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치를 날로 뜯기 시작한 사람과 같은 종류의 사람들
마트에서 시금치를 한다발 샀다.
만날 감자와 양파, 호박만 넣었던 된장국에 조금 넣어 먹고 다음날에는 그대로 뜯어 호두와 크렌베리를 넣고 간장소스를 뿌려 샐러드로 먹었다.
내가 시금치를 뜯고 있자니, 남편이 묻는다.
그거 날로 먹어도 되는거야?
당근도 양파도 날것으로 잘도 먹으면서 뭘그래, 하고 계속 뜯어내는 손을 주시한다.
그는 "흙을 먹으면 죽는다"라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그래서 날야채를 씻을 때마다 얼마나 유난을 떠는지 모른다. 그래서 분홍색의 꼭지를 흐르는 물줄기에 꼼꼼히 씻어내면서, "엄연히 존재하는 메뉴야. 스피니치 샐러드" 라구! 말한마디를 덧붙였다.
텔레비젼에서 누가 그랬다더라, 라고 하면 철썩같이 믿었던 시대도 지나갔건만 나는 유명한 쉐프에게 날것으로 먹어도 된다고 허락이라도 받은 것처럼, 이를테면 '무릎길이의 꽃무늬 치마'를 굳이 "플라워 프린티드 니랭스 스커트"라고 쓰면 고상한 아이템이 되버리는 것처럼 우스꽝스럽지만 흔히 용인되는 트릭을 써 보았다.
그렇게 해서 조금 부끄럽게 등장한 "스피니치 샐러드"는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양상추 샐러드가 지겨우면 어린잎 샐러드. 조금 와일드하게 가고 싶으면 시금치 샐러드로 가면 되겠군, 하고 둘은 뿌듯해했다.
사실 어렸을 때는 샐러드, 가 아닌 사라다를 먹었다. 사라다는 어느 집이나 한 종류로 사과 배, 감을 마요네즈에 버무린 것이 전부였다. 세상이 좋아지면서, 우리는 사라다의 세상에서 샐러드의 세상으로 한 발 내딛었고 뭐든지 떼려 넣을 수 있다는 자유함을 얻었다.
데쳐서 마늘과 참기를을 넣어 "나물"로만 먹던 시금치를 날 것으로 먹을 생각을 누가 했을까,
아니, 시금치를 날것의 샐러드로만 먹던 그 어느 나라에서는 야채를 익혀서 마늘에 뒤범벅한것을 목구멍에 넘길수나 있는 것이냐고 거꾸로 물어올 수도 있겠다.
오스카 와일드는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에는 런던에 안개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물론 안개야 많았겠지만, 우리의 시선을 인도해주는 휘슬러의 그림이 없었다면 그 독특한 특질을 보는 것이 약간 더 어려웠을것이라는 이야기다.
<동물원에 가기> 알랭드보통
지금은 누구나 "런던"하면 "안개"를 떠올린다. 그렇게 떠올리는 것은 우리가 경험했기 문이 아니라 누군가 그것을 인지하게 도왔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안개조차 떠올리도록 새로운 시선을 펼쳐주는 인간은 "그 어디에도 새로운 말은 없는" 세상에 모두가 항상 사용하던 단어로 난생처음 마주하는 세상을 열어주는 글쟁이들이나 "그거 날로 먹을 수 있는 거야?" 라고 묻던 그가 이제는 아무렇지않게 준비하는
샐러드의 시금치를 날로 뜯기 시작한 사람과 같은 종류의 사람이라고 믿는다.
모두가 '사라다'를 먹던 그 때 시금치는 어떻게 샐러드가 되었을까?
'나'라는 채널을 통해 같은 세상의 다른 면을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무심코 흘려보내진 그런 순간만큼 근사한 찰나는 없을테니,
흙을 먹을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날 것의 시금치를 요리해봐야겠죠.
*하지만 예쁘다고 아무 버섯이나 뜯어 넣어서 먹었다간 큰일이 날테니 일단 먹을 수 있는 것으로 한정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