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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보로봉 Oct 21. 2015

당신은 나의 버터 , 아니 마가린

너는 나의 버터, 그것은 어떤존재일까? ​

일러스트 ⓒ황인정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

식탁에 둘러 앉은 사람들은 모두 가슴에 커다란 하트를 붙이고 줄리아의 요리를 즐기고 있다.

건배를 청하는 폴.

일어선 그는 말한다.


"You are the butter to my bread and breath to my life. I love you, darling girl."

 (너는 내 빵의 버터이고 내 삶의 숨이야. 당신을 사랑해요.)


줄리아를 똑바로 쳐다보고 당신은 나의 버터, 라는 고백하는 이 장면에서의 그는 부인보다 키도 체구도 작았지만 그 당당하고 사랑넘치는 눈빛으로 그녀를 품어주기에 충분히 든든하고 다부져 보였다.

너는 나의 버터, 그것은 어떤 것일까?


개브리엘 해밀턴의 책 "피, 뼈, 그리고 버터"의 맨 앞장에서도 비슷한 고백이 나온다. 그녀는

"여러분 모두는 내 피와 뼈이고, 두말할 나위 없이 감미로운 내 버터랍니다. 라는 헌사를 바쳤다.

너는 나의 버터, 그것은 어떤존재일까?


버터: 우유중의 지방을 분리하여 크림을 만들고 이것을 세게 휘저어 엉기게 한다음 응고시켜 만든 유제품

-두산백과사전-


너는 나의 버터, 라는 고백을 받기도 하고, 하기도 했던 두 사람은 모두 직업이 요리사다.

서양요리에서 버터는 우리나라 요리의 장(醬)과 같이 대부분 요리의 베이스가 된다.

빵이나 소스를 만들때는 물론이고 소금 후추와 함께 기본 조미료로 쓰인다. 그러니까 넌 나의 버터, 라는건  

넌 나의 고추장이나, 내 찐방의 앙꼬라는 말의 좀 더 우아한 버전정도가 되겠다.

요리에 꼭 필요한 많은 식재료중에 가장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것을 골라서 요리하는 사람에게

어울릴만한 것으로 고른 버터만큼이나 섬세한 고백인 것이다.


지금이야 나도 버터를 사서 몇 가지 요리에 이용하기도 하고, 프라이팬에 식빵을 구울때는 꼭 버터를 조금 녹여서 갈색으로 바삭하게 구워 먹기도 하지만, 어렸을때는 버터라는 것은 본 적이 없고 마가린을 먹었다.

따듯한 밥 한가운데 수저로 구멍을 만든 후 마가린을 조금 넣고 밥으로 덮는다.  

그위에 간장을 조금 붓고 비벼서 먹었다.

언제 먹어도 그 시시한 재료에 비해 깜짝 놀랄만큼 고소한데다가, 간장 덕분인지 달달하기도 해서 순식간에

한 그릇을 먹어치웠다. 왠일인지 어느때부턴가 먹지 않게 되었지만, 그 시절에는 물에 밥을 말아먹는 것만큼

많이 해 먹었던 것이 비로 마가린을 넣고 비빈 밥이다.


그 마가린밥을 다시 기억하게 된 것은 "심야식당"이라는 일본 드라마 때문이었다(원래는 만화가 원작이다).

밤 12시에 문을 여는 이 작은 식당에는 손님이 주문하면 만들 수 있는 것은 다 만들어주는 주인장이 있어

매회 사연이 손님들에게 사연이 있는 요리들을 만들어 주곤 한다. "버터라이스" 편에서는 마가린 대신에

버터를 넣고 우리와 똑같이 간장을 넣어 비벼먹는 버터라이스가 등장하는데, 간장밥이라고 해야하나, 마

가린밥이라고해야하나, 이 이렇다할 이름도 없는 '마가린라이스'가 오랜만에 기억나 반가운 마음으로 시청했다.  


공교롭게도 버터라이스를 주문하는 사람은 지금은 사라진 직업인 유령악사 고로씨였다.

아마 노래 한곡 부르고 먹는 음식인만큼 대단한 요리를 주문하기도 어렵고, 알고보면 사연도 있는 요리라 주문하긴 했지만, 지금은 사라진 메뉴를 지금은 사라진 직업의 고로씨가 주문하는 것이 무언가 짠했다.

지금의 우리 식탁에는 맛있는게 너무 많으니까 더이상 물을 말아먹지도 '마가린'과 간장만 넣고 비벼 먹지도 않는다. 밥 안에서 사르르 녹아버린 마가린처럼 언제인지도 모르게 사라져버린 것들. 하지만 언짢거나 슬픈 것은 아니다. 간장을 뿌리고 팔짱을 낀 채 30초를 기다리는 고로씨를 보면서 미소지었다. 어리고 성급해서 30초는 커녕 밥을 밀어넣고 고작 1, 2, 3,정도를 셌던 그 때가 기억나서 짠하면서도 흐믓하게.

그래서 너는 나의 버터, 라는 말을 듣는다면 나는 잘 구워진 크루아상의 겹겹히 쌓인 달콤한 버터층이 떠오르기 보단, 뜨거운 밥 사이로 스르륵 녹아들어간 마가린이 떠오른다.  


그러니까 나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나의 버터"  

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추운날이면 더 차가워지곤 하는 내 손을 잡아 순식간에 데워주는 그 사람의 손을 잡고   

"넌 나의 마가린"

이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듣는 상대방은 뭐? 트랜스지방이라고? 라면서 배를 두드릴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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