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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보로봉 Jan 29. 2016

김치찌개

일러스트@황인정


일주일 아니 한달동안 같은 음식만 먹어야 한다면,

고민할 것 없이 김치찌개다.

이제껏 자라오면서 엄마가 해주신 음식중에 김치찌개가 가장 맛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건 며칠 동안 두고 반복해서 먹으면 점점 맛도 없고 질리기 마련인데, 김치찌개는 데울수록 맛있다.

고기를 넣어도, 통조림 참치를 넣어도, 햄을 넣어도, 라면을 넣어도, 떡을 넣어도, 만두를 넣어도 맛있다.

버터를 넣어도 맛있고, 김치만 넣고 볶다가 끓인것도 맛있다.

 

자꾸 외국이야기를 해서 미안하지만,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고, 항상 있었던 음식들이 워낙 귀해지다보니  

그 시절의 김치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부모님과 함께 살때는 당연한 듯 김치가 항상 있으니까, 다른 반찬보다 먼저 손이 가거나 하지 않는다.

그래도 식탁을 차릴 때는, 아, 김치, 하면서 꺼내놓지만 아무래도 새 반찬들을 먹게 되고 매운 요리라도 있으면 김치는 찬밥.

항상 있으니까, 라고 머리속과 마음속 어딘가에 안도감을 주고는 그대로 냉장고와 식탁위를 반복하다  

김치찌개 끓일 때 함께 입수. 그것이 락앤락에 덜어 담겨진 반찬 김치의 인생이라 여겼다.

 

그런데 막상 잠시나마 외국에 살다보니 잘먹지도 않던 그 김치가 너무 먹고 싶어서,

슈퍼에서 작은 통에 들어 있는 것을 몇 번 구입해 먹어보았지만, 비싸고, 달고, 김치이나 김치같지 않게 뭔가 부족하다.   

그래서 '김치' 까지는 무리지만, 간단하게 깍두기도 담아보았다.

무 1개의 레시피를 물어보고 처음으로 만든 깍두기는 정말 맛있었다.
김치, 라고 할만하게 소금에 절여지고 젓갈도 들어간 깍두기를 비록 무 1개지만 집에서 "담궈" 먹었다니. 자랑스러울정도였다.  

알고 지내던 한국인 아주머니께서는 유학생들이 안쓰러워 몇몇에게 김치를 담궈 주셨는데,  
"글쎄 이 애들이 할 줄 아는게 없으니까 그걸 죄다 김치찌개를 끓여먹은거야.
기껏 생김치를 담궈주니까 그렇게 먹었지 뭐야", 하시고 속상해 하시는데 우리 부부도 가슴이 뜨금했다.
남편의 어머니께서 박스 하나로 보내주신 김치를 매일같이 찌개로 끓여 먹은 애들이 바로 여기에도 있으니까.

밑반찬을 직접 만들어 먹어본적 없는 와중에 김치가 생겼으니, 주구장창 김치찌개만 끓여서 밥을 먹게 되는 것이다.

나중에는 남은 꼭지만 넣고 끓여먹기도 했다. 그렇게 매일같이 먹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마치 라면이 언제나 맛있는 것처럼 김치찌개가 맛있지 않은적이 없다.
먹기 싫은적이 없다. 친정에 갔을 때 김치찌개가 있다고 하면 이미 밥을 먹고 왔어도 솔깃하다. 또 먹고 싶다.

스팸을 넣은 김치찌개는 생각만해도 침이 흐른다.  

엄마는 우리가 진짜 좋아서 잘먹는건지, 아니면 바쁜 엄마가 미안할까봐 맛있다고 해주는건 아니냐고 지금까지도 물어보시지만,
정말이예요. 엄마. 김치찌개는 정말이지 질리지가 않는답니다.   

갓 담은 김치보다는 신 김치가 그리고 당연히 묵은지로 끓인것이 그 특유의 신맛 때문에 끓인 국물도 김치도 더 맛있다.

익지 않은 김치로는 찌개를 끓이지 않지만 필요하면 잎부분만 볶아서 며칠을 계속 데우며  

졸인것처럼 꼬득꼬득하게 만들어 끓인다.

오피스텔에 살 때는 1-2층에 음식점이 많아서 점심을 사먹은 적이 많았다.  

2년동안 가장 많이 먹은 걸 생각해보면 역시 '돼지고기김치찌개'다.  

순두부 파스타 짜장면,, 수많은 가게 중에서 이것도 저것도 내키지 않을 때가 있다.  

드라마에서는 그럴때 자장면을 시켜먹지만 자장면도 내키지 않을때가 더 많다.
하지만 김치찌개는 언제나 오케이.

단골집은 정육점도 같이하면서 점심메뉴로 5천원에 김치찌개를 전골처럼 끓여주었는데,
신기한것은 나오는 서너가지 반찬이 모두 고추가루가 범벅인 매운 반찬이라는 것이다.
얼큰하게 끓고 있는 찌개를 보면서 저 반찬들은 못먹겠는데, 라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그 매운 반찬들을 함께 먹고 있다.  
매운 김치찌개에 매운 반찬, 한국인만 가능할꺼야. 라고 항상 생각한다.

나에게 언제나 정답인 것들이 있다. 많지는 않지만, 있다.  
먹고 싶다, 안 먹고 싶다가 아니라, 언제라도 환영인것.  
매력적이고 세련되었으나 사이가 좋았다 나빴다 하는 친구가 아니라,
김치찌개는 가족같달까, 항상 내편이 되어주는 그 국물을 신뢰한다. 나 역시 같은 신뢰를 김치찌개에게 보낸다.  

이제까지 이런 저런 예쁘고 화려한 이름들의 음식들 이야기 뒤에 이런 고백을 하려니  

뭔가 대단한 걸 커밍아웃한 기분마저 드는데,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을것 같다.
10년 후에도 김치찌개는 아침저녁으로 일주일 내내 먹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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