B는 결과에 대비하는 사람입니다. 확률로 따지자면 A의 말처럼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높지만, 사고는 내가 잘못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로 인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확실성에 대비할 수 있는 건 언제라도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이 없으니 B처럼 결과에 집중함으로써 항상 안전 벨트를 매는 거겠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결과를 완화하는 일뿐입니다.


2. (보상은 무한히 가능한) 공짜표는 될 수 있는 대로 자주 사라


나심 탈레브는 책에서 세상을 규모 불변인 세상을 평범의 왕국, 규모 가변인 세상을 극단의 왕국이라 칭하며, 불확실성을 뜻하는 단 한 번의 등장만으로 세상을 뒤집을 수 있는 블랙스완이 등장할 수 있는 곳은 '극단의 왕국'이라고 말합니다. 2008년 금융위기, 911 테러가 블랙스완의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다 보니 블랙스완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긍정적인 블랙스완도 당연히 존재합니다.   


'긍정적 불확실성'을 위해 복권은 아니어도 (보상은 무한히 가능한) 공짜표는 될 수 있는 대로 자주 사야 합니다. 특히 대도시에 사는 사람은 의외의 기회에 자주 노출될 수 있다고 말하는데 다른 사람들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나심은 공짜표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책에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새로운 사람이 주는 기회도 그중 하나일 겁니다. 내게 기회를 줄 수 있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세요. 복권은 규모 불변적이지만, 기회(공짜표)는 규모 가변적입니다.   


3. 감각 가능한 것만이 우리의 관심을 독차지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라.


우리는 감각할 수 있는 것, 손에 잡힐 듯 생생한 것을 선호합니다. 실제로도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보다 감각 가능한 것이 우리의 관심을 독차지하게 됩니다.


나는 익히 알려지고 관심을 끌고 있는 위험에 대해서는 별로 우려하지 않는 대신 숨어 있는 더 나쁜 위험을 우려한다. 나는 테러리즘보다는 당뇨병을 우려한다. 나는 사람들이 흔히 우려하는 것에는 근심하지 않는다. 이것들은 위험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나는 우리의 의식과 일상적 화제 바깥에 도사린 문제들로 근심한다.  ― 책 <블랙스완> p.461


나심 탈레브는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에 근심하지 않는 대신 우리의 의식과 일상적 화제 바깥에 도사린 문제에 근심한다고 말합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서재를 예로 들며 우리는 이미 읽은 책에 대해서는 떠벌리지만, 읽지 않은 책의 존재는 까맣게 잊는다고 했던 말과 일맥상통하죠. 아직 읽지 않은 책은 이미 읽은 책 보다 가치가 높다고 했던 그의 말처럼 이미 눈 앞에 놓여 있어서 볼 수 있거나 만질 수 있는 감각 가능한 것이 아닌 볼 수 없거나, 만질 수 없는 것이 우리에게 더 중요한 법입니다. 그러니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위험보다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위험을 항상 경계하세요.


P.S. 진짜 전문가라고 할지라도 그들에게 충고나 조언 정도는 얻을 수는 있어도, (규모가변적인) 극단의 왕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선택이나 판단만큼은 반드시 스스로 해야 합니다.  




Photo by Hadassah Carlson on Unsplash


참고 도서

책 《블랙스완》, 나심 탈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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