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예술은 일상이니까
코로나 영향 때문에 모임을 잠시 쉬고 있다. 토요일 오전인데도 강남에 가지 않으니 몸은 편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허전하다. 열심히 달릴 땐 몰랐는데 잠시 멈추면서 뒤돌아보니 모임을 운영한지도 벌써 5년이다. 나는 그 모임에서 단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었다. 모임 전 '루틴' 덕분이다. 모임이 11시라면 한 시간 전에 강남에 도착한다. 한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카페에 가서 모임을 준비하고 밀렸던 일정을 체크하거나 책을 읽는다. 무엇보다 그 시간 덕분에 헐레벌떡 모임에 갈 일이 없다. 전 회사에서 개발자로 근무했을 때도 30~40분 미리 출근해 책을 읽었다. 덕분에 가끔 차가 밀리거나 늦잠을 자더라도 지각하는 일은 없었다. 근처에 카페가 없어서 나는 회사에서 책을 읽었지만 주변에 많은 사람들은 아침에 책 읽는 내 습관에 자극을 받고 출근 전 카페로 향했다. 덕분에 독서량이 늘었다고 했다.
가방에 어떤 소지품을 챙기는지에 따라 낭비되는 시간이 낭비되지 않을 수도 있다. 자주 읽지 않더라도 책을 가지고 다닌다면 약속을 기다리면서 잠시 책을 펼칠 수 있고, 하루의 끝에 지친 기분은 카페에 가서 달달한 라떼 한 잔을 옆에 두고 독서노트를 쓰며 마음 달랠 수 있다. 때론 무거운 소지품이 가라앉은 기분을 다시 가볍게 만들어준다.
평일에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토요일에 늦잠을 잤다면 일요일은 일찍 일어나자. 일요일까지 늦게 일어나면 하루가 엉망이 된다. 늦게 일어나도 사실 쓸 수 있는 시간은 많았다. 엉망이 되는 건 하루를 일찍 시작하지 못했다는 기분 탓이다. 그래서 또다시 기분을 풀기 위해 무리하게 늘어진다. 늘어진 몸과 마음은 다가오는 한 주도 피곤한 채로 시작하기 마련이다. 업무, 운동, 글쓰기에만 루틴이 필요한 건 아니다. 기분에 휘둘리는 사람은 쉬는 것에도 루틴이 필요하다. 주말에 늦잠을 자는 건 하루면 충분하다.
나만의 루틴이 있으면 좋은 점이 많습니다.
사소한 일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순서대로 아침을 시작할 수 있어요.
― 책 <습관의 말들>, 김은경
기분이 잘 휘둘리는 사람은 일상이 자주 흔들리는 사람이다. 그들은 흔들릴 때마다 남을 본다. 남들이 하고 있는 '좋아 보이는 일'에는 관심이 많으면서, 그것이 자리 잡기까지의 시간은 좀처럼 인내하지 못한다. 그러나 정작 바라봐야 할 건 나 자신이다.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일상을 만들려면 새로운 일상을 계속 내 삶에 들일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 루틴이라고 해서 거창한 게 아니다. 사소할수록 좋다. 매일 조금씩 시간을 내면 할 수 있는 게 많다.
지금의 내 게으름이 단 한순간에 만들어진 게 아니듯이 단단한 일상은 한 번에 만들어지는 법이 없다. 사소할지라도 많은 시간이 쌓이면 단단해질 수밖에 없다. 어느 날부터 창틀 사이로 보이는 먼지는 갑자기 쌓인 게 아니다. 내가 무심하게 문을 열고 닫을 때 시간을 쌓고 있었다. 제법 쌓였을 때부터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을 뿐이다. 두꺼운 책 1권을 읽겠다는 결심도 좋지만, 그보다는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매일 10페이지씩 읽는 루틴을 만들자. 그 루틴에 투자한 시간이 제법 쌓였을 때 두꺼운 책을 읽기 시작한다면 그 결심은 이뤄질 확률이 높아진다. 그때부터 비로소 일상은 루틴의 예술이 된다.
일상과 일이 이어지는 삶. 일상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 일상이 더 중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나는 좋다. 그들이 만드는 예술이 더 좋다. 진짜 예술은 일상이니까.
― 책 <태도의 말들>, 엄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