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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보로봉 Oct 12. 2015

어쩌면 모르고 싶었던 '맛있는 생강차의 세계' 같은 것

 조금 살다보면 이런 알싸한 맛이 맛있게 되는 순간이 오고 마는 것이다​

일러스트@황인정



내가 만들수 없는 것이 있다. 만들 수 없다기 보다는 만들 엄두가 안난다거나,

조리법 대로 만들었음에도 이것이 제대로 만들어진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것.

가령 김치처럼, 내가 만들었다는 그 자체로 의심스러운 그런것들 말이다.

그런것 중에 생강차가 있다.

머리를 제대로 말리지 않고 외출해서 돌아와 감기 기운이 스물스물 올라오는 밤이면 나는 설탕에 재어 논 생강을 담은 단지에서 생강을 조금 퍼서 소스팬에 넣고 물을 넣어 보글보글 끓인다. 물론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아직(?) 나는 "단지" 같은 것에 뭘 만들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남편은 끓인 생강차 그대로 무인 양품에서 구입한 자신의 전용 밥그릇에, 나는 식기 건조대에서 몸을 말리고 있는 머그 중에 하나를 골라 꿀을 한 스푼 크게 떠넣어 마신다. 정수기에서도 뜨거운 물이 나오니까 커피를 마실 때나 티백으로 차를 마실 때는 항상 그대로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시지만 생강차를 마실 때는 꼭 끓여서 마신다. 보글보글 끓인 차는 다 마실 때까지 쉽게 식어 버리지 않아서 좋다. 컵을 감싼 손도, 목구멍도 따듯한 정도가 아니라 뜨거워지니까, 감기기운이 뚝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집에는 이름도 참 예쁜 여러가지 차가 있지만 감기 기운이 있는 날엔 역시 바글 바글 끓인 생강차다, 라고 생각한다. 물론 감기기운을 떨치기 위해 마시는 거니까 찻잔이나 함께 먹을 과자보다는 정성을 들인다는 포인트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음 역시 맛이 전혀 다르다.


직접 생강을 다듬고 재운 시어머니 덕분이 아니라면 이런 세계는 몰랐을 테죠.

"맛있는 생강차의 세계" 같은 것은.

어머니는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은 드시지 않으니, 어린이 입맛인데다가 편식도 심한 나는 시댁에 처음 갔을 때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모른다. 심심한 간의 나물들, 지리, 라고 부르는 하얀색의 매운탕같은 양념 적은 음식들.

나는 조심스럽게 둘러보다 새우만 한 접시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대서, 본의 아니게 '새우 좋아하는 며느리'가 되어 갈때마다 꼭 새우를 한 접시씩 먹고 오게 되었다. 집에 갈 때 싸주시는 음식들도 말린 뽕잎, 오디, 봄동같은 같은 것으로, 조리법은 물론 그 존재도 몰랐던 식재료들의 보관법등과 관련된 설명을 끙끙대며 듣다가도 생강차 단지를 보면 신이나서 또 주세요를 연발하며 두 병이나 얻어 온다. 아마 조만간 '맛있는 말린 뽕잎의 세계'도 알고 나면 뽕잎 줄까, 라는 말씀에 저번에 주신 것도 아직- 이라는 말보다 따러 가실때 저도 불러 주세요 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겠지.


나는 며칠전 하루를 꼬박 아팠다. 아프면 언제나 그렇지만 낮에는 조금 괜찮아졌다가도 밤이 되면 정도가 심해진다. 좋아하는 라면을 먹었는데 위가 쓰렸다. 체한것인지 밤에는 여러번 토하고 위가 콕콕 쑤셔서 늦게까지 잘 수 가 없었다. 무언가 먹고 탈이 나도 그 음식을 버린적은 거의 없는데, 위가 너무 아파서인지 이번엔 라면을 쓰레기봉지에 던지듯 버렸다. 분노와 화를 담아서 아주 못되게 던졌다. 그렇게 아프면 달콤한 딸기도, 부드러운 빵도 자극적이고 부담스럽게만 보인다. 누룽지 국물만 후루룩 먹으면서 치킨 같은건 다시 못먹겠지, 라는 심정이 되버린다 (물론 조금만 배가 나아도 금방, 내 배는 왜 더 먹을 수 없는가 아쉬워하지만). 간사하게도, 낫는 족족 설탕과 밀가루에게 다시 사랑을 고백하다보니, 그런걸 반복하던 몸도 조금씩 지쳐서 예전처럼 꾸역꾸역 먹거나, 불닭같이 매운걸 먹으면 오래 버티기는 커녕 몸이 금방 겁을 먹는다. 조금만 신호가 와도 얼른 마른 김에 싱겁게 끓인 된장국물을 마시면서 달래고 눈치를 본다. 생강차는 대추차와 함께 다방에서 노른자를 넣어 마시는 쌍화차와 묶음으로 생각했던 내가 생강을 저민 단지에 눈독을 들이는 날이 온 것이다.  


조금 살다보면 이런 알싸한 맛이 맛있게 되는 순간이 오고 마는 것이다.

몸에 좋은 것은 입에 쓰다지만 몸에 좋은 것이 입에도 좋아, 라고 인정하는 순간이 오고 마는 것이다.

인생의 쓴맛이 뭔지 조금이나마 알게되서일까,

이런 매운 맛쯤은- 이런 쌉쌀한 맛쯤은 오히려 입에 달아서 기분좋게 목구멍 부터 머리와 발과 몸을 데워 준다.

뜨겁게 끓여 한잔 가득 마시고 이불속으로 들어가는 난 오늘,

아주 푹 잘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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