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되돌아보면 바쁜 시기에 더 많은 것을 이뤄냈다. 바쁨이 내 일상을 삼키려고 할 때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상상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는 그런 미래. 그럴 때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플래너를 펼치고 시간을 점검했다. 어쩔 수 없이 채워지는 시간을 제외하더라도 쓸 수 있는 시간은 많았지만 야금야금 어디론가 빠져나가고야 말았다. 이미 쓴 시간을 점검할 때면 잠깐씩 낭비되는 시간의 양이 제법 되는 것을 알았음에도 똑같이 반복될 근미래에는 '잠깐인데 뭐'라고 다시 합리화하며 늘어지기 바빴다.
바쁜 날과 한가한 날의 패턴은 정반대였다. 바쁜 날에는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냐는 생각으로 중요한 일부터 먼저 처리했다면, 한가한 날에는 아직 쓸 수 있는 시간은 많다며 넉넉한 시간을 즐기기 바빴다. 그러다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아차릴 때면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바쁜 날과 한가한 날은 같아진다.
여유는 실수를 방지한다. 바빠지기 전에 일을 쳐내는 사람은 어쩌다 놓치더라도 다시 한번 챙길 기회가 있지만, 마감 시간에 쫓기는 사람은 제아무리 주어진 시간이 많았을지라도 실수를 점검할 기회 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되려 시간이 부족했다는 핑계는 시간이 넉넉했던 사람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예전에 나는 형편없는 작가였다. 그러나 이처럼 작업 방식을 바꾼 후에는 생산적인 작가로 변모했다. 이제는 아침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몇 시간 동안 글을 쓰는 것이다. 가능하면 오전에는 약속을 잡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나는 이미 가장 중요한 일을 다 마친 상태가 된다. 돌이켜 보면 내가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 이런 단순한 변화 덕분이다.
― 책 <루틴의 힘>
중요한 일은 먼저 하는 습관은 시간이 없더라도 급해지지 않겠다는 뜻이다. 급해지지 않는다면 여유는 내 곁에 머물러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쩌면 여유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만드는 게 아닐까.
출근길 지하철에서는 책을 읽는다. 몰입감이 대단한 책을 읽고 있을 때면 한 시간 넘게 가야 되는 회사 가는 길이 짧게 느껴질 정도다. 이때 책을 읽고 나면 이후 시간의 독서는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된다. 퇴근길 지하철에서는 피곤하면 잠을 청하고 아까 읽었던 책의 내용이 궁금하다면 다시 책을 꺼내 마저 읽는다. 누군가는 두세 시간의 출퇴근길을 어쩔 수 없이 낭비되는 리스크로 생각할 때, 나는 따로 시간 내지 않아도 책을 읽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된다. 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 읽는다는 핑계도 내겐 해당되지 않는다. 매일 출근할 시간 정도는 있으니까.
덩어리 시간은 가끔 만들어낼 순 있어도 자주 만들어낼 순 없다. 반면 사이사이의 시간은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씩 포착된다. 그 시간을 잘 활용하기만 하더라도 해낼 수 있는 건 많다. 일의 크기와 시간의 크기가 맞지 않는다면 일의 크기를 더 잘게 부수면 된다. 글 쓰는 시간이 도무지 나오지 않는다면 사이사이의 시간에 글감이라도 바지런히 모으면 되듯이. 그러다 덩어리 시간이 생긴다면 그때 글을 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