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품집] 내 삶에 정성을 쏟는 방법
지난여름, 제출할 서류에 사진을 붙이기 위해 풀이 필요했다. 방 안 서랍을 온통 뒤져봐도 딱풀은 나오지 않았다. 오랜만에 열어본 서랍은 수년간 쌓아둔 물건들로 뒤죽박죽이었다. 그러나 서랍은 닿으면 그 안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풀을 찾지 못한 그 날, 서랍을 고스란히 닿아두었다.
그 후로 몇 개월이 흘렀다. 이번엔 주민등록증이었다.
서랍 제일 위칸에 분명히 넣어뒀었는데.
물건을 다 꺼내고 나서야 겨우 찾을 수가 있었다. 널브러진 물건들로 바닥은 엉망이었고 시간은 10분이나 흘러있었다. 그제야 서랍을 정리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모르는 척 문을 닫는 대신 그 문을 활짝 열었다.
서랍 안은 미련이 남아 버리지 못했던 물건들이 가득했다. 언젠가는 쓰임이 있겠지라고 기대했으나 언제나 기대로만 남아 있는 그런 물건들 말이다. 종량제 봉투를 새로 꺼내 쓰지 않는 물건들을 하나둘씩 넣기 시작했다. 책상 옆 삼단 짜리 서랍을 정리했을 뿐인데 20리터짜리 봉투의 반이 채워졌다.
버려지는 물건들 하나하나 마다 추억이 깃들어 있었다. 손에 꽉 쥐고 놓지 못하던 기억들이 스며있는 물건들을 이제 놓아주며 심심한 작별의 인사를 고했다. 꽤 소중하게 생각했던 작은 문구류부터 초등학교 때 불던 오카리나, 엄마가 줬던 작은 머리핀까지. 현재에 들어올 틈이 없는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서랍 속에는 각각의 물건들에 담겨있던 기억이 곳곳에 있었다.
내 삶에 정성 쏟기
그러나, 이제는 비워내기로 결심했다. 물건을 버린다는 것은, 버린 물건만큼의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서랍 속 꽁꽁 숨어있던 물건들을 꺼내어 그때의 기억들을 떠올려보았다. 어떤 물건을 간직하고, 어떤 물건을 버릴지 결정하는 행위는 신기하게도 지금의 내가 누구인가를 돌아보게 했다. 만족스러운 이별의 방식이었다. 비워지는 건 기억이 아니라 물건이지만, 나의 마음에도 그만큼 여백이 생겼다. 기억들이 여전히 어딘가에 남아있다 하더라도 마음에는 빈 공간이 한 움큼 생긴 것이다.
필요 없는 물건들을 버리는 것은 분명 내 삶에 정성을 쏟는 일이다. 나를 위해 물건을 비우고, 마음을 비우고, 새로운 생각과 감정들을 위한 자리를 내주는 것. 물건들은 또 쌓이겠지만, 그때마다 또 내 삶에 정성을 쏟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