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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연 Feb 19. 2024

착하다는 착각

멋진 하루


친구와 강남의 인스타 핫플이라는 카페에 갔다. 베이지와 레드로 독특하면서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사진에서 보던 예쁜 케이크의 종류가 많았다. 이 집의 시그니쳐 케이크와 커피를 주문하니 밥값보다 더 비싸다. 예쁘게 차려 나온 커피와 케이크에 사진을 찍어대며 친구와 수다에 문을 열었다. 포즈를 취하라는 친구의 말에 커피잔을 들다가 카페 왼쪽 끝에 앉아 있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빨간 벽에 그녀가 입은 베이지색 옷은 이 카페의 인테리어 인듯 분위기에 녹아 있었다. 우리의 시선은 서로를 응시하며 시간이 멈춘 듯 바라보았다. 10초쯤 흘렀을까? 서로의 눈길을 거두며 시선을 커피잔으로 옮겼다. 어딘가 기억 날듯 말듯한 아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쉽사리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에 로딩을 재촉 하며 찾아보려 애써본다.  

'누구지 누구였더라... 누구더라...? 어서 봤지?' 


앞에 앉은 친구의 말이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 자기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는 나에게 친구는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벽 건너편을 손짓하며 눈이 마주쳤는데 기억이 날듯 말 듯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그 순간 그 여인과 다시 눈이 마주쳤다. 우리의 시선은 다시 멈춰 섰다. 그때 그 여인이 자리에서 일아나더니 나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또각 또각 또각' 165센티의 늘씬한 몸매에 길게 웨이브진 밝은 갈색헤어가 걸을 때마다 물결친다. 베이지색 핸드메이드 코트가 멋스럽다.

'또각 또각 또각' 그녀가 일랑일랑의 시트러스향을 내뿜으며 내 앞에 멈추어 섰다.  내 머리는 여전히 로딩 중이다. 알듯 말듯 일치가 안된다.



"미영아~  오랜만이다. 너는 하나도 안 변했네. 들어올 때부터 널 알아봤어. 계속 너를 바라봤는데 네가 날 몰라보는 것 같더라."

"아, 안녕하세요. 저 아세요? 누구시더라.. 어디선가 뵌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네요. 우리가 어디서 봤죠?

"나야~ 박선영. 장미고 13회! 어머~ 나 모르겠어?"

"박선영? 장미 박선영? 어.... 박선영! 맞다 박선영.. 내 단짝이었던! 어머 어머~ 몰라봤네. 어머어머 너 너무 이뻐졌다.  알듯 말듯 하드라고. 정말 몰라봤어. 미안해."

"괜찮아, 나 성형했잖아. 돈 좀 썼어. 호호호 어때? 이제 너 눈만큼 내 눈도 크지? 호호호"

"응.. 응?? 너 눈 성형 한 거야? 너무 예쁘다."

"고마워, 네가 하도 단추구멍이라고 내 눈 놀렸었잖아! 그래서 했는데 잘못돼서 2번이나 다시 했어. 이제 좀 자연스럽지? 우리 신랑은 내 눈 정말 예쁘다고 좋아해."

".........."

"어.. 어.. 그래? 내가 너 눈을 놀렸다고? 기억이 안 나네.."

"모야~기집애! 기억 안 나? 너랑 같이 성형외과 가서 상담도 받고 했잖아!ㅎㅎㅎ"

"..........."

"나 이제 가봐야겠다. 명함 줄 테니 전화해. 우리 밥이나 한번 먹자. 너무 반갑다. 어쩜 하나도 안 변했네. 이제 가봐야겠다. 꼭 연락해!" 

선영이는 명함을 테이블에 두고 출입문에 서 있는 일행과 함께 나갔다. 그녀는 20여 년 만에 내 앞에 나타나 나풀거리는 갈색머리를 펄럭이며 일랑일랑의 시트러스향을 남기고 떠나갔다.





'내가 놀렸다고? 나 때문에 성형을 했다고? 이게 무슨 소리야?'

학교를 같이 다니며 서로 티키타카가 잘 맞아 친하게 지냈던 그녀가 나로 인해 성형을 했다는 얘기는 충격이었다. 앞에 있던 친구는 10분의 만남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당황해하며 어정쩡하게 의자에 앉는 나에게 말을 건넸다.

"미영아~괜찮니?

"응응"

"고등학교 친구야?"

"응 제법 친했는데, 일산으로 이사가면서 연락이 끊겼었어. 20년 만에 처음 보네. 완전 다른 사람이 됐어! 몰라봤어."

"그렇구나. 성형 예쁘게 잘 됐네. 명함 줘바~강남에 있는 피부과 실장이네. 어쩐지 광나는 피부가 예술이드라. 관리 엄청 하는 듯해 보여. 스타일도 세련됐고. 예쁘다. 아~나도 관리받고 싶다. 미영아~우리 가서 상담 좀 받아볼까? 너 고교 동창이라니 친구찬스 좀 써보자!"

"~애! 강남 피부과면 비싸! 카드 한도 박박 다 써야 할걸! 나 돈 . 호호호"

친구와 나는 그렇게 두어 시간을 위안과 격려를 하며, 수다시간을 마무리했다. 아이 학원 픽업시간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며 바쁜 일상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복잡한 마음을 헤아렸다. 나는 내가 착하게 살아왔다고만 생각했다. 아니, 착하다는 사전적의미를 넘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오로지 나만 상처를 받고 나만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큰 착각인가?


내 말에 힘들었을 선영이에게 너무 큰 미안함을 느낀다. 전화해서 지난날의 과오를 사과하고 싶지만, 나의 전화에 반갑지 않은 옛 추억을 떠올리는 것이 옳은걸까?싶다. 멋지게 백조처럼 변한 그녀의 현재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그 친구의 눈부신 변화에 어쩌면 내가 부스터가 되지 않았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선영이에게 전화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 친구와 만나 얘기를 하다 보면 카드 한도 끝까지 끌어 모아서 피부과 예약을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시간은 흘러간 데로 두자!. 오늘 선영이도 나를 보면서 나보다 본인이 더 예쁘게 나이 들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선영아. 미안했고 오늘 너의 모습 정말 멋져 보였어. 어릴적 철없이 단추구멍이라고 놀렸던 나를 용서해주렴. 사과할게! 내 사과를 받아주렴. 그때는 우리 서로 장난치며 놀았던 단짝 이었잖아. 일산으로 이사가고 연락이 안되서 많이 서운했었어. 눈만 크고 주름 자글자글한 나보다 예쁜 눈에 뽀얀 피부의 네가  눈부시더라. 보석처럼 빛나는 너의 눈이 아름다웠어! 선영아, 너 정말 예쁘더라!"


나는 선영이 덕분에 나의 지난 시절을 되돌아 봤다. 그리고, 그동안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용서했다. 마음에서 내려놓았다. 그들도 기억 못 하고 있었을...그날들에, 나또한 함부로 말해서 상처 준 모든이에게 용서를 구하며 참회를 다.


선영이를 보며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시 짚어보게 되는 멋진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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