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가 떠나고 얼마 되지 않은 날들

최선을 다함의 본질

by 모닥불

미남이가 떠난 지 8일이 지났다.

그 아이를 보낸 날부터 지금까지, 나는 틈만 나면 고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상실감에 울고, 삶이 참 허망한 것 같아 울다가, 결국엔 형언할 수 없는 울적함에 젖어 들어 울었다.

돌이켜보면 스스로가 참 우스운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대학 시절부터 직장 생활까지 줄곧 대전에 자리를 잡았다는 핑계로, 울산 본가에는 몇 개월에 한 번씩 겨우 발걸음을 했다.

그 거리만큼이나 미남이와의 시간도 멀어지고 있었다.

가끔 집을 방문할 때마다 내가 마주한 것은 그 아이의 급격한 노화였다.

관련하여 기억 저편에 저장된 일화가 하나 있다. 어느 날, 도어락 소리를 내며 문을 열었는데 미남이가 마중을 나오지 않았다. 원래는 내가 계단 오르는 소리부터 듣고 달려나와 문을 긁어대던 미남이었다. 이상한 마음에 안방으로 가보니 녀석은 몸을 둥글게 만 채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이름을 부르며 털을 쓰다듬자, 그제야 화들짝 놀라며 나를 반기던 미남이.

그때 처음으로 실감했다. 아, 녀석이 정말 나이가 들었구나.


그 후로 집을 찾을 때마다 미남이의 병원 기록은 훈장처럼 늘어갔다. 다리 수술을 했다는 소식, '쿠싱'이라는 생소한 병에 걸렸다는 소식. 심부전에 걸렸다는 소식. 결국 하루에 네 종류의 약을 삼키고, 매일 저녁 등에 주삿바늘을 꽂아 피하수액을 맞게 되었다는 얘기까지 나는 늘 뒤늦게 알았다.

멀리 사는 가족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어 소식을 아꼈던 다른 가족들의 배려 덕분이었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소외감 뒤편엔 직접 케어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생기는 비겁한 안도감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밖에서 내 할 일 바쁘다는 핑계로 나는 녀석의 고통을 유예받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왜 나는 이토록 깊은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걸까.

미남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약과 수액을 잘 받아들였고, 떠나던 날 아침에도 동생과 엄마의 온기 속에서 외롭지 않게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난 지금도 그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근래는 기억 속의 활기찬 모습과 달리 자꾸만 허공을 응시하고, 잠에 취해 우리에게 관심을 잃어가는 녀석을 보며 낯섦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온 가족이 모여 게임을 하던 저번 주 설날, 미남이는 잘 걷지도 못하는 다리를 이끌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우리가 깔아놓은 보드게임 판 한가운데로 들어왔었다. 예전부터 내가 책을 읽거나 엄마가 가계부를 쓸 때면 관심을 달라며 그 위로 철푸덕 주저앉던 그 귀여운 심술을, 마지막 선물처럼 그날 보여준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 모습에 웃음꽃을 피웠다.

미남이는 우리 가족의 가장 행복한 장면을 눈에 다 담고 떠난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혼자 운전할 때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까지 눈물을 멈추지 못할까.

내 마음속 심연은 이미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진정 미남이에게 가족으로서 책임을 다했는가. 점점 아파가는 녀석을 보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누구에게나 삶은 유한하기에 그 끝을 예상했다는 핑계 뒤에 숨어, 혹시 녀석의 죽음을 어떠한 완결이나 해방으로 여기는 떳떳하지 못한 마음을 품지는 않았던가.

지금 쏟아지는 눈물은 어쩌면 책임을 다하지 못한 비겁함에 내리는 뒤늦은 벌일지도 모른다.

나를 울리는 것이 녀석의 빈자리인지, 아니면 책임을 다하지 못한 나의 오만함인지 알 수 없어 괴롭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음에도 나 자신에게 들켜버린 이 심연이 부끄러워, 나는 자꾸만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쏟는다.

어제는 정월대보름이었다. 나는 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것을 좋아한다. 유난히 크고 예뻤던 그 달을 향해 미남이가 부디 좋은 곳에 가게 해달라고 빌었다.

결국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것조차 나의 안위를 위한 이기적인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이기적인 동기에서라도 나는 그 아이에게 모든 정성을 다했어야 했다. 그것이 남겨진 자가 겪어야 할 이 지독한 후회의 늪에서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부디 그 순수한 영혼만큼은 내 후회의 얼룩에 물들지 않고 평온하길.

나는 당분간 이 후회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다.


그 진득한 감정 안에 머물며, 나라는 인간의 민낯을 확인하는 이 고통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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