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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보로봉 Oct 09. 2015

도넛의 구멍

구멍은 구멍대로 안고 가는 여정도 아름답다

일러스트@황인정



어쩌다보면 작은 습관이 생기기도 한다.

아침을 먹지 않는데 일요일아침마다 도넛가게에 들려서 커피와 도넛 두조각을 산지 4주째가 되었다.

처음엔 허기져서 들렸는데 오늘은 일요일아침, 어딘가 들려 도넛과 커피를 사는 '전통(이라고 하긴 역시 과하죠)'이라도 생긴 것마냥 즐거워 가기 전부터 들릴 생각을 한다.

40분가량 걸리는 도로 위는 일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한적하다. 시속 100km 가끔은 120km까지 엑셀레이터를 밟아 텅빈 4차선 도로를 달리고 있자면 네비게이터에서는 가끔씩  


"서운JC를 지나갑니다"


"중동 IC를 지나갑니다"   


같은 안내 멘트가 나오는데 그럴때마다 둥그런 외곽고속도로의 고리를 내가 툭툭 끊어서 먹어치우는 느낌이 든다. 서커스의 링처럼 통과해야할 고리들이 차례로 다가올때마다 나는 속도의 변화없이, 표정의 변화없이, 꾸역꾸역먹어치우며 통과한다. 그래서인지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고 싶은 동시에 아직 두 개 남은 고리를 보고 안도하기도 한다. 아직 먹을 도넛이 남은 것처럼.  


어느때부터인가 참을수 없게 허기질 때가 있다.

(요즘은 '어느때부터인가'로 시작하는 변화가 여러가지 생겼다. 대부분은 조금 당혹스러운 것들이다. '어느때부터인가' 기름종이가 필요없다. 오히려 얼굴에 페이스오일, 그러니까 기름을 바르기 시작했다. '어느때부터인가' 아이돌 그룹의 이름을 한명한명 아는게 불가능해졌다. 그런건 외워서 되는게 아니라 한눈에 아는것이었는데)  


그렇게 머리가 핑, 돌도록 갑자기 허기가 지면 밥보다는 기름진 도넛이 생각난다. 딸기잼이나, 크림이 들어간 것도 나쁘지 않지만, 설탕을 녹인것처럼 살짝 바른 기본 오리지널 글레이즈드는 항상 정답이다. 따듯하게 데워진 설탕이 쫄깃하게 씹히면서 스르륵 녹아내리면 배를 채웠다기보다는 뇌로 즉각적인 당을 공급했다는 뿌듯함이 몸 전체에 퍼진다. 초컬릿과 다르게 밥이 될만한 걸 먹었다는 신호도 함께 보내면서.  


다 아는 사실이지만 도넛에는 구멍이 있다. 문학작품에서는 구멍을 비어있어서 존재하는 무엇으로 그리기도 한다. 마침 나는 최근 본 영화 한편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와 김연수 작가의 산문, <소설가의 일>에서 도넛의 이야기를 만났다.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에는 렌터카 사무실에서 일하는 여자 직원이 등장하는데 조금 특이하게 도넛을 먹는다, 도넛의 안 쪽 구멍을 먹기 위해서 구멍의 가장자리를 남기고 먹다가 한번에 구멍을 먹어 버린다. 그 구멍은 마치 혼자 사는 남자의 양말 구멍, 외로운 할머니가 만든 젤리의 가운데 구멍처럼, 공허하고 외로워서 채울 수 없는 무언가로 그려지고 있다. 마음속에 난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 주인공은 사람들에게 고양이를 빌려주고, 사람들은 사랑스러운 고양이와 함께 그 구멍을 메워간다. 손님도 별로 없는 작은 렌터카 사무실에서 지루한 일상을 보내는 그녀가 뉴욕에서 유명하다는 가게의 도넛을 사먹는 것으로 스스로에게 보상하고자 하는 마음도 공감이 가고, 공허한 자신의 마음같은 도넛의 구멍을 한번에 먹어서 사라지게 하고픈 마음에도 공감한다. 하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고양이들의 웅크리고 앉은 자태가 매우 사랑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목줄을 끊고 도망간 우리집 개와 대치했던 과거를 가진 나(당시 초등학생)로서는 고양이와 함께 지내서 구멍을 메우기란 무리일 것이므로, 구멍에 대한 다른 해답이 필요할 것 같다.  


한편 산문, <소설가의 일>에서 김연수 작가는 도넛의 구멍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이야기라는 것은 구멍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본능적으로 구멍을 메우는 것이다. 하지만 구멍을 메우려고 할때, 그모든 고생들은 결국, 내가 사랑하는 것들 때문에 생긴다는 걸 아는 순간, 구멍에 불과했던 단순한 욕망은 아름다운 고리모양을 지닌 복잡한 동기가 된다."


인생에는 구멍이 생긴다. 그것은 도너츠라면 구멍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연한 일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구멍, 내 시간과 세상의 시간사이에서 벌어진 구멍, 남이 가지고 있는 것과 내가 가지지 않은 것을 인지한 순간 생기는 구멍 같은 것들이. 우리는 그것들을 메워보려고 오늘도 경쟁도 하고, 친분도 쌓고, 관심도 주고 받고, 여럿이 몰려다니거나, 홀로 분투하기도 한다.  


그는 이어 말했다.

이제 도넛의 구멍을 잊자.  대신에 그 고리의 아름다운에 대해서 생각하자.  


나는 시속 100km로 달린다. 도넛 구멍의 한가운데를.. 시흥 IC라는 출구로 나가는 것 처럼 구멍에도 출구는 있는건지 두리번거리면서.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도넛 구멍의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을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고리를 타고 달리는 지도 모른다.

그러니 구멍을 메우려고 하지말자. 인생에는 구멍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내 인생을 이루는 고리가 만들어져서 구멍도 생기는 것이므로, 내 인생의 고리를 고리대로, 구멍은 구멍대로 안고 그 달려가는 여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서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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