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먹어야한데, 라고 먹는 여행은 하나도 똑똑하지 않다
"오사카는 먹다 망한다" 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먹을 거리가 넘쳐난다는 소문을 익히 들었고, 텔레비전에서 소개하는 오사카는 항상 시끌벅적한 시장에서 일본답지 않게 활기차게 소리를 높이는 상인들로 북적북적. 타코야키만해도 커다랗고 먹음직하게 들어간 그 문어들!을 보았기 때문에, 4일간의 교토일정중 하루저녁은 급행을 타고 가서 신나게 먹고 오자! 라는 계획을 세웠다.
역시나 밤의 오사카는 네온사인에, 규모부터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전광판이 도톤보리 강 주위로 번쩍인다.
유명한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 수 있는 라면집. 회전초밥집. 타코야끼집들이 늘어서있다. 너무 많아서 오히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 보이는대로 뱃속에 집어넣을 작정이었는데, 유명하다는 맛집이 차례로 나타나자 반갑기 보다는 시들해진다.
안돼, 오사카인데! 많이 걸어서 피곤해서 그럴꺼야, 여기까지와서 맛있는거 잔뜩먹고가야지!
아, 그럼 아케이드에서 먼저 쇼핑이라도 합시다!
내가 아는척을 했다. 오사카는 원래 쇼핑하러 오는곳이래. 동전파스랑, 칼로리미트랑, 퍼펙트휩이랑..꼭 사야하는게 있대. 라면서 드럭스토어로 들어갔다. 오사카여행을 검색하면서 계속 등장해 눈에 익은 물건들을 담으려고 하는데, "꼭 사야한다"는 세안제를 담는 박스는 이미 동이났다. 역시 인기가 많군. 직원이 바구니를 채워놓자, 나도 모르게 하나를 잽사게 집었다. 다른 건 또 무얼 사면 좋을지 몰라 조금 허둥대는데, 교토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한국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와, 다들 약속한 듯이 똑같은 물건을 담아가는걸 보니, 왠지. 부끄러워져서 집은것들만 얼른 계산하고 나왔다.
이 세안제,,, 원래 애용하던 것도 아니었는데- 어떤 가게가 얼만큼 싸고, 이런것 저런것은 꼭 사야한다고 말하는 블로그들을 연속으로 몇개 보고나서 최면이라도 걸렸나보다. 환전을 해서 그런지 모르는 사람이 그려진 남의 나라 돈은 실제돈 같지 않고 장난감 같아서, 시장놀이 하듯이 하루에 정해진 돈을 물건이나 먹을거랑 잘 교환해가야한다는 생각에 곧잘 빠지곤 한다. 쓰지않아도 사라지지 않을텐데 말이죠.
드럭스토어를 나와 서자 미간이 잔뜩 찌푸려진다. 손에는 세안제와 마스크 시트가 든 검은 봉지가 덜렁덜렁.
주머니엔 내 발로 읽어낸 교토의 너덜너덜한 지도가 들어있는데, 오사카는 밤에 잠깐 들르는 것이라 시간낭비할까 염려되서 블로그들을 탐독했더니, 낯설게 "발견"되는 것 하나 없이, 먹어야할것, 사야할것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어버려 오히려 시간낭비였다.
금룡라면의 커다란 용 간판 아래는 100명이라도 앉을 수 있도록 의기양양하게 확장을 해놓았다. 번쩍번쩍, 이랏샤이마세- 건너편 규동집을 보고 남편이 말한다. ....규동먹고싶다.
규동? 급행타고 오사카까지 와서 규동?...이라고 눈을부릅뜨다 둘은 서로 바라보고 하하하하하하 크게 웃었다.
그래! 오사카까지와서 규동먹자! 먹고싶은거 먹자!
문을 탁, 하고 닫고 들어가자 바깥의 시끌벅적함이 텔레비전 꺼지듯 사라지고 조용한 가게안의 신메뉴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넘쳐나는 관광객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퇴근하고 들린 바바리(?) 코트의 아저씨들이 군데 군데 앉아 규동을 먹고 있다.
무채색의 양복. 트렌치코트. 검정색 서류가방. 매일먹는 규동이 담긴 그릇과 나무젓가락.
아아, 맛있다. 그러면서 둘이 키득댔다.
작은 건물만큼 커다란 초밥모형에게 홀릴 뻔했네, 참나,
이렇게 맛있는걸 못먹을뻔했네, 참나,
그날 우리는 오사카까지 급행을 타고 가서, 시끌시끌하던 바깥소리가 탁 멈추고 조용해진 그 규동집에서 정말 맛있게 규동을 먹었다. 오사카까지 가서 겨우 "규~동?"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거 여행할줄모르는구만, 부터 애송이라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겟다.
나는 지금 규동을 먹게된 경위를 이렇게나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 여행이라는 것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고 인정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이거 먹어야 하고 저거 먹어야하는 여행을 위한 여행 말고. 적어도 그 시간 그 곳에 있는 나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많은 정보를 가지고 똑똑하게 여행한다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잊어버리는 듯하다.
이거 맛있겠다. 해서 먹어보는 것이 아니라, 이거 먹어야한데, 라고 먹는 여행은 하나도 똑똑하지 않다.
그러니까, 블로그에 올려야하는데, 라는 생각으로 좀 더 그럴듯한걸 먹는다던지 하는 건 하지말자.
그저 땡기는 음식을 아무거나 먹으면서 온전히 자유로워 지는 편이 역시 '나를 위한 여행' 인것 같다.
만족스럽게 규동집을 나섰지만 돌아오는 열차내내 손끝에서 달랑거리는 검은 쇼핑봉지가 꺼끌거린다.
*그나저나, 그날 요시노야를 간것으로 결국 3일 내내 간식으로라도 규동을 먹게 되어 의도치않게 규동집매치 가 되었습니다.기본메뉴인 규동을 먹어본결과 마츠야, 나까우, 요시노야 중에서 요시노야가 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