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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Feb 02. 2020

비는 한 방울에서 시작된다

부디 모든 것을 보는 마케터가 되었으면


요즘 책 <마케터의 일>을 다시 읽고 있다. 전에 읽었던 기억이 있어 Workflowy에 적어놓은 독서 리스트를 살펴보니 2018년 6월에 읽었다. 개발을 내려놓고 퇴사 3개월 차를 막 지나던 그때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터라 금방 읽었나 보다. 1년에 한두 번씩 책장에 꽂혀있는 종이책을 정리하곤 하는데, 정리하는 속도보다 구입하는 속도가 늘 한 걸음 빨라 쌓여있는 책에 허우적거리며 산다. 저자에게 사인받았거나 증정받은 책은 한쪽으로 밀어놓고 아직 읽지 않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났거나, 한 번 읽었는데 다시 읽지 않을 책들 중에서 중고로 내놓을 책을 고른다. 그러다 2년 전에 읽었던 책 <마케터의 일>이 조용히 눈에 띄었다.  


2018년 6월에 이틀 만에 호로록 일었던 책 <마케터의 일>


책장에서 꺼내 펼쳐보니 몇 년이 지났는데도 상태가 좋았다. 중고로 내놓을까 하다가 출근길에 가방에 살포시 넣었다. 꽤 오래전에 읽었던 책들은 내용은 기억이 잘 나지 않더라도, 그 책이 좋았다 나빴다 정도는 느낄 수 있는데 이 책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중간 지대에 있었다. 이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한 건 200페이지 정도 되는 얇은 분량도 한몫을 했지만, 내가 마케터로 전직한 게 컸다.


임베디드 개발 회사에서 SW 개발자로 3년 남짓 일하다가, 1년 3개월 정도의 갭 이어를 갖고 지금은 스타트업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마케터라고 하면 크게 브랜드, 퍼포먼스, 콘텐츠 마케터로 나눌 수 있는데 나는 어디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보면 갭이어 기간 동안 나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했을 때처럼 어느 것 하나라고 쉽게 정의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굳이 정의가 필요할까? 싶기도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매번 나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도 일이다. 


작은 회사일수록 마케터는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않는 애매하고 어중간한 일들을 다 맡아서 하게 되잖아요.
― 책 <마케터의 일>, 머리말 중에서

   

애매하고 어중간한 일들은 개인 관점에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인데 회사 관점에서는 꼭 누군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누군가'가 해야 할 일로만 남는다면 그 일을 맡을 담당자는 명확하게 누구라고 할 수도 없다. 일반 조직에서는 "저는 마케터인데요", "저는 기획자입니다"가 통용될지 몰라도 스타트업에서는 마케터의 업무, 기획자의 업무가 깔끔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나는 회사에서 제품을 광고하는 마케터이면서, 제품을 기획하는 기획자이기도 하고, 글을 쓰는 에디터이기도 하는 나는 제품 생산에 차질이 있을 때 생산돕고, 아직 자리 잡지 못한 조직문화/사내규정과 신입사원 교육 커리큘럼을 설계 중이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저는 마케터입니다"라고 규정짓기 시작한다면, 나를 제외한 누군가가 제품을 기획해야 하고, 글을 써야 하고, 생산도 돕고, 교육을 짜야한다. 그런데 알다시피 조직에서 자신의 역할을 규정짓는 사람이 나타나는 순간 다른 사람들도 자신을 보호한다. 하나의 직무 안에서만 나를 보호하는 순간 두 가지 이상의 직무로 엮인 업무들은 죄다 존재하지 않은 '누군가'의 몫이 되어버린다. 그럴 때마다 그 '누군가'의 자리에 담당자를 넣기 위해 주기적으로 갖는 회의는 대단히 소모적이다. 서로 맡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마케터 일을 잘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고 읽기 시작한 책 <마케터의 일>에서 "마케팅을 잘하려면, 마케팅 이전에 일단 그냥 일을 잘해야 합니다. 일 잘하는 사람은 메일 쓰는 것만 봐도 알아요."라는 문장을 읽고 나서 내가 가진 의문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나에게 배정된 '마케터'라는 한 그루의 나무보다 큰 회사라는 넓은 숲에서 봐야 했다. 마케팅 일을 잘하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담당자가 존재하지 않는 변두리에 있는 회사의 다른 일은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나는 소셜 미디어를 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면 시크해 보인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제게는 부정적인 태도로 느껴집니다. 부디 모든 것을 보세요.

― 책 <잡스 - 에디터>


"저는 TV 안 봐요"

"아이돌이요? 관심 없어요"


세상에는 내가 관심 있는 것보다 관심 없는 일이 더 많은 법이다. 예전의 나는 TV를 보지 않고, 아이돌을 모른다는 사실에 당당했다. 그러나 콘텐츠를 발행하는 사람(마케터, 에디터 등)이라면 내가 관심 없더라도 지금 인기 있는 드라마나 뜨고 있는 아이돌 정도는 귀 기울여야 했다. 책 <잡스 - 에디터>에서 제러미 랭미드가 말했던 것처럼 앞으로 부디 모든 것을 보는 마케터가 되었으면. 결국 누군가 해야 할 일을 잘하는 사람이 마케터였을 때도 마케팅 업무를 잘할 뿐이다. 비방울부터 떨어지기 시작하니까.




새로운 매거진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마음> 연재를 시작합니다.

아직은 마케터 초짜인 제가 책 <마케터의 일>에서 나오는 문장처럼 관찰하고, 생각하고, 또 다르게 생각하고, 해보고, 배워나가고, 실패하고, 바꾸는 과정을 기록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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