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고네는 도망가지 않는다
이스메네, 우리의 운명을 들어봐. 오이디푸스의 고통은 그만의 것이 아니었어. 그것은 그의 자식들인 우리에게도 내려진 저주였지. 경멸, 모욕, 불명예… 그 모든 걸 겪어왔지만, 이제 더 큰 고난이 닥쳐오고 있어.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죽음 말이야. 오빠의 시신은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저주받은 채 버려질거야.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가엾은 오빠의 소식에 안티고네는 분노를 터뜨린다. 적군의 장수, 폴리네이케스의 죽음은 누구도 애도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그의 시신은 거리에 버려져 짐승에게 먹히며 썩어가야 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는 죽음으로 그 죗값을 치러야만 한다.
왕(크레온)의 칙령과 함께 폴리네이케스에 대한 마땅한 애도의 절차는 금지된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도무지 오빠의 시신이 존엄을 잃은 채 거리에서 썩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 그녀는 동생 이스메네에게 자신의 원통함과 계획을 이야기한다. 두려워하는 이스메네에게 안티고네는 말한다.
내가 죽어야 한다면 나는 죽을 거야
왕의 칙령은 문제가 아니다. 그의 명령이 무엇이든, 안티고네는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할 것이다. 그녀는 그를, 왕을, 법을 어기기를 선택한다. 오빠에게 적합한 장례를 치러주겠다 선언하는 안티고네는 오빠의 시체를 묻어주고, 슬퍼하며, 충분히 애도하다 크레온의 군인들에 의해 체포된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도망가지 않는다. 선택 이후의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는 안티고네는 숨지 않는다.
실패했을 때 실패하는 것이지,
그전엔 실패가 아니야
자, 이제 안티고네와 오이디푸스를 나란히 놓아보자. 오이디푸스와 그의 딸 안티고네. 우리에게는 두 비극의 주인공이 있다. 그러나 이 부녀가 운명을 마주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지 않은가? 오이디푸스는 신탁을 두려워하며 그것을 피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그러나 신탁은 그가 도망치려 할수록 더욱 빠르게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결국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가장 두려워했던 운명을 마주하고 스스로를 추방한다. 그는 스스로가 몹시 부끄럽다.
오이디푸스의 추방 이후, 불행은 안티고네에게로 이어져 그녀는 수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아버지와 달리 그녀는 도망가지 않는다. 그녀는 오빠의 죽음을 애도하지 말라는 왕의 명령에 단호하게 맞선다. 운명이 어떻게 생겨먹었던 안티고네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간다. 안티고네는 숨지 않는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녀는 당당히 자신을 드러내 맞선다.
오이디푸스는 운명에서 도망치려 했지만 결국 그것에 굴복한다. 안티고네는 다가올 운명을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직면하고 싸운다. 두려워하지 않는 안티고네는 결국 그에 따라 죽지만 그녀의 죽음은 명예롭다.
운명에 굴복하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당당하게 죽음으로 들어가는 안티고네가 이제 고개를 들어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어떤 길을 선택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