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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보로봉 Oct 17. 2015

몽블랑

 몽블랑. 그 이름을 먹고 싶었다. 달콤하고 하얀 몽블랑이라는 이름​


몽블랑이라는 디저트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지금생각하면 진부하기 이를데없지만-


만년필?


이라고 생각해내곤 잠시, 내가 무식한건가?, 혼란스러워하다가 다시,

아냐 몽블랑 만년필은 확실히 있어, 당황하지마,

혼자 이랬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피에르에르메도, 아오키 사다하루도, 라뒤헤도 알지만 3년전만 해도 이런 상황이었던 것이다. 몽블랑이 무엇인지는 알게 되었어도 마카롱이나 다른 디저트처럼 먹어볼 기회가 없었는데 드디어 먹어 볼 기회가 생겼다.


살고있는 건물 2층에 쿠키집이 생긴 것이다. 두 달 넘도록 창문위에 붙일 널판을 직접 페인트 칠하고, 가게를 단장하는데 이렇다할 진전이 없다. 열흘도 안되어 간판은 물론이고 가게 안에 빵까지 다 채워놓는 파리바게트를 보고 놀라워했던 차라, 이렇게 준비만 하는데 두달이라니, 월세 내기 괜찮은거냐 라고 가게를 지나쳐 갈때마다 이쪽에서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간판을 달기 전까지 그 집의 정체 또한 우리부부의 내기거리였는데, 나는 가정식 백반집. 맛있는 고양이 맘마를 팔아다오, 라는 개인적 바램을 담아 좀 좁지만 맞을거야, 라고 우겼고, 남편은 주방이 없는걸로 봐서 푸드 스타일리스트나 블로거의 사무실. 이라고 거의 단정했다.


정답은 쿠키집 '마농'.


야심차게 들떠있는 아주머니의 표정을 보면서 제발 망하지 말아라, 응원했을 뿐더러, 그럴려면 나도 좀 사야겠지, 비싸지 않을까 하고 들어갔다가 몽블랑을 보았다. 아 이게 그 몽블랑이란 말이지, 4500원. 하나에?

와, 하루저녁 간식, 아니 한입간식으로 먹기에는 좀 비싸군요.

그래도 몽블랑. 그 이름을 먹고 싶었다. 달콤하고 하얀 몽블랑이라는 이름. 하나만 사서 예쁜 접시에 담아 밤크림을 살살살 아껴먹었다. 작고 예쁜 그것은 순식간에 눈처럼 스르륵 입속으로 사라졌다.


도쿄 여행을 갔을 때 일부러 찾아갔던 가게의 이름이 몽블랑이었는데 (동네에서 처음만난 몽블랑은 사실 이탈리아와 프랑스 접경지역에 위치한 알프스산의 봉우리 이름으로 ‘하얀 산’이란 뜻이다. ) 1933년 일본에서 최초로 몽블랑을 만든 가게다. 원체 대기하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는데, 내가 방문했을 때는 구석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하는 여자 손님 둘 뿐 이었다. 올려진 딸기 한조각 한조각 알차고 빛깔도 고와서 보는 것도 기분좋은 케이크와 타르트들이 잔뜩 있었지만, 몽블랑을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가게에 왔으니까 남편과 나는 몽블랑 하나, 카페오레 한 잔을 주문해서 나눠 먹기로 했다. 커다란 성인 두 사람앞에 다소곳이 놓인 작은 몽블랑 하나를 조금씩 떠먹었다.


고구마 무스와는 좀 다른 느낌의, 밤으로 만든 마론 크림과 달걀 흰자로 만든 머랭. 생크림에 설탕을 넣어 만든 크림은-


아, 정말 부드럽다.


컵케잌은 달아서 한 개를 전부 먹어 본 적이 없지만, 몽블랑은 5개도 먹을 수 있겠다.

아침내내 몸이 으슬으슬하다고 기분이 안좋았던 남편은 뜨거운 국물도 아닌 밤크림을 먹고 기분이 좋아졌다.

마치 여행오기 이틀전 체해서 전날까지 링겔을 달고 누워 있다가, 겨우 비행기를 타고 와서 밥에 물 조금 말아먹고 돌아다니려니 분통이 터져 다음날 정신력으로 모스버거를 먹고 나았던것처럼,

남편도 밤크림을 맛보자 나아야겠다고, 이렇게 맛있는 것들이 있는데 아프면 안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달콤하고 맛있는 것들에 대한 우리의 의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했고, 돌아갈 날짜가 다가온다면 그때는 먹고 보는 거다.


아아아 밤크림이여

벌집모양처럼 편을 짜 쌓아올린 밤크림이여.


음-. 음-. 일부러 소리도 내면서 먹는다.

와, 이거 전혀 맛이 다른데! 라면서(겨우 두 번째 몽블랑이면서).

음. 음. 일부러 소리도 내면서 먹는다.

마론크림이 정말 좋은데.!라면서 (겨우 두 번째 몽블랑이면서 말입니다)

이번에도 알프스 산봉우리가 입속에서 순식간에 녹아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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