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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보로봉 Feb 12. 2016

명란젓 같은거,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역시 봄이 오는 거, 맞지요?​

일러스트 @황인정

어제는 명란젓이 너무너무 먹고 싶어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로 차를 돌렸다.
이미 10시가 넘었고 저녁으로 떡볶이와 튀김, 호떡까지먹어 배가 부르지만 머리 속에는 기름진 명란젓 생각뿐이다.
“마트에 들렸다가도 되지?” 라고 옆자리에 앉은 그에게 묻고 앞만 노려보면서 명란젓이 있는 곳을 향해

저돌적으로 운전해 달려가는 나를 보고 그는 웃는다.
안 피곤해?-

폐장시간이 가까워진 마트 안은 한적하다. 명란젓, 명란젓, 이라고 중얼거리면서

입구에 있는 야채코너를 둘러보려는 그를 잡고 바로 명란젓 코너로 간다.

포장해놓은 명란젓은 세 팩정도 남아있고

각각 15,000원이라고 적힌 가격표 위에 11,600원이 쓰인 가격표가 한 장씩 더 붙어 있다.

문을 닫을시간이 다가오니까 세일을 하는가 보다.
요 며칠 명란젓이 먹고 싶었지만, 마트에 올 때마다 작은 덩어리 겨우 몇 개에 어찌나 비싸던지

그 앞에서 잠깐 서있다 지나치곤 했는데, 오늘은 할인을 하지 않아도 살 작정이었는데, 할인까지 한다니

망설임 없이 집어들면서도 약간은 억울해졌다.

명란젓 같은 거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어렸을 때는 집에 있는 명란젓든 창란젓이든 나도 여동생도 아들이란 녀석도 잘 먹지 않아서

젓갈이 한 번 생기면 몇 개월은 식탁에 오르락내리락 했던 것 같다. 오징어는오징어니까 오징어젓갈이라는 개념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명란이라는 건 '알'이라는데 동그랗지도 않은데다, 분홍색에 핏줄마저 보이는 덩어리를 어떻게 먹어, 훠이훠이, 안먹어요 안먹어 라고 정중하게 거절했는데, 이제서야 그 과거의 무수한 명란들이 아쉽기만 하니

내 식탁위로 다시 불러올 수만 있다면!

집에 도착해 한 사람분량 남은 밥을 반으로 나눠 담고

가위로 명란 하나를 조심조심 들어서 담아, 토막을내었다.

‘잘 먹었다, 역시 들러서 사오길 잘했어’, 라는 순간,

아, 참기름을잊었다는 걸 알았다. 이럴수가! 제일 중요한걸 빠트리다니!
그 순간부터 나는 다음날 점심을 기다린다.

다음날 나는 물을 약간 더 부어 찰지게 밥을 새로 짓고,
한 덩이의 명란을 적당히 토막 내고 그 위에 참기름을 살짝 붓는다.
명란에 닿으면서 순간적으로 퍼지는 풍부하고 고소한 냄새가 코에 닿는다.
깨를 조금 잡아 부스듯 뿌린다.

한 토막을 밥 위에 올려서 젓가락으로 눕히듯 누르면 분홍색알들이 밥 위에 녹듯이 퍼진다.
아, 달다.

가끔 일산대교를 건너 '코스트코'라는 마트에 간다. 탄산수나 냉동 대구, 그리고 유리병에 든 복숭아 통조림등

다른 곳에서 잘 팔지 않는 재료들을 살 수도 있지만, 장을 보고 난 후, 초밥을 사먹는 재미가 좋다.

똑같은 개수가 담겼는데도 한 팩은 9,900원, 다른 한 팩은19,900원이다.

가격이 다른 건 물론, 담긴초밥의 종류가 달라서.
더 비싼 쪽에는 날새우와 성게알이 들어있다.

배 속으로 들어가면 다 똑같지 싶어서 보통 9,900원 짜리를 둘이 나눠 먹지만,

가끔은 날 새우가 들어있는 19,900원짜리를 먹는다.

성게알이 들어있는 초밥쪽은 일찍부터 이거 나 안먹어요, 라고 미뤄뒀다.

저런 묽은 내장 같은 것이 왜 밥 위에 얹어져 있을까, 못 먹겠다며 양보했던 내가

이번엔 마지막 남은 성게알 초밥을 그가 내밀며 (줄 생각도 없었으면서 내가 안 먹을 줄만 알고)

먹을래? 라고 묻자마자 덥석 받아 물었다. 우물우물.

간장 게장 껍데기 안을 긁어내 밥을 넣고 비빈 것같이 고소하고 진한 맛이 입안에 가득찬다.
아, 달다.

어쩌죠? 앞으로 성게알 초밥은 나와 나눠 먹게 생겼어요.
이제 명란, 성게알을 섭렵했으니 다음은 뭘까요, 철갑상어알?
가계부가 잔뜩 긴장하게 생겼다.

왜 명란젓 같은 게 좋아졌을까?
그러고 보니 이번 주 일요일에는 엄마가 무쳐놨다는 더덕무침을 야무지게 챙겨왔다.

그것 역시어렸을 때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건데.
이것에도 저것에도 입맛을 다시게 되어버리는 거,
역시 봄이 오는 거,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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