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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이 Dec 28. 2020

여자의 적은 여자일까?

『인형의 집』, 여자를 돕는 여자들의 이야기

"예쁜 여자는 시기 질투를 받기 쉬워."  


"여자의 적은 여자라니까."

  

"여자들 사이에 그런 거 있잖아."

  

살면서 이런 말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여고를 졸업하고 여초 학과에 진학했던 나 또한 귀에 딱지가 않도록 비슷한 말들을 들어왔다. 심지어 여고에 다니고 있음에도 여대에 진학하기 싫은 이유를 '여자들의 기싸움이 싫어서'로 대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 프레임이 여자들만 당하는 쉐도우 복싱임을 고등학교 3년 동안 몸소 체험했을 텐데, 대학 진학을 꺼리는 사유가 또 여자라서 라니?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사회가 주입하는 메시지에 아주 잘 사회화된 학생이어서, 그것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었다.  


'맞아… 여자들은 그런 게 있을 수 있지. 하지만 난 아닌데?'


정도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난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여성들이 대부분이었음을 그때는 왜 알지 못했을까!

 

그러나 바로 여기, 백 년도 더 이전에 이 지겨운 프레임을 깨부수었던 작품이 있다. 1879년 헨릭 입센이 발표한 '인형의 집'이 바로 그것이다.  


'인형의 집'은 노르웨이 극작가 헨릭 입센의 희곡이다. 1879년에 초연된 이 희곡은 발표되자마자 아주 큰 반향을 일으켰다.

  

가부장제에 도전하는 여성이 주인공이라니!

성스러운 결혼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이라니!

 

당시로서는 아주 파격적인 스토리텔링이 아닐 수 없었다. 놀랍게도 남성 작가인 입센은 “오늘날 사회에서 여성은 자기 자신이 될 수 없다.”라는 말과 함께 이 작품을 발표했다고 전해진다.  




작품에는 두 여성 노라와 크리스틴이 등장한다. 극 중에서 노라는 아주 예쁘고 늘씬하며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는 시대의 이상향과도 같은 여성이다. 남편과 자녀들을 어떻게 더 행복하게 해 줄까 고민하는 것이 그녀의 유일한 관심사이다.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며 곧 은행장이 될 남편의 출세에 들떠있는 그녀에겐 아무런 걱정이 없어 보인다.


크리스틴은 노라의 옛 친구이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노라의 집을 방문한 크리스틴은 노라에게 일자리 알선을 부탁한다. 친구의 부탁을 노라는 기쁘게 받아들인다. 이제, 그녀들의 연대가 시작된다.  


It will make me so happy to be of some use to you. (A Doll’s House 14)

친구의 부탁을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노라에게는 한 가지 비밀이 있다. 몸이 아팠던 남편의 요양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아버지의 서명을 위조해 돈을 빌렸던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비밀을 노라는 크리스틴에게 털어놓는다. 가장 가까운 사이여야 할 남편에게 절대 들켜서는 안 될 비밀이 크리스틴에게선 안전하다.  


비밀을 털어놓게 된 노라는 이제 크리스틴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남편에게 서명을 위조했다는 사실을 모두 말해버리겠다고 협박하는 크로구스타의 협박을 받고 있는 노라는 그녀의 도움이 절실하다. 처음 노라가 크리스틴에게 주었던 도움은 이제 연대라는 형태로 노라에게 돌아온다. 노라보다 한 발 앞서서 ‘남성이 없어도 되는 삶’을 살아왔던 크리스틴은 그녀와 기꺼이 연대한다.  


We will easily put that right.(A Doll’s House 40)

노라가 모든 사건의 전말을 걱정 없이 말할 수 있는 인물은 같은 여성인 크리스틴뿐이다. 위기에 빠진 노라가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자신의 남편도, 부를 가진 또 다른 남성, 랑크 박사도 아닌 바로 크리스틴이다. 그녀들은 연대하기로 결정했고 서로를 신뢰한다.  


I only want to say this to you, Christine-...(A Doll’s House 59)

노라는 편지가 철회되길 원한다. 그러나 크리스틴은 노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녀는 노라가 거짓된 결혼생활(falsehood)을 끝내고 남편과 노라 둘 다가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의 'falsehood'란 노라의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여성들을 기만하며 그녀들을 속박하고 억압하는 가부장적 질서의 위선이라고도 볼 수 있다.


결국 크로구스타가 편지를 철회하지 못하게 한 크리스틴의 결정 덕분에 노라는 자신의 삶을 똑바로 직면한다. 노라는 가부장적 질서를 거부하기를 선택한다. 노라는 이 ‘falsehood’에서 빠져나와야 했고 크리스틴이 이를 도왔다. 여성들의 연대가 한 명의 여성을 해방시킨 것이다. 첫걸음을 뗀 노라는, 결국 문을 박차고 나왔다.




최근 몇 년간 사람들의 의식이 급변함에 따라 기존의 클리셰에서 탈피한 여성 중심의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다. 또래의 여성들을 중심으로 연대의식이 점점 자라나고 있다는 걸 경험으로 느낀다. 학창 시절 지겹게 들어왔던 '여적여' 프레임 또한 예전 같은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듯하다. 그러나 아직 갈길은 멀기에, 우리 주위의 수많은 노라와 크리스틴을 응원한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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