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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Apr 07. 2020

시간은 없고, 일은 잘하고 싶고


에세이가 재미있는 이유는 다른 사람의 삶이 녹여있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 삶이 어디쯤에 위치해있는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와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의 에세이일수록 그 내용이 더 흥미롭다. 때론 불안한 미래를 두고 이대로 가도 되는 걸까 확인받기 위해 읽고, 때론 따분한 삶에 긴장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삶이 곧 도전이었던 사람을 책으로 만나며 변주되지 않는 삶에 긴장을 불어넣기도 한다.  


어떤 에세이의 리뷰를 읽었다. 책을 좋아하면 공감 100%, 아이를 키우는데 책도 좋아하면 200%라고 했다. 너무 뻔한 말이라고 생각하면서 손은 이미 결제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온라인 서점 MD로 일하고 있는 김성광님의 책 <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였다. 책을 파는 회사라지만 좀처럼 읽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업무를 쳐내고 집에 가면 정신없이 육아를 해야 하니 저자는 좀처럼 읽을 시간이 다고 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시간이 없다는 말이 짠하게 들린다. 

 

코로나로 인해 약속도 없고 모임도 없는 요즘에는 시간이 한가할 정도로 여유롭다. 글 쓸 시간도 많고 책 읽을 시간도 많지만 당장 하지 않는다. 지금 하지 않아도 시간은 많기 때문에. 바인더에 적는 일정도 딱히 없다. 일주일이 비슷하게 흘러간다. 그래서일까. 그동안 '저는 바인더에 쓸 정도로 일정이 많지 않아요'라고 말하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아. 사람은 비슷한 환경에 놓여야만 상대를 공감할 수 있구나.



야근에 찌들어 집에 가서 바로 자야 다음 날이 피곤하지 않을 때 오히려 시간을 만들어냈던 때가 생각났다. 지금 카페에 가봐야 영업 마감시간까지 한 시간 남짓. 그 시간에 뭐라도 해보겠다고 매일 같이 흩어진 시간을 알뜰살뜰 모았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60분은 지금의 2~3시간보다 훨씬 값진 시간이었다. 시간은 없었지만 회사에서도 회사 바깥에서도 '내 일'은 잘하고 싶었으니깐.


시간이 생긴다고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바인더에 밀린 하루를 기록하거나, 틈틈이 적어놓은 글감에 살을 조금 더 붙여본다던가. 필사 몇 줄 쓰는 일이었다. 꼭 해내야만 할 일은 잠시 잊고 나에게 오롯하게 몰입하는 시간. 그 짧은 순간 덕분에 길었던 하루도 만족스럽게 끝난다.   


서울 사람들은 어디서나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 서울 생활 초기부터 나는 혼자 지하철을 타면 늘 뭔가를 읽어왔고, 그 시간이 너무 흡족했다. 먼 데서 약속이 잡혀도 불평할 이유가 없었다. 그만큼 긴 시간을 누리게 된 것이니까.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하면 책을 더 읽지 못해 아쉬웠다.

― 책 <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 김성광


업무와 육아로 인해 좀처럼 자신의 시간을 못 내지만, 유일하게 혼자 오롯이 있을 수 있는 출퇴근길에서 책 읽는 게 좋다는 작가의 문장을 보며 시간은 없었지만 잘하고 싶었던 나의 예전이 떠올랐다. 


그때처럼 다시 힘을 내고 싶어졌다.



어느 하나에 집중해 대단히 잘할 때보다
어느 하나에도 소홀하지 않을 때 나는 행복하다
― 책 <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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