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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이 Dec 02. 2020

비우고나서, 채워요.

[소품집] 내 삶에 정성을 쏟는 방법

지난여름, 제출할 서류에 사진을 붙이기 위해 풀이 필요했다. 방 안 서랍을 온통 뒤져봐도 딱풀은 나오지 않았다. 오랜만에 열어본 서랍은 수년간 쌓아둔 물건들로 뒤죽박죽이었다. 그러나 서랍은 닿으면 그 안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풀을 찾지 못한 그 날, 서랍을 고스란히 닿아두었다.  


그 후로 몇 개월이 흘렀다. 이번엔 주민등록증이었다.


서랍 제일 위칸에 분명히 넣어뒀었는데.


물건을  꺼내고 나서야 겨우 찾을 수가 있었다. 널브러진 물건들로 바닥은 엉망이었고 시간은 10분이나 흘러있었다. 그제야 서랍을 정리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모르는  문을 닫는 대신  문을 활짝 열었다.    


서랍 안은 미련이 남아 버리지 못했던 물건들이 가득했다. 언젠가는 쓰임이 있겠지라고 기대했으나 언제나 기대로만 남아 있는 그런 물건들 말이다. 종량제 봉투를 새로 꺼내 쓰지 않는 물건들을 하나둘씩 넣기 시작했다. 책상 옆 삼단 짜리 서랍을 정리했을 뿐인데 20리터짜리 봉투의 반이 채워졌다.  


버려지는 물건들 하나하나 마다 추억이 깃들어 있었다. 손에 꽉 쥐고 놓지 못하던 기억들이 스며있는 물건들을 이제 놓아주며 심심한 작별의 인사를 고했다. 꽤 소중하게 생각했던 작은 문구류부터 초등학교 때 불던 오카리나, 엄마가 줬던 작은 머리핀까지. 현재에 들어올 틈이 없는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서랍 속에는 각각의 물건들에 담겨있던 기억이 곳곳에 있었다.   


내 삶에 정성 쏟기


그러나, 이제는 비워내기로 결심했다. 물건을 버린다는 것은, 버린 물건만큼의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서랍  꽁꽁 숨어있던 물건들을 꺼내어 그때의 기억들을 떠올려보았다. 어떤 물건을 간직하고, 어떤 물건을 버릴지 결정하는 행위는 신기하게도 지금의 내가 누구인가를 돌아보게 했다. 만족스러운 이별의 방식이었다. 비워지는  기억이 아니라 물건이지만, 나의 마음에도 그만큼 여백이 생겼다. 기억들 여전히 어딘가에 남아있다 하더라도 마음에는  공간이  움큼 생긴 것이다.  


필요 없는 물건들을 버리는 것은 분명  삶에 정성을 쏟는 일이다. 나를 위해 물건을 비우고, 마음을 비우고, 새로운 생각과 감정들을 위한 자리를 내주는 . 물건들은  쌓이겠지만, 그때마다   삶에 정성을 쏟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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