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보로봉 Oct 05. 2015

샤브샤브나이트​

하루를 이겨내고 둘러 앉은 우리 셋의 몸도 점점 더 진하게 데워져 간다

일러스트@황인정



그는 항상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사고 싶어했다. 마트에 갈때마다 가스레인지 코너를 여러번 기웃 거렸지만 급하게 필요한 물품이 아니다 보니 항상 다음에, 다음에, 하게 되었는데, 마침 이사한 집을 보러 오신 아버지와 마트에 갔더니, 이거 꼭 필요할텐데 라고 휴대용 버너 코너앞에서 멈춰 서셨다.

(둘이 짰어? 라는 눈빛으로 남편을 바라봤다. 쇼핑이라는 것에 관심없는 두 남자가 공통적으로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이번이 두 번째.  이사준비 할때도 아버지는 남편이 구입한 녹색 페인트가 칠해진 짐수레를 보더니 어! 이거 샀구나, 하고 눈을 떼지 못하셨다. 이런걸 좋아하는 건가 남자들은-)
 

그렇게 해서 우리집에 온 휴대용 버너에 부탄가스를 연결하고 손잡이를 돌리자 새것임을 자랑하듯이 세차게 불이 올라온다.

삼겹살을 올려 구워 먹으면서 "따듯하게 구워먹는게 좋긴 좋구나" 감탄하며 먹은 후, 약간 기름내가 도는 방안에서 기름진 배를 깔고 뒹굴 거리며 우리는 저걸로 삼겹살 말고 뭘 또 해먹을수 있을까 궁리했다.


 버너로 뭘 해먹어야 맛있을까......?
 
샤브샤브 나이트하자! 내 입에서는 샤브샤브 먹자! 가 아닌 샤브샤브 나이트! 가 튀어나온다.

왜인지 모르지만 샤브샤브는, 다 만들어서 예쁘게 담아 놓고 먹는 음식이 아니라 둘러 앉아, 가져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때려넣고 "불끄면 지는거야" 라고 외치며 먹어야 할 것 같아서다. 그럴려면 그대로 잠들어도 좋을 밤이 좋겠죠.
 
샤브샤브 어떻게 해먹는거지? 육수를 따로 만들어야 하나? 그냥 채소를 잔뜩 넣고 끓이면 다른 육수 필요없이 달달하지 않을까?  오뎅국을 끓여서 딸려오는 스프를 넣고 무를 넣고 고기를 넣을까?  팔팔 끓이면서 얇게 썰어온 고기를 살짝 살짝 담가 먹으면 맛있겠다.

스위트 칠리소스를 마트에서 팔던데-.


얼른 샤브샤브 나이트가 왔으면 좋겠다 싶은 며칠이 지나, 한 지인이 우리집에서 하루 쉬어가기를 청했다.
저녁으로 뭘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 가스레인지가 생각났다. 해본적은 없지만, 너만 믿는다 가스레인지! 라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넣어 먹을 채소와 고기를 사왔다. 정류장에서 마중나간 나를 기다리느라 몸을 떨었던 지인은 갑자기 따듯해진 집안 공기에 몸이 풀리는지 파르르 어깨가 떨려서 나는 그녀를 덥혀주고 싶은 마음에 버너의 불을 더 세게 틀었다. 9시가 다 되어가는 밤에 우리는 각자의 접시에 푹 익은 채소를 담아 후후 불어가며 먹기 시작했다. 고기를 넣자 기름기가 밴 국물은 더 구수해지고, 녹은 채소들이 국물을 졸여갈수록 하루를 이겨내고 둘러 앉은 우리 셋의 몸도 점점 더 진하게 데워져 간다. 뭐 멋지게 준비한건 없어도 휴대용 가스렌지 위에서 끓고 있는 국물앞에 수북이 쌓아놓은 채소와 고기를 보고 있자니, 언니, 많이 먹어요,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배를 두드리며 더이상 못먹겠다, 선언을 하고나니 조금은 지친 마음으로 우리집에 하루 쉬러 들린 지인과 샤브샤브를 먹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먹은 것이 아닌데도 휴대용 버너에 둘러앉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기운을 전달해준것 같아서다.

 
얼마전 다녀온 교토 여행에서도 그랬다.

교토 대학 앞에 있는 식당이어서 그랬던건지, 주문을 하고 바에 앉은 나와 남편은 뒤로 들리는 시끌벅적한 교토대학생들처럼 마음이 두근거렸다. '모리아와세(모듬)'로 주문한 생선 고기 채소조각과 함께 작은 화로가 나왔다. 몇조각되지도 않는데 숯까지 넣은 화로가 나오니까 한 개씩 올리는 것에 왠일인지 정성이 들어간다. 올려놓은 연어가 익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면 오반자이(평소 먹는 반찬류) 몇가지를 상에 놓고 신나서 떠들고 있는 청춘들이다. 차가운 겨울 바람을 지나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와 앉아, 앞에 놓인 화로 속 숯의 열기에 얼굴이 벌개진 그 저녁, 그들을 등지고 바에 앉았는데도, 앞에 놓인 화로 때문인지 모두와 둘러앉아 캠프파이어를 하는 것 같이 우리 마음도 들썩였다.

 

신기하구나. 휴대용 버너라는 것. 화로라는 것은 그렇구나.  

우리 앞에서 불을 내면서 그 공간과 순간을 태워버리는 밤으로 이끈다.

끓고 있다. 익혀진다. 우리의 시간도.

그것은 음식을 데우듯 기운나고 따듯한 것이기도하고 해변가에 둘러앉듯 즐겁고 설레기도 한 것이구나.

매거진의 이전글 시금치는 어떻게 샐러드가 되었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