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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보로봉 Feb 05. 2016

올림픽과 보쌈

*이 글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보며 썼던 글입니다. 2월이었던 당시를 기억하며 아직 자신의 새해를 시작하지 못한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는 글이 되고 싶습니다.


밤늦게까지 동계 올림픽 경기를 봤다. 다음날 아침이면 알고 싶지 않아도 결과를 알 수 있지만   

나는 밤늦게까지 이상화 선수의 경기를 기다리고 혹시 놓칠까 싶어   

채널을 고정해 둔 채 그녀의 경기를 기다렸다. 이미 저녁식사를 했지만 경기를 보면서 먹기 위해 보쌈을 주문했다. 수육과 쌈 채소에 보쌈김치, 막국수와 콜라, 마늘, 쌈장에 무 절임등등. 이렇게 금방 한 상 채울 수 있다니  

배달음식 최고! 한국이 최고야! (아, 한국 선수들도 최고! 뭔가 순서가 바뀐 감이 있지만)

  

예전에는 경기를 보면서 이겨라 이겨라! 금메달 금메달! 하고 응원하는 마음뿐이었다면,  

이제는 나보다 어린 선수들이 많아서 그런지,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4년 동안의 청춘과 바꾼 아름다운 장면과 마주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실수로 넘어지고, 서로 부딪혀서 넘어지고,

또는 신호 전에 살짝 움직인 것만으로 출발조차 하지 못하게 되어 플레이를 전혀 보지 못한 선수에게서조차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다.  

 

쇼트트랙 경기의 박승희 선수가 다른 선수에 의해 걸려 넘어졌을 때,  

함께 넘어지며 허무한 표정을 짓는 다른 두 선수와 달리 그녀는 금방 일어나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이 급했는지, 그만 두 무릎으로 꽈당, 다시 넘어지고 말았다.  

두 무릎이 깨지는 소리가 들린 것처럼 놀라는 내 눈 앞에는 또 다시 일어나 달리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등학생 때였나, 텔레비전에서 하는 <쿨러닝>이라는 영화를 아버지와 보고 있었다.  

눈이라고는 구경도 할 수 없는 더운 나라, 자마이카의 선수들이 우여곡절 끝에 동계 올림픽의 봅슬레이 경기에 출전하지만,  

썰매가 작동하지 않아 제대로 경기를 치르지 못하는데,  

그럼에도 썰매를 매고 끝까지 결승선까지 걸어 오는 것으로 끝나는 영화였다.  

마지막에 결승선에 들어오는 선수들을 향해 모든 관중들이 박수를 치는데,  

나와 여동생은 하나 둘 시작되는 박수소리에, 아악, 소리를 지르고,   

감동적인건 질색이야, 하며 서로에게 저럴 줄 알았다 저럴 줄 알았어 라고 말하며 쯧쯧 혀를 찼다.  

초등학생이 여자와 남자가 손만 잡아도 징그럽다는 듯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참다 못해 아버지가 옆에서 너희는 도대체 왜 그러니, 아빠는 정말 감동했는데 라고 내 핏줄 같지 않네, 라는 듯 속상해 하셨다.

 

그 때는, 아니 아주 최근까지도 아니, 실은 지금도, 감동적이지? 라고 말하려는 영화나 이야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포스터에 동물, 어린이, 가족이 나오고 “감동의” 라는 말이 나오면 두드러기가 나는 것 마냥 거부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야말로 감동적인 이 경기 장면에 나는 거부감은 커녕 눈물이 찔끔 나왔다.  

경기를 봤던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하게 울컥했는지, 관련 기사 밑에 달리는 덧글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요지의)  

“나는 끝났다고 생각하고 얼굴을 감싸 쥐었는데, 박승희 선수가 다시 달려서 부끄러웠습니다”

나 역시 아아- 끝났다, 라고 생각했다. 금메달은 틀렸네, 아까워라.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다시 일어나는 것을 보고 놀랐는데,

얼음판에 너무나 세게 넘어지는 걸 보고 또 놀라고 안타깝고 그러고도 다시 달리는 것에 이제는 짠하고 부끄럽고  그야말로 그 짧고 “쇼트” 한 순간에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서 눈물이 찔끔 나는 것이다.  

4년 동안 관심도 없었으면서. 가족도 아니고 어떤 고생을 했는지도 알 리 없으면서, 그 장면 하나에 울컥하는 것이다.

실패해도 오뚝이처럼, 같은 문구는 머리속, 저어기 아주 안쪽에나 있는 것인데, 이렇게 실제로 목격한 순간 오히려 낯설고 당황스러웠.  

 

나는 시작도 하지 않고서 예상되는 장애물을 세어보고 패배감을 느끼는 것을 취미생활로 즐기는 인간인데다가,  글쓰기에 관해서도 결심만 자꾸 하면서, 마치 등산을 하기 전에 준비운동 한답시고  입구에서 며칠째 팔 운동만 하고 산책만 하는 종류의 인간이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냐고 안심하면서.   

그러다가 성큼 성큼 올라가는 재주 좋은 이들을 보면  “그래, 재네 들은 어렸을 때부터 잘 살아서 좋은 교육을 받았겠지. 서울 애들은 뭐가 다르겠지” 같은 말도 안 되는 수긍을 해버리고 만다. 그래 예쁘니까 저런 태도가 가능하겠지.  

그래 어리니까, 그래, 그래, 그래, 그래.

패배하기로 작정한 것처럼 너무 쉽게 이유와 핑계를 찾아내 오늘 하루를 내줘 버린다.  

매일 하기로 했던 것들이 있으면서 “다들 올림픽 보겠지, 나만 하루 쉬는 게 아니라 다같이 타임, 한 거다.”

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말이다.  

 

시작하기 위해 한 발을 내딛는 것도 이렇게나 어려운데 저렇게 벌떡, 다시 일어나는 걸 보니  

저 소녀는 출발신호에 대한 반사신경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반사신경도 탁월하구나 싶었다.  

생각하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몸이 감각하고 반응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순간적으로 인생에 대한 자세가 올 바르려면 얼마나 정신력이 얼마나 강해야 하는 걸까.  

 

새해의 목표에 대해 이야기하기에는 벌써 두 달이나 흘렀지만, 올해 나의 목표는 “멘탈이 강한 여자”다.  

작년 한 해 내가 어찌할 수도 없는 일에 대해 힘들어하면서 울다 보니 한 해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같은 문제로 울고, 울고, 또 울다 보면 그 문제 자체보다 이렇게 오랫동안 무력하게 에너지가 다 쏟아져 사라진 나를 보며 슬퍼진다.  

보는 사람이 아플 정도로 꽈당 넘어지더라도 다시 달렸다면 후회는 없을 텐데. 나는 그저 주저 앉아 울면서  

누군가 해결해 주기를, 심판이 나서서 아이고 억울하지, 하고 메달을 걸어주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다.  

누군가 알아챌 때까지 점점 더 크게 울면서.


 

배달 온 보쌈김치가 얼마나 맛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스케이팅 이야기만 했다.  벌떡 다시 일어나서 보쌈김치에 대해 시작하겠습니다,,라고 해야겠지만 오늘은 여기서 이만...  김연아 선수의 경기 때 보쌈을 배달 해 한 번 더 먹고 쓸까, 했는데 경기시간이 새벽 2시다. 아아 새벽 2시,,,  새벽 2시에 보쌈을 먹은 것에 대한 참회 플러스, (분명히 훌륭할) 김연아 선수의 마지막 연기에 대한 찬양과  이어지는 자기반성으로 보쌈이야기는 또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이번 이야기는 진짜로 여기서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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