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용마 Jul 02. 2021

아직 오지 않은 순간이 있었다.

글을 쓰고 나면 눈으로 여러 번 읽고 소리내어 다시 한 번 읽는다. 그럼에도 '발행' 버튼을 누르는데 찜찜함을 느끼면 임시저장한 채로 두고 다음 날 다시 꺼내본다.


이렇게 고심 끝에 세상에 선보인 글일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반응이 시원찮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읽는 건 길어봐야 3~4분인데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글을 쓰는데  2~3시간이 넘게 걸렸으니 말이다. 그렇게 시간을 들여서 쓴다고 한들 누가 알아봐주는 것도 아닌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나는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한 것도 여러 번이다.


'너만큼만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종종 주변 사람들이 과거에 쓴 내 글을 읽고 부러움을 토로한다. 자그만치 10년이다. 그 시간을 투자해 겨우 남들이 읽을만한 수준의 글쓰기 실력을 얻었다. 만약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글쓰기가 아닌 다른 분야에 시간을 투자했다면 오히려 더 성과가 좋지 않았을까. 


꾸준함은 재능 없는 이의 유일한 선택지라고 수없이 생각했다. 재능 있는 자들은 지름길을 통해 일찍 목적지에 도착해 또 다른 일을 도모하지만 지름길이 어딨는지 모르는 나는 먼 길을 에둘러 걸을 뿐이라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꾸준하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가끔 마감이 쫓기는 탓에, 더 쓰기 싫다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고 발행버튼을 누른다. 보통은 글을 쓰고 나면 공감, 댓글과 같은 실시간 반응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편인데 이런 날에는 그냥 덮어둔다. 평소보다 형편 없는 글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쓰기 싫은 마음이 없었더라면 좀 더 잘 썼을텐데. 조급하게 발행버튼을 누른 건 아닌지. 발행한지 얼마 안 됐으니 어차피 몇 명 보지도 않았을텐데 다시 비공개로 돌려 완성도를 올려볼까.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에 아이러니하게 글은 터진다. 사실 여전히 이유는 잘 모르겠다. 공들여 쓴 글은 터지지 않고, 힘을 뺀 채로 쭉 내려 쓴 글이 터지는 것을.


어쩌면 그 동안 묵묵히 쌓아온 시간에 대한 결과물이라. 꾸준함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발 밑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늘 발밑이 아닌 앞만 보고 살아온 탓에 그동안 쌓아온 것을 보지 못한 채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고. 


글은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지만, 그 글의 반응은 내 것이 아니다. 그러니 나를 믿는다는 건 반응을 섣불리 예측하지 않고 열심히 쓰고 대충 쓰기를 반복하면서 꾸준히 글을 꺼내놓는 것이다. 


부족함을 많이 느껴도 세상에 내놓는 것.
썩 만족스럽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재능 없다는 생각에 쓰기를 게을리하는 행동을 멈추는 것.
불확실한 생각을 확실한 글로 탄생시켜주는 것. 


"재능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게 아니고 스스로 있다고 생각하는 그 '믿음'이 중요하다.
책 <데뷔의 순간>, 한국영화감독조합, 주성철


지난 10년동안 글을 쓰면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배웠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쓰지 않을 이유보다 써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한 주간 보고 듣고 느낀 것 중 가장 좋았던 콘텐츠를 정리해서 보내드립니다.


뉴스레터 구독하기



매거진의 이전글 의미는 찾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