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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보로봉 Sep 26. 2015

굴튀김 이론​

 하루키의 굴튀김 이론을 읽고  

일러스트@황인정



자꾸만 하루키 이야기를 해서 그렇지만, 요즘 하루키의 산문집 (지금 읽고 있는 것은 '잡문집' 이라 이름이 붙었다)을 6권째 읽고 있어서 그런지  어쩔 수 없이 그의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된다. 약간 뻔뻔한 말투의 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나도 역시 뻔뻔해져서 양해를 구하는 척, 하지만 6권이나 읽고 있으니 어쩔 수 없겠죠, 라는 식이 되어버리는데. 그런 말투가 되면 나답지 않은 것에 살짝 흥분이 되서 이렇게 자고 있어야 할 시간인데도 일어나 책상에 앉게 된다. 불을 켜자 보이는 시간은  새벽 2시 55분.

요리를 잘 못하면서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쓰다보니 자꾸 음식이야기가 아닌 쪽으로 흘러가서, 푸드 칼럼에 제대로 된 음식이야기는 도대체 언제 나오는 거냐는 소리를 들은 참이라, 맛집이라도 가야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잡문집에서 "자기란 무엇인가, 혹은 맛있는 굴튀김 먹는 법" 이라는 글을 읽게 되었다. 나도 튀김이야기나 써볼까, 라는 생각에 열심히 읽었는데  읽고 난 결론은 이번회도 침 흐르게 하는 맛있는 이야기가 나오기는 다 틀렸군, 이 되어버렸다.

하루는 하루키에게 젊은 청년이 메일을 보냈다. 취직시험을 보는데 원고지 4매로 자기자신을 설명하라고 한 것에 자신은 도저히 원고지 4매 이내로 표현할 수가 없다며 하루키씨 같은 프로 작가는 그런것도 술술 쓸 수 있는거냐고 묻는 내용이었다.
하루키는 원고지 4매에 자기자신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라고 답하면서 다만, 자기자신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굴튀김에 관해 원고지 4매 이내로 쓰는 것은 가능하겠죠, 라고 덧붙였다. 갑자기 왠 굴튀김? 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굴튀김에 관해 글을 쓰면 그 사람과 굴튀김의 상관관계나 거리감이 자동적으로 표현되기 마련이고 끝까지 파고들면 결국 그 사람 자신에 관해 쓰는 것이 되니까 굴튀김에 대해 써보라고 권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굴튀김이 아닌 새우 커틀릿이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상관은 없다. 하루키가 굴튀김을 좋아하기 때문에 등장해서 이른바 '굴튀김 이론'이 되었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해 원고지 4매 이내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하루키에 의하면 그것은 불가능하므로 나 역시 굴튀김에 대해 써보기로 한다.
하지만 나는 굴을 못먹으니까 굴튀김은 당연히 먹어본적이 없다.
그렇다면 내 이야기는 여기서 끝?   ...음,  다시 시작해보자.

나는 굴을 못 먹는다. 하지만 오랫동안 굴을 잘 먹는 여자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왔다. 광어도, 곱창도 아닌 굴을 잘 먹는 여자.  멋지게 차려 입은 여자들이 한 쪽 손에 샴페인을 들고 다른 한 쪽에 들고 있는 것은,, 커다란 껍질안에 놓여 있는 신선한 굴이다.  노르망디를 여행하고 있는 J라는 친구가 노르망디에 왔으니 굴을 먹으러 가겠다는 멘션에 좋아요, 를 눌렀다. 굴을 먹겠다는 말에, 함께 올린 사진에서 바다위로 빛나는 햇살처럼 그녀가 빛나게 느껴졌다. 막상 먹으면  물컹할까봐 겁나면서도 신선하게 물기를 머금고 앉아 있는 석화를 거침없이 들어올리는 장면은, 마치 호기심 가득한 눈을 하고서 알면 알아갈수록 더 넓고 광대한 이 세상과 바다위를 걸어가겠다고 선언하는 몸짓을 연상시킨다. 굴의 식감을 이해하면 바다를 이해하게 되는 걸까, 바다 처럼 모든 것을 품어 낼 대장부 같이 씩씩하면서도 우아하고 심오한 여자가 될 것만 같다.    

굴을 먹을 수 없는 나에 대해서는 결국 아, 참 매력없는 여자네, 라고 결론이 났으니, 새벽에 굳이 일어나 4시 29분에 자신에 대해 내린 결론 치고는 좀 허무하지만, 굴튀김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 하다보면 "진정한 나란 무엇인가?" 란 막막하고 희미한 질문에 좀 더 실제적이고 유쾌한 대답을 얻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이 여정도 마찬가지다. 굴튀김은 어떻게 튀김옷을 입히고 몇 도에서 튀겨야 맛있어요  라는 정보는 하나 없고 쓸데 없는 이야기만 하고 있는것 같아도 지금 나의 마음은 어떻고 너는 어떠한지, 무엇에 공감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건지,  결국 굴튀김 따위를  이야기하면서 마침내 발견되어지는 것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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