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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연 Mar 31. 2024

햇살이 아깝다는 엄마의 말

엄마의 딸, 아들의 엄마

"햇살이 참 아깝다! 오늘은 이불을 빨아야겠다!"


3월의 어느 눈부신 주말에 엄마는 이렇게 말하며 단잠에 빠져 있는 언니들을 깨우고 이불을 거둬갔다.

그리고, 마당에 커다란 고무 대야를 꺼내어 세재를 풀어 이불을 넣었다.

"어서들 나와~ 이불 밟으렴~~"

올해도 어김없이 3월의 대청소 날이 돌아온 것이다. 엄마는 3월이 되면 햇살 좋은 날을 기다렸다가 적당한 바람과 적당한 햇살이 쏟아지는 날을 어김없이 낚아챘다.

투덜대는 언니들과 나는 종아리까지 옷을 돌돌 말고 대야 속으로 들어갔다. 엄마의 어름장이 무서워 시작한 이불 밟기는 차츰 재미로 변해가며 첨벙거리고 뛰는 놀이가 되었다. 힘을 주며 꾹꾹 밟으라는 엄마의 말은 들리지 않고, 비눗물을 튀어가며 놀이가 울음으로 바뀔 때쯤, 엄마는 한 사람씩 부르며 달달한 미숫가루를 건네주었다. 마루에 앉아 바라본 하늘은 그렇게 각인되었다.


파란 하늘에 아직은 살짝 신 바람이 나플거리는 빨랫줄에 이불이 펄럭거린다. 그런 날이 오늘 나에게 찾아온 것이다.

"햇살이 참 아깝다! 오늘은 이불을 빨아야겠어!"

나는 3월의 마지막날 눈부신 햇살을 보며 어린 시절 각인된 그 날을 꺼내었다. '이런 날이었구나... 눈부신 햇살이 아깝다는 엄마의 말이!'

오늘은 미세먼지 없이 저 멀리 북한산이 보인다.

마당은 없고, 커다란 고무대야도 없지만, 2시간이면 뚝딱 뽀송한 이불이 나오는 세탁기가 있다. 세재를 풀고 버튼을 눌렀다. '눈부신 3월의 햇살이 참으로 좋구나'


커피 한잔을 내려 베란다에 앉았다. 파란 하늘에 벚꽃 소식이 들리는 3월의 마지막 날. "햇살이 참 아깝다! 오늘은 이불을 빨아야겠다!" 젊은 엄마의 그 카랑카랑한 말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커피를 홀짝이며 바라보는 눈부신 하늘은  그 날과 꼭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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