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우리의 삶은 의외로 좁다. 주변 사람들을 떠올려봐도 나와 비슷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드물게 있다고 하더라도 살아가는 결이 다른 나머지 일상에서 부딪히는 일이 드물다.
그래서일까.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집은 언제나 흥미롭다.
이번 주에는 가수 조피디가 쓴 책 『낭만적 인간과 순수지속』을 읽었다. 제목만 봐서는 철학책 같았지만 막상 읽어보니 유년 시절과 데뷔 에피소드, 사업 이야기 등을 담은 에세이집이었다.
“익숙한 공간은 벗어나면 몸은 피곤해도 머리가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뭔가 대단한 아이디어를 생산하지는 못해도 복잡했던 문제들이 가지런히 정리되는 느낌이랄까. 그것만 해도 일상에선 얻기 어려운 성과라고 생각해요.”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작은 문제들이 일상을 장악할수록 리프레쉬가 필요하다. 크게 볼 수 있는 산이나 바다를 가보는 것도 좋지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익숙한 공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즉 일상에서 낯선 경험을 들이는 것이다. 그것이 여행이 될 수도 있고,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 될 수도 있다.
조피디에게는 그 경험이 첫 에세이집을 쓰는 일이었다. 익숙했던 음악계에서 잠시 벗어나 20년 전의 나, 어제의 나, 오늘의 나까지 지금까지 보낸 모든 시간의 총합을 텍스트로 엮는 일이었다.
처음 쓰는 일이다 보니 책 목차를 정하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가 말하기를 가사가 초등학생 수준이라면, 책 쓰는 일은 대학생 수준인 것 같다고. 물론 노래 가사 같은 경우 함축적으로 써야 하고 노래와도 어울리는지 노하우가 필요하지만 그 외에 필력이나 표현을 하는 방법은 정말 큰 어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다시는 쓰기 힘들 정도로 꽤 오랜 시간을 들여 고민하면서 겨우 썼는데 막상 그 책을 선물 받은 친구들은 단 두 시간 만에 읽는 모습을 보고 허탈함을 느꼈다고. 나 또한 2년 전에 전자책을 하나 출간해본 경험이 있기에 굉장히 공감 가는 이야기였다.
매직 모멘트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아주 잠깐, 드물게 신세계가 펼쳐지면 몇 분 안에 쭉 써 나가야 한다. 운전을 한다거나 시끄러운 장소에 있어서 단숨에 기록하지 못하면 까먹기 십상이다.
무엇보다 조피디가 쓴 책 『낭만적 인간과 순수지속』을 읽고 가장 크게 와닿았던 부분은 매직 모멘트였다. 조피디는 책에서 매직 모멘트라고 말했지만 부르는 사람에 따라 영감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글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흔히 샤워할 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그런 순간들을 뜻한다.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매직 모멘트가 오기만을 바란다. 그런데 그것은 바란다고 해서 오는 것도 아니고, 준비되어 있다고 해서 찾아오지도 않는다. 어딘가 적을 수 없는 무방비 상황일 때 특히 자주 찾아오는데 이 순간을 놓치면 매직 모멘트는 놓치기 일쑤다. 그래서 언제 어디에서든지 매직 모멘트를 잡을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어떤 소설가는 잠을 자다가도 스토리가 떠오르면 협탁에 둔 메모지와 연필을 손에 쥐고 메모를 한다. 그리고 다시 잠에 든다. 그리고 어떤 작가는 유독 많은 아이디어가 찾아오는 샤워하는 순간에 드는 생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욕실 타일에 적을 수 있는 펜을 따로 마련할 정도다.
잘 모르는 분야에 뛰어들 때는 실행만 한 계획이 없다. 일단 그 분야에 발을 담가야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고, 그 뒤에야 비로소 계획다운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인순이와 ‘친구여’를 함께 불렀던 래퍼로 기억에 남았던 조피디는 책을 낸 작가뿐만 아니라 현재는 신인 아이돌 데뷔를 앞두고 있는 프로듀서로 종횡무진하고 있다.
래퍼에서 프로듀서, 엔터테인먼트 사업가, 그리고 한 여자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인 조피디는 앞으로 자신의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를 더 붙일지.
그리고 계속 새로운 분야에 뛰어드는 그의 책을 읽으며 나는 내 이름 석자 앞에 어떤 수식어를 더 붙일지 이 책을 읽으며 고민해본다.
본 포스팅은 업체로부터 제품 및 소정의 원고료를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