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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Oct 06. 2019

자기계발서를 읽어도 달라지지 않는 이유

거리를 뒀던 작가들과 친해져야할 때가 온 거 같다

주말이면 교보문고에 들러 책을 실컷 구경하고, 집에 와서 온라인 서점에서 뿌리는 할인쿠폰을 끌어모아 찜해놓은 책을 구입합니다. 이번에도 저렴하게 잘 산 거 같습니다. 오늘도 합리적으로 구입해서 괜히 뿌듯하네요. 물론 이번에 구매한 책도 대부분 자기계발서입니다. 소설과 시집 등 다른 분야의 책도 종종 구입하긴 하지만 읽은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쉽게 읽히고 문제를 바로 해결해줄 수 있는 실용적인 자기계발서가 저한테는 제격입니다.


한 분야의 '대가'가 쓴 책은 항상 읽기 전부터 설렙니다. 그 책을 읽으면 마치 제가 성공한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들도 처음에는 분명히 평범한 사람이었겠지만, 수많은 역경을 헤치고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지금의 자리에 올라섰을 겁니다. 가격을 쉽게 매길 수 없는 그들의 경험담이 불과 1~2만 원대 책 한 권에 압축되어 있으니 독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요.


정상에 오른 사람들은 서로 통한다고 했던가요. 과학, 인문, 사회, 경제 등 분야가 달라도 저자들이 책에서 비슷하게 이야기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직접적으로 표현될 때도 있지만 그 책을 읽은 사람이 발견하기도 합니다. '뇌의 가소성'을 이야기할 때는 런던 택시 기사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언급되며, '의식적인 노력'을 이야기할 때는 세 딸을 체스 선수로 키워낸 라슬로·클라라 부부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이 책 저 책에서 등장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런던 택시 기사나 라슬로·클라라 부부처럼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면 책이 금방 질리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는 생각에 색다른 내용이 있는 다른 책에만 기웃거리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학창 시절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았던가요. 시험을 볼 때 익숙한 문제는 이미 알고 있다는 생각에 다른 문제보다 검토를 게을리한 나머지 틀리고 맙니다) 


학사 - 난 이제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한다.

석사 - 공부를 더 해보니 모르는 게 조금 있는 거 같다.

박사 - 생각보다 모르는 게 많다고 생각한다.

교수 -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내가 얘기하니까 학생들이 다 믿더라


한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학사, 석사, 박사, 교수의 차이점을 한 줄로 설명한 유머가 뜨거운 반응을 보인 적이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든, 교수로 근무하고 있던 사람이든 누구나 공감된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 유머는 대학을 예시로 들었지만, 꼭 대학이 아니더라도 어느 분야에서든 적용될 수 있는 블랙 코미디죠. 한 분야에 정통한 사람들은 모르는 게 투성이라고 말하는 반면에 겉햛기식으로 공부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죠. 그렇기 때문에 다 알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전문가가 아니라 사기꾼입니다. 진정한 전문가라면 다 알고 있다는 말을 쉽게 내뱉을 수 없습니다.  


첼로의 성인이라고 불리는 파블로 카살스(Pablo Casals)가 아흔다섯이 되었을 때 한 신문 기자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르신 분인데, 왜 아직도 하루 6시간씩 연습을 하십니까?" 카살스는 답했습니다.


I'm beginning to notice some improvement!
(요새 실력이 느는 것 같아!)


미국 경제학자 나심 탈레브는 책 《블랙스완》을 통해 알면 알수록 읽지 않은 책이 줄줄이 늘어난다고 이야기합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모르는 게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하겠지요. 그러나 제가 최근에 느낀 것처럼 요즘 읽는 책의 내용이 거기서 거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읽어도 소용없구나'로 단정 짓기보다 지금 읽고 있는 책과는 다른 관점을 던져주는 책을 쳐다봐야 할 때가 온 겁니다.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 우리는 저자의 성공신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그들의 성공담을 아무리 읽어도 내 삶에 한 톨만큼도 도움이 되지 않는 까닭은 전체를 조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자 자신도 본인이 알고 있는 모든 노하우를 책에 적어놓았다고 할지라도 그게 성공 전체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어떤 결과에는 발견되지 않은 원인(ex. 행운)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죠.


검은 백조를 휘감고 있는 나심 탈레브 형님


나심 탈레브는 북한이 미사일을 뜬금없이 동해 앞바다에 날리는 것처럼 책 《블랙스완》을 통해 "네가 아는 게 뭐냐?"라고 시도 때도 없이 팩트 폭력을 날립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제가 책을 읽었던 건 온전히 '알고 있는(또는 알고 싶은) 지식'을 확인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여러 차례 뜨끔했습니다. 이어서 나심 탈레브는 책덕후 움베르트 에코의 서재를 예시로 들며 "이미 읽은 책은 아직 읽지 않은 책보다 한참 가치가 떨어지는 법이다. 재력이 있든 없든, 장기 대출 이자율이 오르든 말든, 최근 부동산 시장이 어려워지든 말든, 서재에는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과 관련된 책을 채워야 한다"라고 아직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들을 곁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왼쪽부터 재러드 다이아몬드, 유발 하라리, 대니얼 카너먼, 슐로모 베나치, 리차드 세일러


'나랑 안 맞는 거 같다'는 이유로 거리를 뒀던 이 분들과도 이제 슬슬 친해져야 할 때가 온 거 같습니다. 블랙스완을 위해서 말이죠. 자기계발서를 읽어도 달라지는 게 없다면 여러분들도 이 분들과 친해지기를 추천합니다. 이 분들을 거치지 않고서는 아직 자기계발서를 읽은 게 아니죠.

    


우리는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을 모른다




참고 도서

책 《블랙스완》, 나심 탈레브


※ 다음 주에도 '또 다른 내용'으로 책 《블랙스완》 서평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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